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스토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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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4』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3.05.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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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4. 자료제공=네이버영화
▲토이스토리4. 자료제공=네이버영화

토이스토리4를 보는 시간, 작은 행복을 소유한 느긋함이 있었다. 물론 이 행복은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라든지,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건네어진 고맙다는 말처럼 소소한 것이다. 뜬금없이 무슨 행복 타령을 하는 건지. 굳이 토이스토리4를 통해 행복을 되새김질할 만큼 나의 일상은 밋밋하거나 삭막한가보다.

장난감과 그 주인인 어린아이와의 교감과 소통에서 오는 행복은 동심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져보았던 세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되는 서사를 잘 녹인 영상에 젖어보는 시간, 풍요로운 장난감이 없이 자란 나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에 젖어드는 달콤함이 밀려왔다.

카우보이 인형 우디에게 묻는다.

앤디의 사랑을 받았을 때 행복했었니?”

, 그랬지.”

앤디는 성인이 되었고 더 이상 카우보이 인형과 놀지 않는다. 하지만 한때의 행복이나마 목숨처럼 소중한 경우도 있다.

나도 그 행복을 맛보고 싶어.”

개비개비는 불량으로 나온 장난감이라 한번도 주인과 놀아본 적이 없는 애정결핍 캐릭터이다. 겉으로 강해 보이는 불량소녀의 상처와 애정에 대한 갈망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나의 유년도 늘 외롭고 헛헛했다.

토이스토리는 다양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선보인 포키는 애니가 유치원에서 1회용품을 재활용하여 만든 캐릭터인데 내가 포크인가 장난감인가, 내 집이 쓰레기통인가 아닌가 늘 헷갈리게 행동하여 폭소를 유발한다. 물론 그 웃음 속에는 정체성의 혼돈이 극심해진 아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복잡해진 문화 가족, 사회에 대한 해학이 담겨 있다.

나의 유년은 장난감을 가져본 적도 없었고, 인형놀이하고 있을 틈조차 없었다. 인형을 아기처럼 재우고, 쓰다듬는 건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미나리, 쑥을 뜯거나, 미꾸라지, 메뚜기를 잡는 것처럼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동생들을 돌보면서 아기는 웃을 때만 예쁘다는 진실을 터득했고, 인형과 소통할 만큼의 여유랄까, 심심할 겨를조차 없었다. 유년시절 먹거리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 예쁜 아기들은 없었다. 늘 코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거나, 울고 있었다. 토이스토리의 등장인물들 역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들이다. 동심은 그림책 속에 정물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를 찾아 헤매면서 동무들과 울고 웃고, 생존만큼 치열하게 사랑을 주고받는 것임을 보여준다.

사진이나 그림책에서처럼 방실방실 웃는 아기를 본 기억은 전혀 없다. 가난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잣집 아가들의 얼굴은 어슷비슷했으나 가난한 집 아가들의 표정은 천차만별이었다. 동심 또한 다양성의 단어와 같은 부류이다. 가난은 아가들을 웃게 할 수 없는 배고픈 칭얼거림이나 울음소리를 만드는 악마였지만 그 속에도 동심이 곱게 피어났다. 꼬장꼬장 때가 묻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나 눈물콧물이 범벅된 땟국물이 흐르는 얼굴들에서도 동심의 결은 아름다웠다. 그 다양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섬세한 동심의 얼굴이 영화에는 흥미진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미술시간에 만든 찰흙 인형 버려도 되지요?”

서른 살 아들이 모처럼 집안정리를 하는 중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혹스러워서 겨우 라고 물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를 전전했던 탓인지 아들과의 대화가 간혹 엇나갈 때가 있다. 집을 정리하라고 했더니 엉뚱한 물건을 버리려고 들다니. 그 물건은 나에게 부적같이 특별한 것인데. 장난감도 아니고, 감상할만한 수준 있는 예술품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아들이 기술시간에 조립한 모형자전거, 딸이 미술시간에 만든 앙증맞은 의자(가로세로 3센티미터 이내)와 함께 찰흙으로 만든 개(아들은 원숭이를 만들려고 했다지만)는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위안물이다. 나는 아들이 조립한 모형자전거를 타고 멀리멀리 섬의 해안가를 달리기도 했고, 딸이 만든 엄지손톱만한 의자에 앉아서 소인국을 여행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찰흙으로 만든 조형물은 개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닌 상상의 동물이 되어 무한 커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그 속에는 아들딸과 함께 하지 못했던 엄마의 꿈과 추억이 뒤늦게나마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이런 비슷한 말을 아들딸에게 했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귀담아 듣지는 않았나보다. 어쩌면 1020년 나 홀로 키워온 추억의 시간을 아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찰흙으로 빚은 조형물은 아들과 내가 공유하는 추억의 시간이라고 여겼었지만 이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아들이 만들었지만 이제 그 조형물은 나만의 추억이 되어 버린 건지도.

토이스토리4를 보는 시간, 돈 주고 산 장난감을 가져보지 못했기에 더욱 소중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사금파리 그릇에 망초꽃을 놓고 계란반찬을 만들어 상에 올렸던 소꿉놀이도 떠오르고, 책받침으로 만든 연이 날지 않아서 언덕에서 아래로 풀쩍 날다시피 순간 부양의 효과를 이용했던 기억들을 영상과 겹치는 순간이 아슴아슴 피어오른다. 노란색 감씨를 보석처럼 애지중지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병뚜껑을 철로에 놓았다가 납작해지면 갈고 닦아서 귀하게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이정록 시집 동심언어사전은 사전형식으로 우리 주변 일상에서 만나는 동심을 담아낸다. 동심은 어른, 아이, 누구에게나 마음 한 칸을 차지하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어린 시절에는 몸과 마음이 동심으로 가득한 세상을 만난다. 그러다가 세파에 시달리면서부터 점점 그 자리가 비좁아지는 걸 당연시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내 안의 동심을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노래한 워즈워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동심은 삶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언급한 낙타의 단계와 사자의 단계, 어린아이의 단계는 동심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낙타처럼 참고 인내하는 단계에서 사자처럼 용감한 단계를 거쳐서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단계로 나아가야 인간최고의 성숙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토이스토리1995년부터 20194편이 나오기까지 진화를 거듭해왔다. 토이스토리3에서 더 이상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 우려했지만 기우에 불과했음이 증명되었다. 전세계 팬들에게 토이스토리4는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좋은 영화의 탄생 이유는 한두 가지(연기력, 음악, 영상 그래픽 등)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동심의 진정성에 다가서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토이스토리5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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