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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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3.02.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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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네이버 영화
▲자료출처=네이버 영화

엄마가 되는 일은 아기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뱃속에서 함께 숙식하고 애무하며 온몸의 촉각으로 깊은 교감이 시작된다. 아기가 태어나면 생판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와락 끌어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아버지가 되는 일은 어떨까. 일단 뱃속에 있을 때는 남의 일과 진배없다. 탯줄로 엄마와 연결되어 있는 끈끈한 친밀감이 아버지는 당연히 없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자신과 닮았다는 확증을 찾아내면서 비로소 혈연으로 맺은 동질감에 안도한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영화적 설정은 혈육과 양육, 즉 낳은 정과 기른 정을 저울질한다. 그렇다고 무엇이 중요하다의 문제로 접근하는 건 아니다.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고 단언할 뿐이다. ‘그렇게라는 표현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저마다 다른 상황과 경험을 함축한다. 다양한 아버지와 아들의 상황을 나열할 수는 없지만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공통분모를 영화는 다큐처럼 섬세하게 기록하는 방식을 취한다.

두 가정의 7세 아들과 두 명의 아버지를 카메라는 구석구석 집요하게 추적한다.

먼저 두 가정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건 병원의 실수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간호사의 자백

으로 서로의 아들이 바꿔치기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병원측에서 자리를 마련한다. 외모와 경제력을 비교하자면 시골의 전기 상회를 운영하는 유다이와 대기업 임원인 료타는 차이가 많이 난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확연하게 구분되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과연 아버지의 우열을 정해주는 것일까? 영화는 시종일관 의문을 제기한다.

영화의 시선은 료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료타는 처음에는 자신이 아버지의 자격으로 유다이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한다. 유다이는 옷차림도 후줄근하고 쉴 새 없이 떠드는 모양새도 채신머리없어 보인다. 아이들이 뒤바뀐 이 상황에서 보상금운운하는 얘기를 듣고 돈이 궁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두 아이를 모두 키워볼 욕심까지 품는다. 돈으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다이쪽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고 문제는 점점 복잡해진다.

어른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들이 겪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두 가정은 합의하여 계획적인 만남을 시도한다. 료타는 바쁘게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짬을 내기가 쉽지 않다. 늘 서두르고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 어설프고 채신머리없어 보이는 유다이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아내와도 소통이 잘 된다. 료타는 가족과 소통할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며 사회생활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았었는데 아이 문제로 시간을 내기가 번거롭고 힘들기만 하다.

 

결국 료타는 지금까지 아들에게 가졌던 불만스러움, 즉 자신을 닮지 않은 외모와 소극적 경쟁심이나 똑똑하지 않음이 친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혈연에 집착한다. 그렇다고 키우던 아들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소유물로서의 비교를 하면서도 료타는 자신이 키우던 아들 케이타와 친자 류세이 둘 다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을 합리화한다.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제안을 하지만 거절당하였기 때문에 일은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허술하고 가난해 보여서 쉽게 응할 줄 알았던 유다이는 뜻밖에도 완강하게 거부의사를 표현한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

부자관계조차 거래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료타의 첫 번째 좌절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친자라고 확신하는 료타의 주장 때문에 나머지 가족 모두가 내켜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들을 바꾸기로 합의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집을 오가며 생활해 보기도 하는데 예상 밖으로 두 명의 아들은 료타의 집보다는 유다이의 집을 좋아한다. 두 집의 차이점은 외양으로는 료타의 집이 안락하고 품격이 있다. 엄마들은 둘 다 친절하고 따뜻하다. 깊은 유대감으로 한몸처럼 살아왔던 료타의 아내는 심지어 친자가 아니라고 냉정하게 아들을 거부하는 료타에게 절망감을 느낀다. 아들과 둘이 떠나고 싶어 할 지경이다.

케이타, 우리 둘이 떠날까?”

하지만 케이타는 아직 복잡한 가족관계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버지와 엄마와 셋이 함께 사는 것만이 전부이다.

그럼 아버지는?”

오히려 아버지를 걱정하는 것이다.

엄마는 유약하고 숫기 없는 케이타를 걱정했지만 뜻밖에도 케이타는 친부모의 집에서 적응을 잘 하고 편안해 한다. 영재학교 준비나 재능 없는 피아노에서 해방되어 즐거워하는 모습은 천진난만하다. 아이들은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충실함을 보여준다고 할까.

문제는 료타이다. 류세이를 데려와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료타는 물질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이전 가족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힘들어한다. 류세이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며 료타는 케이타에게 부족했던 아버지였음을 깨닫는다. 케이타가 자신 몰래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며 케이타의 사랑을 감지하게 된 것이다. 케이타가 찍어놓은 사진은 자신이 잠을 자거나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함께 놀아주지 못한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반성하고, 케이타가 하고 싶었던 말을 비로소 듣게 되는 료타. 결국 료타와 케이타는 뒤늦은 대화를 나눈다.

 

케이타을 찾아가는 료타. 하지만 아이는 아버지를 피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료타는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좋은 집과 사회적 지위는 첫 번째로 중요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차근차근 말하고 싶어한다. 서두르지 않고 드라마틱한 상황 설정 없이 잔잔하게 가슴 밑바닥을 울리는 진정성을 화면에 담는다. 료타는 외면하는 아들에게 다가가서 시선을 맞춘다. 그리고 자신이 아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료타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그래서 당연히 좋은 아버지라고 착각하는 젊은 아버지를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사회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고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이와 교감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유다이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서 제시될 뿐이다. 영화는 가르침이나 가치판단은 철저하게 사양한다.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좋은 아버지란 무엇인가의 물음은 자신의 문제일 때만 특별히 어려운 문제가 된다. 물론 아버지라는 말을 부모또는 양육자라고 바꾸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자신감과 당당함보다는 갈등하고 회의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전문가의 발언도 참조할 만하다. 결핍이 도움이 된다는 말, 누구도 완벽한 아버지일 수는 없다는 말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작은숲)에는 다양한 필자가 쓴 사부곡이다. 아버지를 사유할 수 있는 저마다의 사연이 펼쳐지는데 공통점은 나의 아버지가 시대의 아버지와 겹쳐진다는 점이다. 아버지나무는 물이 흐른다를 쓰면서 필자는 아버지는 울타리이면서 내가 열고 나가야 할 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양한 경험들이 나의 사유를 키우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영화는 혈연이라는 절대적 관계에 머무르지 말고 인간관계의 기본을 이루는 배려와 소통의 노력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혈연양육의 문제가 때로는 운명처럼 동등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시간이 채워주는 깊은 내공의 힘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케이타와 류세이가 그렇게두 명의 아버지를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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