박명순의 영화이야기=『신세계』는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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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신세계』는 유혹이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7.0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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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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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네이버 영화

천주교신자는 아니지만 고해성사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신세계에 매료되거나 그 분위기에서 허우적거릴 때마다 남의 남편을 탐하거나, 도둑질의 충동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죄의식이 따라붙는다.

신부님, 저는 신세계광팬입니다.”

그렇게 고해성사를 노크하면 신부님은 뭐라고 하실까? 이렇게 말씀하실 확률이 높겠지.

자매님, 하느님은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 신세계도 사랑하십니다.”

모태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나도 그쯤은 안다. 하느님이 영화에 대해 높은 식견과 다양한 안목을 지니고 계시겠지. 설마하니 편견을 가지실 리가 있는가, 어쩌면 다양한 영화를 두루 사랑하라고 하실 것 같다. 신부님은 그런 수준의 지극히 평범한 말씀으로 마무리하실까. 고개를 갸웃거린다.

신부님, 저는 당당하게 신세계를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저는 중독에 걸린 것처럼 이 영화가 생각날 때가 많고, 그 강렬한 끌림 때문에 가끔 이 영화를 봅니다. 일 년에 두세 번쯤이 증세가 시작된 건 4년 되었습니다.”

,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열 번도 넘게 보았지만 누구와 같이 보자는 말을 꺼내지는 못한다. 이 영화를 B급 영화라 스스로 규정하면서도 중독자처럼 반복해서 재생 버튼을 누르는 나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해서 쩔쩔맨다.

자매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걱정을 사서 하십니까. 그런 걱정할 시간에 마음을 위로해줄 음악을 듣거나, 품격 있는 책을 읽으십시오. 집안 청소를 하거나 응달의 이웃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면 더 좋겠지요.”

저는 가족이 함께 볼만한 영화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최소한 신세계보다 조금은 더 건전하고 여운이 남고, 따뜻한 영화를 사랑하고 싶은데, 왜 이런 영화에 끌리는 걸까요. 제 몸에 생태적으로 나쁜 피가 흐르나 봐요.”

자매님,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자매님이 사랑해선 안 될 영화는 없습니다. 마음이 가는 데로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눈을 맡기면 됩니다. 자매님이 영화에 열광하는 모습도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을 것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면 안 되는 첫째 이유는 등장인물이 남성중심이라는 점입니다. 조폭 이야기이고, 그것도 조폭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하여 쉴 새 없는 칼부림과 비속어와 담배연기가 난무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백가쟁명처럼요. , 세상의 절반인 여자들의 이야기가 전혀 없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남성액션 조폭 스토리에 제가 끌린다는 건 치욕입니다. 물론 조폭 마누라같은 여자 행동대원의 출연을 기대하는 건 아니구요, 그렇다고 감방에 간 조폭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청순가련형의 출연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먹질의 스릴보다는 저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느끼고, 해결의지를 보이거나 최소한 아파하는 회한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신세계는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와 전혀 얼토당토않다는 겁니다.”

자매님, 인간은 하느님이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존재입니다. 영화든, 문학이든, 이런 인간의 맨얼굴을 보여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끌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신세계가 보고 싶을 때, 앞으로도 얼마든지 봐도 되는 거지요. , 고맙습니다.”

자매님, 사랑합니다. 하느님도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 신세계도 사랑하고, 자매님의 현실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에는 신부님이 축원 기도 같은 걸 해주실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신부님도 신세계를 좋아한다고, 게다가 신세계의 원조격인 대부도 즐겨보신다고 덧붙여주신다면 물론 좋겠지.

(2012 제작, 한국, 박훈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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