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시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시 한 편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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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시 한 편 감상하기
  • 김명수시인
  • 승인 2022.12.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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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의 설야

▲김명수 시인
▲김명수 시인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여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 얀 입김 절로 가슴이 매여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 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 올로 차디찬 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픈 그 위에 고이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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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을 다녀 오는데 흰눈이 내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한 폭의 그림 바로 그것이다. 당장이라도 운전대를 놓고 차를 멈추고 밖으로 달려가 뛰놀고 싶다. 어릴 때 시골 동리에서 동무들과 눈을 뭉치고 던지고 눈사람을 만들던 모습, 비닐 포대를 뜯어 비탈길에서 미끄럼을 타던 순간이 한꺼번에 오버랲 되어 떠오른다. 그 눈길을 손잡고 다정하게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머리에 하얗게 쌓인 눈을 머리에 두른 수건을 벗어 살살 털어 주시던 엄마의 다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그 젊은 날 국제극장에서 처음으로 그 사람과 같이 눈싸움이란 영화를 보던 순간이 활동사진처럼 스쳐 지난 간다. , 이렇게 내리는 눈이 금새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현실 속으로 들어 가고 싶고 지금 그냥 한없이 눈을 맞으며 나무처럼 서 있고도 싶다.

코로나19로 고생한 지난 2,3년간 눈이 와도 별로 이런 감정을 못 느꼈던 같다. 이렇게 눈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즐겁고 기쁘고 반가운 순간들을 가져 올 것만 같다. 김광균의 시 설야를 이 참에 다시 한 번 읽으며 나도 이 먼 곳의 옷 벗는 소리 속에 잠시 취하고 또 취해 본다. 김광균은 이렇게 눈 오는 모습 하나로 다양한 감각을 서정적으로 잘 결합하여 현대시를 새로운 이미지로 구축하는데 성공한 시인이다. 특히 이 시에서의 시각적 이미지인 처마 끝에 호롱불/흰눈/하이얀 입김/한줄기 빛/의 차분하고 아름다운 그림 같은 시각적 모습과 여인의 옷 벗는 소리/와 같은 청각적이면서도 은유적인 표현,그리고 싸늘한 추회/의 촉각적 이미지들이 한데 어우러져 시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면서도 참 아름답게 느끼게 한다. 이러한 감각적인 서정은 우리 시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어 현대시의 공간을 넓히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되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이를 계기로 1930년대 후반에는 순수서정시 이후의 모더니즘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반발하여 인간 생명 자체를 추구하는 경향과 전원회귀적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겨울이 되면 좀 춥다는 것이 흠이지만 눈이 있어 참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음에 행복하다. 눈이 있어 또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느끼는 만큼 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겐 미끄럽기에 또 위험하기도 하다. 이런 모든 순간들을 보며 참 좋은 것은, 아름다운 것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에 동의 한다. 항상 불편을 감수해야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선 언제나 음양이 함께 존재하듯이 끊임없이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이렇게 아름다운 눈이 흩날리는 눈길을 걸으며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겨울이 되었으면 한다. 이 아름다운 설야(雪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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