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여행이다 『페르세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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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행이다 『페르세폴리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2.08.29 0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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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6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박주영은 장편소설 고요한 밤의 눈에서 글쓰기와 책 읽기의 의미를 이중스파이라는 감시적 존재의 삶과 연관시킨다.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세기말적인 모순투성이 사회에서 자기구원을 포기하지 않으며 희망을 찾는 이야기인데 그 중심에 책이 놓여있어서 흥미롭다. 스릴러처럼 전개되는 등장인물인 스파이의 의미가 무엇인지 심층적 사유를 끌어내는 작가의 내공 또한 만만치 않다. 스파이는 현대인이 존재하는 방식이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품이면서 기획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만이 거대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자유를 꿈꾸고 저항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가능성이 책을 읽고 쓰는 힘, 기억의 힘으로 비유된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이란영화 페르세폴리스에서 자유와 저항의 의미는 눈물겹다.

페르세폴리스1978년부터 1992년의 이란의 서방 의존적 왕권과 그 저항으로서의 주권회복과 종교혁명 속에서 감시시스템의 변화과정을 리얼하게 증언한다. 할머니의 당당한 매력과, 삼촌의 목숨을 건 저항, 그리고 주인공 소녀 마르잔의 성장과정이 펼쳐진다. 독재와 가혹한 인권말살의 감시체제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마르잔과 그 가족을 통하여 눈물과 믿음과 사랑으로 피어나는 에니메이션 영화이다. 주인공 마르잔은 자유분방하게 살던 꿈 많은 소녀였다. 감자튀김과 케찹을 좋아하고 이소룡을 동경하며 아디다스를 신고 예언자를 꿈꾸는 평범한 삶이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 세력이 친미 팔레비왕정을 무너뜨리고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수립했다. 이들은 서구 문화와 제도를 배척하고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했으며, 종교 지도자가 통치하는 신정 국가를 세웠다.

혁명정부가 왕권을 타도하고 정권을 인수받은 후부터 중세의 암흑기처럼 신의 이름으로 율법을 앞세우고 인간의 욕망과 사생활을 탄압하는 무시무시한 감시와 탄압의 시대가 시작된다. 여성의 화장이 금지되고 히잡이 강제되었으며 청춘남녀의 만남이 금지된다. 술을 비롯한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들의 합법적 거래가 금지된다. 순찰자의 감시망을 피해 걸어야 하고, 마이클잭슨 음반 매매가 음지에서 이루어진다. 순찰을 피해 파티를 열고 술을 마시는 일상이 반복된다. 평범한 일상이 범죄가 되는 사회, 독재왕조에서 감금된 정치인사가 3천 명이었는데 혁명정부는 30만 명을 감금하고 날마다 처형을 감행하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가혹한 형벌적 삶을 종교정치라는 미명하에 강제한다.

특히나 여성인권은 잔혹하게 짓밟힌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마르잔은 이란을 떠나서 자유롭게 살려고 했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문화적 차이와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무시 속에서 몸도 마음도 병을 얻고 말았다. 조국의 현실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마르잔이 겪은 급격한 문화충격은 이란사회 젊은이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귀국하였지만 혼란과 갈등은 여전하다. 이란여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결혼과 이혼의 부대낌을 겪는 건 필수코스처럼 여겨진다. 사랑하는 남자조차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할 뿐 아내의 편에 서기는 쉽지 않다.

마르잔은 가족에게 있어서 현재의 행복이자, 미래의 희망이며 자랑스러움이다. 결국 마르잔에게 보내는 가족의 무한지지와 신뢰가 영화의 힘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족의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아누슈 삼촌의 유언은 결국 이란의 역사를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들의 가족사가 결국은 이란 그 자체인 것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는 히잡을 쓴 이란 여성들이 당당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법정에서 이혼을 주장하거나, 자신의 결백을 강조한다. 문화적 충격이라고 할까, 잘못된 선입견이라고 할까, 이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다가 페르세폴리스를 만나는 행운을 걸머쥐었다.

제목 페르세폴리스2500년전 이란이 페르시아제국으로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고대도시이다. 제목과 영화내용을 결부시키는 건 아리송하다. 현재 이란을 폄하하는 편견들, 인권유린, 히잡과 차도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해석해본다. 이란여성의 자존감을 응원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차별적으로 억압하는 제도와 권력에 저항하기 위하여 연대의 손을 함께 엮어야 한다. 마르잔을 지지하는 건 가족만이 아니다. 더 큰 공동체의 연대를 꿈꾸는 이유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 페르세폴리스, 프랑스 외 애니메이션 2018년 재개봉,

마르잔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감독, 96. 12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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