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숨어있는 역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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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숨어있는 역사'②
  • 최창석
  • 승인 2020.05.02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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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석이 증언하는 조선 최고의 '청백리 이세장'을 아시나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청백리 이세장'의 비석, 또 하나는 그의 부친 이목의 비석이다. 사진=벽해 최창석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청백리 이세장'의 비석, 또 하나는 그의 부친 이목의 비석이다. 사진=벽해 최창석

충남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가면 조그만 怪石과 그 괴석의 유래비 그리고 두 분의 묘비석이 있다. 하나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청백리 이세장의 비석이요, 또 하나는 그의 부친 이목의 비석이다.

이세장은 공주 출신으로 본관이 전주요, 호가 금강어수(錦江漁叟-금강에서 고기잡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장기면 당암리가 집이었고 1522년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공이 임무를 마치고 낙향하는데 강원도 사람들의 공의 선정에 감복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많은 선물을 주었지만 하나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무더운 여름이라 부채를 선물했지만 부채마저 강에 던져버려 지금도 강원도에는 투선강(投扇江)이라는 지명이 있다고 한다.

아무 선물도 받지 않은 그의 청렴에 감복한 강원도민이 관찰사 시절 즐겨 감상하던 관사 정원에서 있던 괴석을 공주 당암리까지 지고 와서 공에게 드렸다는 것이고, 이 괴석이 지금은 그의 묘 앞을 장식하고 거기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괴석의 유래비를 세웠다고 한다.

▲벽해 최창석 공주문화원장
▲벽해 최창석 공주문화원장

이세장이 어찌나 청렴하였던지 공이 죽은 후 장례를 치루려는데 집안에 돈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나라의 조정 관료가 십시일반으로 동조부의(同朝賻儀)를 하여 장례를 치루었다고 하며 이때부터 초상 때 돈을 보태주는 부의(賻儀)의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이목이다. 이목의 자는 중옹, 호는 한재, 시호는 정간으로 당시 사림의 거두 김종직의 문하이다.

대쪽 같은 유생으로 연산군의 무오사화 때 능지처참되었다가 1504년 갑자사화에서는 부관참시까지 당했다가 중종1년에 신원이 됐다.

1495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천재로 앞길이 창창하였지만 조선 최악의 필화사건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에 연루되어 젊은 나이에 처형됐다.

[출처] 괴석이 증언하는 조선 최고의 청백리 이세장을 아시나요?|작성자 : 공주 문화원장 벽해 최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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