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히든 피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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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히든 피겨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8.02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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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이야기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제목의 의미가 심오하다.

히든 피겨스.

히든감추다’, ‘숨기다의 의미로 통한다. 그런데 피겨스는 무엇인가, ‘피겨스숫자’, ‘손가락등 다중 해석이 가능한 문자이다. 결국 무엇을 숨겼다의 그 무엇을 우리는 다양하게 유추해야 한다. 영화에서 그 무엇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흑인여성의 능력과 행복이라 읽는다.

여자가 똑똑하면 불행하다

여자는 나대지 말아야 한다.’

50-60대 여성작가들의 상당수가 뛰어난 두뇌였음에도 정상적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이유이다. 집안이 가난해서 남자 동생과 오빠를 위해 돈을 벌어 학비를 보태는 경우는 보통이었다. 살만한 집안에서도 남자들이 기를 빼앗긴다고 일부러 딸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합리적인 사고로는 어이없는 노릇이지만 당시 가부장제 사회의 뿌리는 깊고 단단했다.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이 말은 종교적인 뉘앙스를 띠지만 사실은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남성의 갑질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치유하는 능력, 다스리는 능력,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여성을 제거하기 위한 일종의 정적 죽이기였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조선희 소설세 여자에 등장하는 인물들,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를 생각한다. 한국의 근세사에서 활동했던 진보적인 여인들의 삶은 당당했지만 가시면류관의 고통처럼 힘겨웠다. 대표적인 신여성이라 할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동인, 주요한 등 당대의 남성작가들은 자유분방했던 그녀들을 비난했다. 작품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커녕 호기심으로 얼룩진 개인사를 끄집어내어 공격과 비난의 표적이 되었었다.

 

흑인여성 세 명은 나사(NASA)에서 근무하는 탁월한 재능과 열정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1961년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 일상화되었던 시대였고 게다가 흑인여성은 이중삼중의 고난이 이어졌다. ‘흑인전용 화장실과 컵, 도서관, 학교, 버스좌석으로 상징되는 차별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꿈을 키우는 모습은 유쾌발랄하다. 차별을 행하는 자와 차별을 당하는 자 둘 중에서 누가 진실의 편에 가까운가, 백인들에 비하여 우월한 능력이 있다는 자부심 못지않게 삶을 사랑하는 그녀들의 진정성을 보라. 컴퓨터 프로그래머 도로시와 수학천재 캐서린,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잭슨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도로시는 컴퓨터가 도입되면 수를 계산하는 지하실 흑인여성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예견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한다. 도서관 이용의 제한과 고급정보를 차단하는 두터운 벽을 뚫고 그녀는 당당하게 지하실을 벗어나서 동료들을 이끌고 컴퓨터 작업으로 새로운 수작업의 시대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

수학천재 캐서린은 비상한 능력을 인정받아 우주비행 작업에 투입된다. 그러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기밀유지를 위해 중요 문서의 숫자를 검게 칠한 후, 오류를 발견하라는 황당한 상황에 처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프로젝트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메리잭슨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수강해야할 과목을 여성에게만 금지한 법률을 고쳐줄 것을 법원에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금지 영역에 도전한다.

판사님은 100년 후에 남을 위대한 판결을 할 수 있습니다.”

재판에서 메리잭슨은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밝히며, 흑인차별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하여 최초의 여성우주비행 엔지니어가 된다. 인종과 성별의 차별을 뚫는 의지가 역사발전의 원동력임을 몸소 증명한 셈이다.

 

그나마 세상을 잘 태어난 셈이다. 이들이 1900년 이전에 태어났다면 마녀가 되어 화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1920년대 한국에 태어났다면 식민지의 화가 나혜석처럼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채,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했을 지도 모른다.

세 명의 흑인여성이 미국의 나사(NASA)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하는 실존인물임을 알리는 자막과 사진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영화처럼, 일에 열중하는 여성들이 더 이상 불행하지 않으려면 역사의 도정에 동력을 주어야 한다. 이제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일과 가정의 양자택일을 강요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직장에서 존경받고, 가족에게 사랑받으며 결혼과 자아성취를 성공적으로 이루며 행복하기를, 제발.

(2016 제작, 미국, 테오도어 멜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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