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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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시』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9.10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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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영화를 만나는 시간은 특별하다
▲ 사진=네이버 영화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는 건 무지막지한 잣대이다. 인간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하여 소심한 회의주의 인간과 무대뽀 행동중심의 인간으로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의 모든 쟁점은 밤과 낮, 선과 악처럼 이분된다. 영화를 그런 식으로 나눈다면 편한 영화와 불편한 영화가 있는데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후자이다. 그동안 문제작으로 인정받았던 그의 영화는 친절하거나 편안하지 않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했는데 그 불편함이 몸에 좋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함이었다고 강변하면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까? 단언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그의 광팬이다. 그래서 영화팬을 내 식으로 이창동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누는 무식함을 감행한다.

그의 영화에는 은근한 중독성이 강하다. 특히 첨예한 사회문제라든지 속죄와 구원의 가능성에 관심을 표함으로써 말 걸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버닝, 등등이 그런 맥락이다. 그의 작품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등장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대신 날카로운 칼날을 느닷없이 목에 들이미는 식의 문제제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창동 영화를 본다는 건 이러한 문제제기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피할 수 없는 윤리적 심판대를 짊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의 작품 를 보고 싶은 날이다.

방학 첫날을 맞아 가슴 부풀었던 20187, 한반도는 폭염으로 푹푹 찌는 날, 노회찬 의원의 자살 사건이 전해졌다. 정치인에 대한 나의 관심은 뱀처럼 냉혹한 편이기에 그에 대한 관심 또한 자칫 특별하지 않을 뻔했다. 다만, 덜 나쁜 정치인으로 인정하고, 유능한 인물로 알고 있었는데 드루킹 특검에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주검으로 화답하니, 믿었던 애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당황스럽다. 고인이 된 노무현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했고, 죽은 자에 대한 측은함이 애상을 불러일으켜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를 보면서 죽은 자를 애도하며 술 한 잔 올리고 싶은 것이다.

 

전설의 여배우 윤정희가 미자역으로 등장한다.

외모는 귀부인처럼 곱지만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다. 미자는 이혼한 딸이 맡긴 중학생 손자와 단둘이 기초수급자로 허름한 아파트에서 간병인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알츠하이머병이 미약하게 시작되고, 간병하는 이가 죽기 전에 한 번만 남자 구실을 하고 싶다고 애원하고, 동네 투신자살한 여학생 성폭행 사건에 손자가 가담한 것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그녀는 얼토당토않게 시를 써보겠다며 쫓아다닌다.

▲ 사진=네이버 영화

 

시가 무엇인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구원을 생각하는 것. 가장 현실적인 것에서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는 작업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서 가장 행복한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영화에서 말하는 시의 극단적 상상력을 본다.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하여 던지는 물음에 동참하는 호기심 또한 예사롭지 않다. 미자는 수첩과 볼펜을 들고 다니며 시를 쓰겠다고 진지하게 탐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가난한 현실과 부조화를 이루는, 챙이 넓은 모자와, 레이스가 나풀거리는 스카프와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화사한 옷차림새, 시를 쓰겠다는 그녀의 행위는 어쩐지 이질적이다. 그녀의 부조화스런 모습처럼 시는 일상의 사람들에게 노랫말 등 가깝게 있으면서도 이질적으로 멀리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66,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지만 소녀감성의 순수함과 세파에 찌든 연륜이 공존하는 미자의 풍모를 상상해 보라. 주변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지 못하며 겉도는 건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나, 옷차림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쓸모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절제된 대사와 느릿한 전개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시를 쓰기 위해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사과를 만지고 쳐다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귀 기울이는 정성이 모아지지 않으면 미자의 절박한 심리적 흐름을 쫒아가기 어렵다. 미자는 반복해서 말한다.

시를 쓰기가 참 어려워요.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가 있나요?”

반복되는 미자의 발언에서 시를 쓰기가 어렵다는 말은 문제해결, 삶과 죽음의 메타포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시의 문장들이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서 낯설게 하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길들여진 자기합리화의 극단적 사례를 영화 스토리는 가난한 여중생의 죽음과 관련하여 냉엄함을 가장한 객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응급차에 실려 가는 시신을 붙잡고 허술한 옷차림으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중생의 엄마를 일별(一瞥)하는 미자처럼 카메라의 시선은 멀찌감치 뒷짐 진 자세를 보인다. 무수한 풍경의 하나로써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무관심한 이웃은 다수의 보통사람들이다. 여중생은 죽었고 가난한 엄마는 슬픔에 빠져있을 틈도 없이 남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 가해자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관례대로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을 모색한다. 학교 책임자는 죽은 피해자보다는 살아있는 가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로 은폐에 급급하다. 미자는 여중생(아네스)의 투신에 손자가 연루되었음을 알게 된 후 혼란스럽다. 울고 있거나,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매거나, 슬픔으로 깊어지는 미자의 표정을 카메라는 가끔 보여준다.

미자는 집단성폭행 가해자 학부모 대책위원회에서 결정한 500만원이라는 합의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감당하기 벅차다. 하지만 그보다 아무도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현실을 용납할 수 없어서 더 힘들고 외롭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를 완성하는 자가 감독인가, 배우인가. 유독 이창동이라는 고유명사는 영화에 마침표를 강하게 찍는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감독의 의도를 강렬하게 살리면서 연출력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의미에서다. 시는 고유명사의 본질, 특히 존재의 심연에 깃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혼을 살려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창동 영화, 는 그 소임에 충실했다. 한 편의 시 자체를 연기한 윤정희의 역할도 메타포를 폭넓게 살려 주었다. 강물에 투신한 피해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합당한 처벌을 하는 정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심금을 울리는 문자화 과정으로 완성되는 것.

마침내 미자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그 시는 미자의 분신이자,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이며, 만남에 대한 희망이다.

제목의 의미는 미자를 통해서 보여준 아름다움이자, 진실을 대면하는 고통이며, 속죄이자, 구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빠르게 편집되는 장면들 속에 미자의 시가 흐른다. 아네스가 뛰어내린 강물과 그 다리가 클로즈업된다. 아네스는 얼핏 슬픈 표정을 거두어들인다. 미자는 강물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시의 화자는 미자와 소녀 아네스로 겹쳐진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누군가는 노무현대통령을 연상했다고 한다. 미자와 소녀와 함께 노무현의 웃음까지 겹쳐진다. 어쩌면 노회찬의 잔영도. 미자가 완성한 시를 읽어야 영화는 끝이 난다. 소녀를 성폭행한 가해자 중3 남학생들은 남은 인생을 더 잘 살기 위해 합당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다소 길지만 미자의 시 전문을 인용한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한 번도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해야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2010 제작, 한국, 이창동 감독,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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