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군수리사지, ‘백제 사찰 중문터’ 새롭게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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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군수리사지, ‘백제 사찰 중문터’ 새롭게 확인
  • 유지선 기자
  • 승인 2022.12.15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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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찰의 중문터와 남회랑터 기단석 발견
▲부여 군수리사지 발굴현장 모습. 사진=부여군
▲부여 군수리사지 발굴현장 모습. 사진=부여군

충남 부여군(군수 박정현)에서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의 허가를 받아 추진하고 있는 ‘부여 군수리사지 발굴조사’에서, 백제 사찰의 중문터와 남회랑터 기단석이 새롭게 확인되어 14일 발굴현장(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22-번지 일원/조사기관:한국전통문화대학교)을 공개했다.

부여 군수리사지는 일제강점기(1935~1936년)에 목탑터, 금당터, 강당터 등이 조사됐고 금동제불상, 기와, 전돌 등이 출토되어 백제시대 사찰로 확인됐다.

이후 2005~2007년, 2011년 조사에서 목탑터와 금당터를 다시 확인하고 동회랑터와 서회랑터도 일부 확인했으나, 중문터는 일제강점기에 목탑터 남쪽에서 발견된 기와무지 인근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되었을 뿐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에 조사된 군수리사지 중문터에서는 목탑터 중심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25m 떨어진 곳에서, 남동쪽 모서리에 놓은 기단석과 기와무지가 발견되어 그 위치와 규모를 알 수 있게 됐다.

중문(대문 안에 세워진 문으로, 사찰에서 중심건물의 앞쪽에 세워지고 좌우에 회랑이 연결되는 문)의 기단 규모는 동서 길이 약 14m로 추정된다.

남회랑터도 남쪽 기단석과 기와무지가 일부 남아 있는데 중문보다 좁은 기단을 갖춘 회랑(사찰이나 궁궐에서 주요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지붕이 있는 긴 복도)이 중문의 동쪽으로 약 10m 이어지고 있다.

다만 중문과 남회랑의 서쪽 부분은 사찰 폐기 후 축조된 백제시대 도로(남-북방향)에 의해 심하게 파괴되어 있다.

이전 조사에 확인된 군수리사지 목탑과 금당의 기단은 전돌이나 기와를 세우거나 쌓아서 만든 것인데 반해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중문과 남회랑의 기단은 돌로 만든 석축기단이다.

중문의 기단석(건물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진 후 터보다 한층 높게 돌로 쌓은 단)은 ‘ㄱ’자 형태로 잘 다듬은 모서리 지대석(地臺石)으로 그 상면에 정방형의 턱이 마련되어 있어서, 이곳에 모서리 기둥석인 우주석(隅柱石)을 끼워 놓고 그 위에 갑석(甲石)을 얹은 가구식(架構式) 구조로 추정된다.

이번에 확인된 중문터와 남회랑터는 백제 사비도성 내부에 위치한 사찰인 군수리사지의 중심 사역 범위와 규모를 파악할 수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중문의 가구식 기단(지면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우주석과 면석을 세우고, 다시 그 위에 수평으로 길게 갑석을 얹어 목가구를 짜듯이 짜임새 있게 만든 석축기단)은 부여지역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것이어서 백제 사찰의 중문을 복원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부여군과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진정성 있는 정비와 관리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백제왕도 핵심유적인 부여 군수리사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기 사찰문화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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