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 30년 전,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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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 30년 전,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1987』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2.03.1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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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연말연시와 방학으로 극장가는 성수기였다. 그리고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강철비, 위대한 쇼맨등 선택에 고심할만한 영화들이 무더기 상영 중이었다. 최고의 흥행가도를 달리는 신과 함께관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공주 연미산 기슭 도토뱅이식당에서 닭백숙을 먹고 느긋하게 찾은 영화관에 우리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매진을 피해 선택한 영화가 1987이다. 그때까지도 이 영화에 대한 기본정보 없이 사회고발의 다큐영화겠지.’ 했는데 좌석에 앉으면서 적잖이 놀랐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로 채워진 좌석에는 기대감이 넘실대며 흥성거렸기 때문이다.

다큐영화가 재미없을 거라는 편견을 깬 건 공범자들이었다. MBCKBS 파업과정을 정리한 이 영화를 보면서 평소 신문, 뉴스와 담을 쌓고, 집에 TV조차 없이 까막눈처럼 살았구나.’ 반성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1987년도 전후는 상세하게 역사적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화면을 응시하면서 별다른 호기심이 없었다. 다만 30년 전의 그 유명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은폐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그 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 영화가 한국영화사에 획을 긋는 무엇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그 핵심은 시대의 얼굴에 있었다. 박종철, 이한열을 애도하는 시대의 얼굴은 보통사람들이다. 30년 전이나 이후나 변함없이 시대를 짊어지는 주인공은 보통사람들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현실에서처럼 영화에서도 조명 받지 못한다. 이 영화는 그들을 주인공이 없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구성의 마력이 있다. 80년대를 재현한 화면 자체에 빨려 들어가는 힘은 감독 장준환의 역량이다. 컴퓨터 그래픽과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만들어낸 영화의 흐름이 신선했던 건, 시대를 감당했던 각계각층의 얼굴을 담담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들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유발하면서도 자잘한 재미와, 맛깔스런 대사를 연기했다. 지루하지 않을 뿐더러 영웅의 탄생 시나리오 같은 빤한 내용도 절제되어 있었다. ()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사건을 근거로 군부정권의 가혹한 고문, 사건 날조를 숨 가쁘게 표현할 뿐이다. 1987년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인물들을 소시민적 보통사람(처음 정한 제목이 보통사람이었다.) 입장에서 조명한 것은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관객의 숫자를 넘어 사회의 지층을 강렬하게 흔드는 영화 1987의 힘은 무엇일까. 짜임새가 탄탄하고, 식상한 선악구조의 대립이 아니어서일까. 아니다. 이미 촛불집회를 통하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역사적 진실이 사회학적 상상력의 진폭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폭넓은 인간유형의 내밀함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연민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재현해낼 수 있는 역량은 영화관의 공간을 넘나드는 흐름, 시대를 이끄는 힘이다. “빨갱이를 잡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주화 탄압에 앞장서는 박처장(대공분실의 실세)을 보라. 애국심과 권력욕이 뒤범벅된 그는 영화의 초반에서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로서 1987년 독재 권력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다.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 조작하고, 공문서를 위조하고 교도소의 법률과 규칙을 짓밟는 등 모든 등장인물의 일상을 뒤흔드는 존재, 그는 독재 권력의 상징이자 가해자이지만 결국은 시대의 피해자요 망상가에 불과한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를 보는 재미는 제각각이다. 배우의 연기력에 빠진 감정이입의 순간도 있고 절묘한 사건과 반전의 장면에 매료되어 골치 아픈 현실을 잊어버리는 즐거움도 있다. 생활에 대한 반성이나 깨달음 또는 가치관을 풍부하게 하는 상식이나 빠드름한 교훈에 끌리기도 한다. 이 영화는 위의 재미와 함께, 분노와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통하여, 1987년 청춘에게 바치는 연가처럼 두근두근 심장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6·29를 전후하여 공단의 구인광고를 두리번거리던 나의 얼굴을 떠올린다. 시국을 걱정하고 독재타도와 호헌철폐스크럼에 뛰어든 결과는 어이없게도 실업자의 모습이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발령이 보류된 처지(당시 국립사대는 의무 발령제였고, 교사가 부족했던 상황이라 동기들은 모두 발령을 받았었다.)여서 가난한 부모님께 짐이 되었고, 착한 동생들이 보내는 원망과 걱정의 눈빛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그랬다. 사회변혁 이론을 확신했으나 작은 몸짓이 나비 효과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이 흔들렸던 그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내 얼굴이 영화에 등장하는 보통사람의 한 명이었다는 위안이랄까. 영화는 수많은 촛불 앞에서 숙연해지던 그 감동을 선물하는 듯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이 무소불위의 권력과, 이에 계란으로 바위 치기식으로 도전하는 평범한 인물들이 한바탕 붙는다. 당연히 다양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그 인물들은 공안검사, 의사, 교도관과 박종철의 아버지와 민주화 시위에 동참하는 대학생들이다. 두려움에 떨며, 자신이 본 그대로 증언하며 말을 더듬는 의사.

내가 오기 전에 죽어 있었어요. 시신에 물이 묻어 있었고..”

사체 소각을 불허하는 공안검사와 보도지침에 반기를 든 언론인들. 그리고 결정적 증언을 제보한 교도관들이 바로 떨리는 목소리의 보통사람들이다. 의인이나 민주화투사도 아니었던 이들의 증언이 진실을 밝히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들의 증언 과정은 사소한 만남에서 비롯하거나 이건 너무하다는 최소한의 책임감과 직업의식이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이 미미했던 목소리들이 연대의 힘으로 발휘하여 철옹성 권력을 무너뜨린다는 설정이다.

박종철을 살려내라

아무리 외쳐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의 구호였지만 연세대 정문에서 최루탄에 직통으로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

한열이를 살려내자

박종철의 구호는 정권이 막을 수 있는 가랑비였을지 모르지만 이제 봇물이 터지면서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드디어 세상을 바꾸는 도화선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다고 뭐가 바뀌는데요?”

뭐가 그렇게 잘났어요? 가족들 생각은 안 해요?”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연락책을 맡았던 교도관의 조카로 등장하는 연희의 대사가 가슴이 아프다. 연희는 노조결성으로 해직되어 알콜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아빠를 떠올리며 앞장서는 사람만 다친다는 피해의식에 사무쳐 있다. 삼촌까지 변을 당할까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하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의 지병을 얻어 골병 든 몸으로 버티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도했던 시절이다. ‘역사의 밑거름을 위한 행위일지언정 나의 가족이라면 어찌 의롭다는 말만으로 지지할 수 있으랴. 민주화 운동의 당위성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나를 희생할 수 있는가그 시절 무수히 들었던 질문이며 스스로에게 던진 의문이었다. 연희의 질문에 담긴 더 이상 다쳐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짠한 이유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1987영화는 이 질문을 피해가지 않았다.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세상이 변했으니 계란으로 바위를 뚫는 기적을 확인한 셈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희생자의 가족은 영원히 그 슬픔을 짊어져야 하는 게 변혁의 이치이다. 연희가 이한열 장례식장의 거대한 행렬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며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시대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한열 어머니는 끝내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하니 그 심정이 백번 이해가 간다. 열사의 칭호를 얻었지만, 어미의 슬픔을 덜어줄 수는 없다.

일요일에도 경찰청 인권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를 개방한다는 소식이다. ()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흥행하면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니 영화의 힘은 막강하다. 그렇다. 이 영화는 과거를 보여주면서 현재를 지지하는 응원이며 미래로 이어지는 염원이다. 다만 옥의 티라고 할까, 이 영화에는 여성의 힘이 과소평가되어 있다. 또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 노동자가 가려진, 결국은 운동권 대학가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 못내 아쉽다.

(2017 제작, 한국, 장준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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