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과 세월호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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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과 세월호 리본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3.04.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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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고추와 호박모종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부디 용서하시기를.

3월부터 4H동아리를 맡아 법석을 떨었다. 꽃을 심고, 채소를 가꾸리라 마음먹으며 아이들과 교정을 누비는 발걸음에 신바람이 풍악을 울렸다. 마땅한 텃밭을 물색하던 중 맞춤식 하우스가 있어서 그곳에 눈독을 들였다가 화단 근처에 자리를 잡아 고추와 가지, 상추와 쑥갓을 심었다. 봄에 한 포기라도 더 심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기 어려운 초짜. 호미 몇 번 잡아본 초보자는 욕심만 그득하다. 생각나는 대로 모종을 날랐다. 들깨를 줄 맞추어 심다가, 여사님 도움으로 고추, 가지 사이에 봉숭아 자리도 만들어주고 이파리가 멋진 토란도 심었다. 그런데 막상 호박 심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두리번거리다가 경험자들(행정실에서 그동안 작물 재배를 조금씩 했었다)의 조언을 얻어 하우스 옆 빈 땅에 여섯 포기 모종을 심은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학교 규모가 크다보니 빈 공간이 곳곳에 눈에 띈다.

넓고 환한 곳도 많은데 왜 하필 이 구석에 호박을 심었담.’ 은근 후회가 된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에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발걸음 바쁘게 움직여야 해서 힘에 부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심은 작물 중에서 가장 등한시되는 게 호박이다. 심어만 놓고 학교 끝 담벼락까지 갈 시간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 호박모종이 얼마나 컸나 보러가든지, 물을 주기 위해 기웃거리는 도중에 반드시 하우스를 지나야 한다. 그 하우스는 길이가 2미터에 폭이 1미터가 채 안 되는 아담한 규모인데 지붕만 멀쩡하고 양옆이 문처럼 열려있어서 비닐이 흉하게 너풀거리고 있었다. 작년까지 농작물을 기르던 곳인데 불과 몇 달 만에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삽을 들이대니 쇳덩어리처럼 단단해서 끄덕도 하지 않는다.

봄햇살과 여름의 바람은 사람의 손길 없이도 수많은 들꽃과 풀들을 피워낸다. 어느 틈엔가 그 황무지에서도 비닐이 찢겨 문처럼 터져있는 양옆에서 방풍나물이 자라고 잡풀이 무성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호박이 꽃을 피우고 벌을 불러들이며 이파리가 무섭도록 시퍼렇게 영역을 넓히는 동안 어느 사이에 하우스에는 개망초가 활찍 피어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호박의 생장력도 어마어마하지만 하우스 안의 식물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 달 내내 빗방울 하나 뿌리지 않은 봄 가뭄 와중에도 방풍은 잎이 나풀거리는가 싶더니 바로 열매를 맺었다. 생장환경이 어려울수록 종족 보존을 위해 씨와 열매에 에너지를 쏟는다더니 바로 그 모습이었다. 하우스의 폐허에서 피어나는 방풍잎사귀와 꽃이 존경스러웠다.

봄 가뭄이 길었지만 비가 한두 번 약하게 오긴 했었다. 하우스에도 단비가 조금이나마 들이쳤을까. 언제부턴가 망초꽃 사이에 노란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키가 작고 꽃송이도 크지 않아서 망초꽃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꽃들이 어느 사이에 군락을 이루었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꽃. , 애기똥풀이었다.

초여름부터 들판에 가장 많이 보이는 노란꽃, 금계국이나 서광의 빛나는 노란색보다 조금 은은한 노랑. 이름은 얼마나 예쁜가. 줄기를 꺾으면 애기 똥같이 노란 진이 흘러서 이름이 애기똥풀이다. 이름에 을 붙이는 것보다 을 붙여야 더 어울리는 꽃. 언제부턴가 들에 핀 모든 꽃들에게 존경을 담아 사랑하게 되었는데 올해는 유독 그 마음이 진했다. 안개꽃보다 개망초를 더 사랑하는 건 이유가 있다. 원래 개망초도 관상용으로 들여온 건데 밀려나서 잡초가 된 것이란다. 안개꽃이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다른 꽃들을 위해 기꺼이 조연의 자리를 감수한다면 개망초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고집한다. 안개꽃처럼 하늘거리지 않고 빳빳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강조하는 어리석음을 동병상련으로 사랑하는 지도 모르겠다. 개망초는 화병에 꽂아두면 바로 시들어버린다. 나는 초임시절 이 꽃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돈을 주고 꽃을 살 수 없었던 아이, 명숙이는 개망초를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수줍게 건네었다. 내가 받은 가장 아름다운 꽃다발이다.

송구스럽지만 애기똥풀에서 세월호 리본을 떠올리게 된 배경을 텃밭 이야기로 길게 풀어놓은 것이다. 세월호와 관련하여 무궁무진한 서사를 창출해야하는 게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면서 나도 하나 보태고 싶은 것이다. 노란 손수건, 노란 깃발도 있지만, 세월호 배지는 얼마나 앙증맞은가. 그 노란색이 애기똥풀과 겹쳐진다면 세월호 서사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것이다. 노란색 리본이 상징하는 무사귀환(죽음의 의미라도 돌아와야 한다)의 의미를 애기똥풀은 샛노란 사연으로 대변한다. 영화가 이끌어내는 서사는 우리시대가 겪어낸 아픔과 치유가 함께 녹아나야 스크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제공=네이버영화
▲자료제공=네이버영화

영화 생일에는 통곡과 눈물의 의미가 녹아 있다. 우리는 아직 세월호라는 슬픔의 강을 건너는 과정임을 확인하게 된다고 할까. 상업영화로 제작되었다 할지라도 넘을 수 없는 선이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영화가 스스로 사회운동의 도화선이 되고 학습의 효과가 있음을 알기에 조금은 안타까웠다.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던 많은 사람들이 정작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이다. 함께 울어야 하는 마음의 준비, 옆 사람의 등을 토닥여주어야 하는 여유로움을 외면했다고 할까. 생일기생충에 가려졌고, 전도연, 설경구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119만의 관객수에 머물러 아쉽다.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제작된 영화였지만 우리는 영화에서 우리들 무관심을 강타하는 통곡소리에서 그날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되고 그 과정을 감당해야 한다. ‘유쾌하고의 분위기를 결코 끌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수호가 초대한 그의 생일에 찾아가, 수호의 엄마와 아빠를 만나고 동생을 껴안아주고, 매년 그 자리를 지켜야하는 살아남은 자의 역할이 아직은 버거운 지도 모른다.

 

이수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의 육체는 사라졌다. 애기똥풀처럼 곱고 환하기만 한 19세 수호는 순간정지가 아니라 영원히 사라졌다. 더 이상 동생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장난을 칠 수도 없다. 엄마 몰래 운전면허증을 땄고 여권을 만들어 놓고 아빠가 돈 벌러 간 베트남에 가고 싶었던 착한 고등학생. 그날 수호는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2014416. 아빠는 당시 한국에 없었다. 베트남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는데 직원이 사고사를 당했고 그 와중에 3년이나 갇혀 있었다.

영화는 아빠의 귀국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전후사정을 알 수 없었던 순남(전도연)은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우다가 수호의 죽음까지 감당해야했으니 힘겨운 날들이었다. 갑작스럽게 당한 사랑하는 아들과의 생이별은 순남의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어린 딸에게 화를 내는가 하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해 아파트가 흔들리도록 대성통곡을 해댄다.

순남은 이혼을 요구했고, 수호아빠(설경구)는 어떻게든 순남에게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싶어한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회피하는 순남. 그 인정할 수 없는 표정이 순남에게 다양하게 나타난다. 수호의 방을 치우지 않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옷을 산다. 유가족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어떠한 집회나 행사에도 냉소적으로 응대한다. ‘내재된 공격성이 표출되는 경우도 있다. 정신의학 용어인 내재된 공격성은 직접적인 방법으로 분노와 화를 표출하지 못할 때 속에 울화가 쌓여 엉뚱하게 폭발하는 것이다. 전도연이 열연한 울음소리에는 우리 사회가 함께 울어주지 않는 억울함과 분노가 꾸역꾸역 터져 나온다. 순남이 시도 때도 없이 터뜨리는 울음은 다양한 반응을 초래한다.

괜찮니?”

순남의 이웃은 아들과 딸에게 묻는다. 수호를 특별히 따랐던 옆집 후배는 싫은 소리를 표현하지는 않지만 불편함이 역력하다. 수험생인 딸은 그 울음소리를 참지 못하고 한밤중에 독서실로 간다.

내가 저 울음소리 때문에 대학을 두 번이나 떨어졌잖아. 엄마는 딸이 중요해. 저 아줌마가 중요해?”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304명의 목숨이 사라지는 믿을 수 없는 비극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대낮에 생방송으로 보도된 뉴스를 전국민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전원 구출네 글자가 화면에 선명하게 찍혔고 큰 문제는 없겠구나 안도했었는데. 결국은 극단의 무관심 속에서 처절하고 슬픈 이름으로 바닷속에 가라앉았던 것이다. 이 상황이 TV로 생중계되었으니 전국민이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한마음으로 무사귀환과 진실규명을 요구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묘한 입장의 차이가 생겼다. 영화와의 마주침조차 두려워서 피하는 심정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생존욕구 둘 다이겠으나 아마도 후자의 비중이 더 클 것이다.

민주열사 이한열을 그려낸 영화 1987을 이한열의 어머니는 끝내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진 각자의 몫이 있다면 치열한 현장에서 다소 비껴있다면 문화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교조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에서 영화를 지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음에 나올 세월호 영화는 통곡소리는 생략하고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재구성되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서사의 힘을 강화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예술적 형상화가 성공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두기의 가능성은 최소한 20년은 되어야 한다.)

영화는 복잡한 갈등상황을 말하지 않고, 윤곽만 살짝 건드리는 것으로 불편함을 피하려 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대체적으로 잔잔한 분위기로 흐른다. 세월호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유가족과 희생자의 친구들이 등장하지만 특별한 갈등이 없다고 할 만큼 많은 이야기를 생략한다. 이미 세월호 희생자들의 스토리는 다양하게 인터넷과 책으로 소개된 바 있다는 전제를 깔았다.

부도덕한 선장 1인이 저지른 참사가 아니라(물론 그의 잘못이 덜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비양심적인 박근혜 정권이 초래한 인재였음이 밝혀졌다. 대부분의 희생자를 구출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었지만 소통부재의 무능한 정부는 철저히 이들의 생명을 외면했던 것이다.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고 생일을 기념하는 건 결국 산 자를 위한 것이다. 그게 통과의례이다. 우리들은 언젠가 누구나 죽는다. 문제는 그 죽음이 자연사나, 불가항력의 재난이 아니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부주의로 인해 일파만파 커졌을 때이다. 이때는 최소한 그 책임자 처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직도 세월호 참사는 진행 중이다. 박근혜 정권은 무너졌고, 그들 중 핵심인물들이 부정과 비리의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의 책임 있는 규명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늦게 배를 인양하였고, 진실규명의 과정에서 유가족은 오해와 편견의 타자가 되기도 했었다. 유가족은 사회의 편견과 맞서 외로운 싸움을 멈추지 않았고 의연하지만 단호하게 맞섰다.

영화는 생일이라는 통과제의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아낸다.

19506.25전쟁에서부터 시작한다 해도 현대사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초래한 사건은 많이 있었다. 좌우익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때로는 정권의 이익을 위하여 그렇게 생때같은 목숨이 사라졌다.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의 진상규명조차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40년 가까운 세월이다. 민주열사들이 폭도가 아니고, 북한의 공작금을 받은 김대중의 사주를 받은 불순분자가 아니었음이 만천하에 밝혀졌지만 아직도 헬기 사격명령을 누가 했는가는 오리무중이다.

수호의 생일모임을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던 순남은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연다. 순남과 관객의 일체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당신은 수호의 생일모임에 참석할 것인가영화는 내내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순남은 가족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을 거부했었고 영화를 보는 관객(세월호 희생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남의 슬픔을 나의 것으로 짊어지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었다. 영화는 그 거리감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

수호의 생일모임에 참석한 수호의 가족, 수호의 친구, 수호와 함께 배를 탔던 친구의 가족들. 이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슬픔이나 죄의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확인한다. 죽음의 과정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를 겪지 않은 것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그 상처를 피해갈 수 없듯이 말이다.(김복동할머니가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로 재생하는 삶은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시사한다.) 피해자유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 살아있음의 당당함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수호를 비롯한 304명의 죽음이 지닌 의미를 끝까지 캐고, 기억하는 서사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영화, 생일모임, 세월호 배지,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건 없다.

우리를 구원하는 건 진실의 서사가 만들어내는 기억의 힘에 대한 믿음이다. 마지막 수호의 생일모임 장면은 촬영과 편집, 카메라 움직임 모두 관객이 모임에 직접 참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연출됐는데 진실의 서사 만들기에 우리가 동참하는 기법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하여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순종식 교육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깊은 사유를 시작하였다. 독일교육에서 첫째로 중시하는 저항(안전)교육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의 붐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누군가는 이제 잊을 때가 되었다고 한다. 부모의 입장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을 쉽게 발설하는 분위기도 있다. 아니다. 잊는 일이 아니라 더욱 깊이 가슴에 새기는 일이 우선이다.

영화는 순남이 혼자 끌어안으려했던 분노와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기쁨은 나누면 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진실을 그러기 위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함과 동시에 바깥에 서서 방관자가 되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동참의 자리를 만들어 내야함을 보여준다. 생일은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영화이지만 아직은 전도연의 길고 깊은 통곡소리가 트라우마로 울려 퍼진다(최고의 명장면이지만). 그 울음을 끌어안을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인가. 영화가 남긴 숙제는 다소 무겁게 다가온다.

울음과 웃음이 하나가 되어 피어나는 애기똥풀같은 노오란 희망이 세월호 리본으로 나풀거린다. 애기똥풀의 꽃말은 엄마가 몰래 주는 사랑이고 줄기의 노란 진액은 상처를 치유하는 효험이 있다. 좋은 영화는 임시봉합된 상처를 덧내면서 깊이 치유하는 힘이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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