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 김복동을 아시나요?
상태바
인권운동가 김복동을 아시나요?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3.03.31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김복동 포스터. 자료제공=네이버
▲영화 김복동 포스터. 자료제공=네이버

러닝타임 110분 다큐멘터리 김복동, 영화가 끝났습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객석의 맨 앞줄이었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걸 좋아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늦게까지 앉아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흐느끼는 울음이 조금은 불편했으니 눈물에 앞서 그의 용기와 열정적 삶에 박수가 터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94세 이름은 김복동

폭력 앞에 무자비하게 희생된 나약한 인간이 마침내 희생자의 도그마에서 벗어나 인권운동가로 생을 마감한 위대한 현실 앞에 힘차게 박수를 치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요. 인권운동가 김복동을 만나는 순간의 감격을 눈물로 얼룩지게 하고 싶지 않았답니다. 영화몰입의 동일시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야 극장을 가득 메운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박수를 치고 싶었던 저의 심정과 김복동의 한 많은 인생에 공감하는 울음의 의미는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94년의 인생에서 후반부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던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피해자만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큐영화의 실존인물 김복동이 한공주(2014, 이수진 감독)와 필자의 고모님 박병인과 겹쳐졌으니 아, 그 지독한 아픔의 트라우마를 벗어던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집단 성폭행’, ‘성노예란 단어 앞에서 제3자로서 느끼는 수치심과 분노, 왜곡된 사회적 시선이 노골적으로 2차가해와 차별 속에서 억울하게 스러져간 여성의 혼령이 뒤섞여 서로를 호명했습니다. 필자가 집중했던 서사의 주제어는 피해자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영화 한공주를 보면서 해결되지 않았던 의문점, 피해자는 어떻게 그 피해자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통쾌한 해답을 얻은듯합니다. 그렇게 저절로 일깨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김복동은 피해자에서 어떻게 인권운동가로 변신할 수 있었는가.’

뉴스타파 후원금으로 제작한 영상 메시지의 감동은 깊고 파장은 컸습니다. 89년부터 위안부 피해자들과 30년 이상을 연대해온 지원 단체들과 시민들이 이루어낸 성과이기도 합니다.

피해자라는 호명은 나의 결단이나 주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해자에게 능동적인 악의가 존재한다면 피해자의 수동성은 전적으로 선의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적 구도는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불리합니다. 불리하기 때문에 법률이나 도덕이나 여론, 인간적인 정서는 피해자를 응원하는 게 정당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힘의 역학관계에서, 가해자가 순순히 악의를 인정하고 의도성을 뉘우치지 않을 때, 피해자를 은폐하고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가해자를 동정하고 피해자를 초라한 동냥꾼으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수도 없이 목도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한공주는 밀양 고교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고교생 44명이며 피해자는 14세 여고생이었으니 힘의 역학관계에서 절대적으로 피해자에게 불리했던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서 가해자 몰래 전학 다니는 것이 한공주의 일상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한공주를 단순한 피해자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수영을 배우면서 삶의 기쁨을 누리는 평범한 여고생으로 보여줍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친구는 자살하고 가해자부모가 쫒아 다니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삶의 기쁨이 가능한 것일까요.

김복동은 어떻게 인권운동가가 되었나.’

김복동은 자신이 당한 일이 부끄러워서 숨기고 살았지만 밝히는 것이 떳떳하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수십 년 가슴에 묻어둔 사연을 함께 분노하고 슬퍼해준 수요 집회(세계 최장기 집회) 참여자들과, 그리고 평화나비네트워크를 만납니다. 한국,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공감과 지지의 평화연대네트워크를 이루는 초석이 되고자 장거리 비행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0억엔을 받고 앞으로 위안부피해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며 아베정권과 합의하고 그 돈으로 화해평화치유재단을 설립한 박근혜정부의 무능과 비도덕성을 영화는 다시 한 번 확인해줍니다.

 

내레이터는 아동학대 고발영화 미쓰백(2018, 이지원 감독)에서 열연한 한지민입니다. 단호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촉촉하게 젖어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입니다. 영화에서 한지민이 또박또박 발음하는 목소리는 당당하면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운이 흐릅니다. 김복동이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오래도록 인상적이었습니다. 위태롭게 그러나 당당하게 김복동은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