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입니다』
상태바
『노무현입니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10.25 06: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그의 영원한 팬이 되는 것, 한때 그게 행복인 줄만 알았다. 내가 최초로 열광했던 스타가 있었다면 송창식이나 안성기 정도이다. 송창식에 대해서는 그의 노래뿐 아니라 어정쩡한 손짓 몸짓이 다 좋았다. 결혼 초에 남편이 송창식 닮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했었나회의했던 마음이 봄눈 녹듯 스르르 풀어지곤 했었으니 연륜이 퍽 깊다.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섬세한 감수성에 자연스럽게 녹아 어우러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송창식의 노래에는 편안함과 반항과 솟구치는 비애가 일상성의 편안함으로 녹아있다.

나는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지 않는다. 노래를 좋아하듯, 전문가로서의 역량이나 예술세계를 높이 평가할 수는 있지만 사람 자체에 푹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송창식을 좋아했을 때조차 그랬다. 그가 했던 말 중에 싫어했던 기억도 또렷하다. 70년대 후반 송창식을 위협했던 가수가 혜성 같은 슈퍼스타 조용필이었고, 나는 그의 노래를 좋아했지만 내 취향은 아니라고 고래를 갸웃했었다. 그런데 짓궂은 사회자가 조용필의 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했던 말을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안방의 클래식 전축과 사랑방의 라디오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술가의 자만심은 그의 당당함이므로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배로서 적절한 발언은 아니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의 모순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래도 나는 송창식이 좋았고 지금도 그때 그 노래를 들으며 심신이 녹아드는 위로 또는 날개를 가다듬는 비상의 꿈에 젖곤 한다. ‘고래 사냥왜 불러’, ‘담배 가게 아가씨’, ‘피리 부는 사나이꽃 새 눈물기타 등등이다. 물론 송창식의 노래가 더 좋을 뿐 조용필의 노래도 나쁘지 않다. 온몸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위무하는 송창식의 손길은 다른 누구의 목소리나 선율과 비교할 수 없는 무심한 듯 배어드는 촉촉함이 있기 때문이다. 송창식과 조용필을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수세식 화장실과 재래식 화장실로 비유하고 싶다. 재래식 화장실에서만 맡을 수 있는 다양한 체취와 진한 느낌의 고유성이 송창식에게 있다고 할까. (便)의 원초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향기롭지는 않지만, 가끔 수세식 화장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조용필보다 송창식을 찾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정치인을 좋아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사상가로서의 간디를 좋아하고 혁명가로서 체게바라를 좋아했지만 위인들에 바치는 흠모의 정서였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숲을 거닐다 소나기에 흠뻑 젖는 것도 모를 만큼 나도 모르게 정치인을 좋아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솟구칠 만큼 아픔과 회한의 감정까지 비비고 볶아서 말이다.

노무현 생전에도 노사모를 자처하며 애정과시에 솔직했다. 입만 열면 노무현을 비방하고, 조롱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변호했고, 감쌌고, 대항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직장에서, 거리에서 매스컴까지 노무현은 대통령 시절 최악의 대접을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탄핵은 모면했다. 노무현이 탄핵 당했다면 나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 같다. 울화병으로 헤매거나, 최소한 우울증으로 오래도록 속을 끓였으리라.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변호인등 노무현을 기억하는 영화가 제작되었고 하나 둘 개봉되면서 그의 부활을 증명하는 듯 등장해서 반가웠다. 그에 대한 재조명이 어설픈 감상이나 군중심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노무현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말하는 다큐멘터리노무현입니다가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벅찬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극장에서 만난 노무현을 통하여 관객들은 그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을 조금 덜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2009523일 금강 둔치에 노무현 빈소가 차려졌었다. 전국적으로 추모인파가 끊이지 않는 분위기를 소도시이자 보수성이 강한 공주지역에서도 충분히 감지할만했다.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두 차례 그곳을 찾았다. 3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대동하여 함께 갔다. 학교급식이 시행되기 전부터 점심시간에 모둠별 만남을 진행하던 터였다. 금강 둔치는 공주시민들이 산책코스로 애용하는 곳이었다. 점심을 먹고 도로를 따라 하천가에 이르면 작은 바다라도 만나는 양 가슴이 확 트여 시원했다. 당시 가장 많이 갔던 식당은 본가라는 부담 없는 가격의 돌솥밥집이었는데 주인아주머니 인심이 후해서 남학생들의 왕성한 식욕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었다.

그곳에서 만난 노무현은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안내자 같았다. 추모의 마음을 담은 노란색 편지가 줄에 나부끼고 있었다. 사랑스런 삶이 죽음을 넘어 노란 꽃으로 부활하고 있었다. 마음속 피어나는 격정을 다스리며 덤덤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간다. , 노무현 대통령이 사랑했던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을 나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는지.

우리는 산책만 하다 가자.”

철부지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이들은 나름 진지하게 헌화하고 묵념하며 노란색 편지를 써서 걸기도 했다. 너도 나도 데려다 달라고 아우성이라 일주일 넘게 추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조문객이 많지 않았고 넓은 둔치공원은 평소처럼 한적했다. 우뚝 솟아있는 공주산성을 돌아 흐르는 금강을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늑하고 운치가 있어서 자주 찾는 곳인데, 그곳에서 노무현 대통령 조문을 하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

밀짚모자를 쓰고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은 논두렁에서 모 심다 나온 사람처럼 순박했다. , 서민대통령이었구나. 그래서 서민들만큼이나 천대받았던 거구나. 대통령의 죽음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슬펐다. 내가 처음으로 지지하고 사랑했던 정치인인데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게 아팠다. 권력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준 노무현, 그가 화두로 남겼던 지역감정의 뿌리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에서 엄마가 거짓말 잘 하고, 이기적이고, 말썽만 피우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내용이 나온다. 바로 그 아들이 거짓말과 이기심을 발휘하여 유능한 정치인으로 활동한다는 스토리인데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평범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다고 느꼈었다. 선거철마다 덜 나쁜 사람을 뽑기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듣지 않았던가. 그런 정치판에도 순수한 우정과 사랑과 정의가 존재한다는 걸, 일깨워서 일말의 희망을 증명한 사람이어서 노무현은 특별함으로 기억된다.

 

2017년 개봉한 노무현입니다는 송강호가 돼지국밥을 푸짐하게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변호인의 맨얼굴을 필름에 담았다. 지방 선거에서도 번번이 낙선했던 만년 꼴찌 후보 노무현의 부활도 보여준다. 2002년 국민 참여경선 지지율 2%로 시작해 대선 후보 1위가 되는 반전과 역전의 드라마를 생생하게 되짚은 다큐멘터리는 모세의 기적처럼 거역할 수 없는 후광을 뿜어내는 강렬함이 있다. 여기에 '노무현의 사람들'의 진심 인터뷰까지 더해져 그리움을 전하는 작품.

노무현의 친구 중에는 정보기관 노무현 사찰 담당자가 있다는 사실도 특이했다. 뻘흙 정치판에서도 반대쪽 사람을 배경이 아닌 사람 자체로 존중할 수 있는 뱃심과 여유로움이 바로 노무현이다. 인간적 진심과 매력으로 다가와 진심으로 소통의 힘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인간적인 대통령을 만났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다큐영화 공범자들을 함께 본다면 언론과 정치권의 불순한 결탁에 대한 배경지식이 높아질 것이다. 평소 신문과 TV를 멀리하고 살아가는 필자에게 다큐영화는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판단은 스스로가 할 일이다. 하지만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정보를 외면하지는 말자는 자기반성을 일깨운 영화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구가 떠오를 때 찾고 싶은 영화.

(2017 제작, 한국, 이창재 감독)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