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 그리고 0.7%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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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 그리고 0.7%의 의미
  • 조성일 참여연대이사장
  • 승인 2022.03.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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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성일 참여연대 이사장
▲사진=조성일 참여연대 이사장

 

이번 대선은 팬덤 현상이 유난하였다. 팬덤은 합리적 사유를 기반으로 세워지는 결사체가 아니다. 특정한 요소에 이끌리는 배타적, 감성적 결합이요,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는 흡사 바람이다. 바람 앞에서는 어떠한 논거도 소용없다. 다름 아닌 파시즘이 자라나는 토양과 흡사하다. 이번 대선이 그러한 공간에서 치루어졌고 그 후유증이 실로 크다.

대선 후, 며칠 동안 밥을 못 먹고 있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울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이러한 적이 없었다. 0.7%라는 초박빙의 결과 때문일까? 아니다. 거기서 오는 것은 울분이 아니다. 아쉬움이다. 아쉬움과 울분은 생성지가 다르다. 그러하다면 대체 이 울분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바로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자다. 단언컨대 당선인이라는 이름이 홍준표였다면, 유승민이었다면 이렇게 까지는 아니었을 터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하면 언사가 사나워질 수는 있으되 울분을 부르지는 않는다. 억울함을 참을 수 없을 때 치밀어 오르는 것이 울분이요, 불의에 졌다고 느낄 때 오는 것이 억울함이다.

그러하다. 적어도 국민의 절반에게 윤석열 당선인은 불의한 사람이다. 부여받은 사명, 검찰개혁을 거부하고 등돌려 수구언론의 엄호 하에 수사권을 남용하여 자신을 믿고 맡긴 현 정부를 혼란에 빠뜨리고 그 틈에 자신의 입지를 세운 불의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세간은 그것을 검찰쿠데타라고 이르기도 한다. 불의한 사람이 정의의 이름으로 당선된 이 현실이 개탄스러운 것이다. 자신들이 지켜온 삶의 가치 그리고 정의가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이 현실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윤석열은 불의한 사람이라는 이 명제가 객관적 진실은 아닐지 몰라도 국민의 절반이 확고하게 믿고 있는 실체적 사실이다.

0.7%라는 숫자가 지시하는 것은 그 실체적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경고다. 삼가하여 살얼음을 걷듯 조심조심 걸어가라는 지시이다. 권력남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2022년 대선은 민주당에는 책임을 묻고, 국힘당에는 경고를 보낸 국민이 애절하게 부른 절창이다.

민주당은 정권에 더하여 의회 180석을 부여받고도 이명박을 낳고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언유착을 단죄하지 못하였고, 자신들의 기득권에 안주하여 정치개혁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였다. 부동산 문제는 한 정부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는 실로 아니지만 혼란이 너무 컸고 일관성이 없었으며 집권당으로서 스스로 엄격한 모범을 보이지도 못하였다. 욕망이 아수라처럼 충돌하는 이 현실에서 하나의 규범을 세우고 그 규범을 따르면 공공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설득하고자 한다면 남보다 더 스스로 그 규범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당은 집권당으로서 그 점이 부족했다. 설득은 말과 이미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5년은 5년 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오는 것이다. 0.7%의 의미는 의회 180석과 국민 절반의 지지로 못 다한 개혁을 완수하라는 뜻이다. 그리 할 때만이 5년 후가 있다. 국민은 민주당에게 그 힘을 남겨주었다. 민주당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맺는 말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북한을 검사시절 마음먹은 대로 다루던 범죄집단 쯤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어림없는 일이다. 그 거침없던 경험이 오히려 불안하다. 호전적인 매파 조지 부시부자도 어쩌지 못하였다. 박근혜 정부도 만만히 보다가 개성공단만 잃었다. 미국이 말하는 정의와 평화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면 정의요, 반하면 악이다. 이익에 반하면 정의의 이름으로 협박하고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을 한다. 삼성의 영업비밀을 내놓으라는 것이 그러하고 리비아와 이라크가 그러했다. 그것이 패권국가 미국의 실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미국의 등에 업혀 일본과 동맹을 말하며 중국까지 적으로 여기는 언사는 전쟁을 부르는 주술이다. 선제타격과 사드배치는 그 주술의 첫 마디다.

남북은 운명공동체다. 북한이 멸하면 남한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평화는 관리다. 조그만 명분도 주어서는 안 된다. 남북이 화합하여 공생하는 오직 그 길만이 온전한 주권국가로서 평화로운 반도를 지키는 길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대북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5년은 너무 길다.

 

부디 칼은 칼집으로.

 

사단법인 공주참여자치시민연대

이사장 조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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