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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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동주』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2.02.16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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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일제강점기 시대의 문인들은 대부분 목숨 줄이 길지 못했습니다. 김소월은 32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이상은 28세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쳤고 윤동주는 27세에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나도향은 25세에, 김유정은 30) 특히 독립을 염원했던 진보 문사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해방 직전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젊음만큼 흑백사진은 해맑습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반면에 친일 시인들은 식민지 시대에도 권력과 부를 누렸고 해방 이후에도 명성과 힘을 누렸습니다. 프랑스가 나치에 협조했던 전범들의 단호한 처형과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그나마 동주같은 영화가 지금까지 많은 관객을 확보하는 게 얼마다 다행인지 모릅니다.

윤동주는 이상처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도 아니었고, 김소월처럼 옷과 밥과 자유를 추구했던 시인도 아니었습니다. 소월의 시는 진달래꽃’, ‘초혼등 수십여 곡이 노래로 불려지고, 이상의 작품은 현대문학사상 최대의 연구논문 주제를 만들어내는 지적탐구 대상이었습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이들과 달리 시인 윤동주는 감성을 울리는 시를 썼습니다. 천재성의 비범한 능력보다는 소박하면서도 결벽한 심성이 느껴져서 가까이 하고 싶은 영원한 친구이자, 국민 오빠로 여겨집니다. 자화상,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 참회록처럼 그의 시는 가슴으로 파고들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성장하고 진화합니다. 윤동주는 그렇게 애틋한 그리움으로, 애달픔으로 기억됩니다. 무엇보다 그를 기억할 때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그의 세심함이 떨림의 촉각으로 온몸을 물들이는 것입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크고 작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특별하지 않았지만 영화만큼은 그 영향력이 막강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체험한 만큼 느끼는 것입니다. 윤동주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화 동주의 등장은 자랑스럽고 고마웠습니다. 그의 시가 세상의 감성을 울린 게 확실하지만 그가 새삼 대중의 가슴에 사무치는 건 분명코 영화의 힘인 듯싶습니다. 다큐멘터리 식으로 편집한 저예산 흑백영화에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건 든든한 일입니다. 비운의 시인에게 바치는 애도와 사랑으로 이 영화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고맙습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감독의 시선은 윤동주와 송몽규 그리고 그 시대의 이름 모를 젊은이들을 스크린에 가득 채웁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독서모임을 가장한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조선인 유학생들은 만주벌판 독립군처럼 말을 타고 총을 쏘는 게 아닙니다. 투사보다는 지사에 가깝습니다. 동주역시 영웅담이나 신비화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나간 이야기에 서서히 가슴 가득 온기를 채웁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느끼는 통증이 가슴에 아로새기는 파문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100년 전의 시인이라면 썩 괜찮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의 삶은 안쓰럽지만 이 영화는 힘이 셉니다. 단조로운 흐름을 시어의 틈새언어로 상상하며 견뎌내는 인내력을 조금만 발휘한다면 말입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과 시는 윤동주의 서시라고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는 그의 시에서 윤동주의 육성이 들립니다. 1945, 해방 직전의 2월이 떠오릅니다. 비록 온몸이 발기발기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송몽규처럼 씩씩하게 독립운동을 펼치지 못했던 소심했던 그의 음성이 또렷이 들립니다. 그는 우리에게 거대담론의 희생자로서보다는, 오늘 하루 부끄러움의 미학을 의연하게 들려주는 수줍은 미소의 청년입니다. 그 결벽을 사랑할 때, 조금은 나의 영혼도 순수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누구나 수백 번씩 읽었던 그 시를 다시 한번 낭송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서시전문

(2016 제작, 한국, 이준익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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