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맨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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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 그는 누구인가.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3.05.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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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칭 포 슈가맨』
▲서칭 포 슈가맨. 자료제공=네이버영화
▲서칭 포 슈가맨. 자료제공=네이버영화

좋은 영화는 육체언어를 비장의 무기로 숨기고 있다. 내가 매번 영화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유는 육체언어에 매료되는 순간을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영화에는 일상의 언어가 인물과 상황과 만나서 영상언어로 만들어지는 특별한 장면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 가운데 나의 심장에 콕 박혀 반복 재생되는 대사를 만난다. 그렇게 육체언어가 나의 일상을 비집고 들어올 때 영화는 나와 한 몸이 된다. 그 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가 내안에 안착할 때, 음악이 밀려올 때의 느낌과 비견할 수도 있겠으나 그와 달리 폭풍처럼 혹은 대왕고래만한 파도가 온몸을 휘감듯이 왈칵 몰려오는 갑작스러운 순간은 영화 특유의 감동이다. 이를 육체언어의 매력이라 말할 수 있겠다. 육체언어는 조각에 새겨진 작가의 메시지처럼 또는 연극무대에서 펼쳐지는 대사와 음악과 미장센이 배우의 표정으로 어우러지는 잊을 수 없는 장면처럼 그렇게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대사나, 순간의 아름다움과 깨달음이 빛나는 서정처럼 나를 사로잡는다.

서칭 포 슈가맨은 제작방식이나 영화의 스토리가 특별하다. 회귀형 로드무비 형식을 담으면서 추리를 가미한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은 충분한 투자를 받지 못해 저예산으로 제작하느라 고심했다고 한다. 영화 같은 인물의 삶, 단 두장의 앨범을 낸 후 사라진 신비의 미국 가수 로드리게즈의 실체를 찾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미국인은 많지 않았다.

슈가맨은 '식스토 로드리게즈'를 존경해서 지은 닉네임이다. 남아공에서는 국민가수이나 미국에서는 인지도가 전혀 없는 로드리게즈에 대해 남아공 팬들은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믿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생존과 관련한 다양한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두 명의 열성팬이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1970년대 당시 남아공은 인종차별이 심했고 독재정권이 일상을 감시하며 저항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정책을 펼칠 때이다. 유신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비밀시위와 무자비한 탄압이 오버랩 되는 영상에 음악이 흐른다. 로드리게즈의 노래가 그들에게 저항의 힘과 자유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영화에 흐르는 로드리게즈의 팝음악은 독특한 음색과 단순한 가사가 때로는 저마다의 다양한 삶을 위무하는 함축적인 의미로, 때로는 내면에 감추어진 인간적 욕망의 가치를 키워내는 좋은 시처럼 영혼 깊숙한 곳까지 교접함을 실감한다. 음악과 가사가 남아공의 정치탄압과 이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에게 육체언어의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미국과 남아공을 오가는 30년 가까운 세월의 흐름이 영상과 인터뷰를 통해 이어진다.

유명하다는 것의 무상함과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인 무명예술가들에게 보내는 열렬한 애정과 그리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의 존귀함에 대해 다양한 방식의 육체언어가 빼곡하게 담겨있는 영화.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무명가수의 설움을 딛고, 성공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로드리게즈는 시 같은 노래 가사, 독특한 음색의 노래를 발표했다. 하지만 평론가들의 평가도 좋았고 잘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미국에서 팔린 앨범은 단 6장에 불과했다. 이후 로드리게즈는 음악을 접었지만 그 앨범이 지구 반대편 남아공에서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사연이다.

영화는 유명과 무명 사이에 담긴 무수한 삶의 비화를 말하고자 하는듯하다. 유명한 시(노래)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단지 게으름으로 다양한 좋은 시(노래)들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들판에 홀로 피었다 지는 무수한 들꽃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만이 그 꽃을 노래할 자격이 있다. 유명한 작품이 반드시 가장 훌륭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 흥행에 실패했다고 작품성이 낮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영화는 절묘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로드리게즈는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음악에 열정을 쏟았던 젊은 시절을 까마득히 잊은 채 살면서도 패배의식에 찌들지 않고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으로 다져진 육체는 건장했고 눈빛은 형형했다. 그는 심지어 가난한 철학자처럼 보였다. 남들이 꺼리는 일을 하면서도 품격이 있고 당당한 것은 예술가라는 자부심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으며 성찰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리라. 꾸준히 독서를 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사회운동에 참여했다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존인물을 영화화하면서 일정부분 미화하지 않았을까 의구심도 들었지만 오히려 그의 깊은 내면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까지 들었다. 그는 시장선거에 출마하였고 어려운 이웃을 대변하고 싶어 했다. 누구나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서 평범한 삶을 아끼는 그의 모습은 어떤 유명예술가 못지않게 위대해 보였다. 남아공 최고 인기 가수이며 기하학적인 숫자의 음반판매에 대해 알려주었을 때도 흔들리지 않으리만치 현재에 충실한 삶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슈가맨을 성원하는 팬들과 가족들의 기대감 속에서 그는 1989년 남아공에서 다시 무대에 오른다. 베일에 쌓인 신비스러운 인물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비행기로 날아온 로드리게즈는 비로소 자신의 인기를 실감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수십 년 동안 자신의 노래를 사랑하고 아껴준 팬들. 노래가 희망이 되고 혁명의 도화선 구실을 한 사연. 연일 매진되는 공연에서 남아공 국민들의 환호에 답하며 당당하게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화려한 무대에 걸맞은 뮤지션의 모습이다.

그는 다시 예전의 집으로 돌아와서 막노동으로 생활한다. 돈으로 보상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예술은 남아공국민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받았다. 그의 딸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할 때, 우리는 과묵한 그 사람을 조금은 이해할듯하다.

아버지는 매우매우 검소하게 생활하세요. 조금의 과잉도 없고 그저 밥벌이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세요.”

동료인 벽돌공의 말도 엇비슷하다.

남의 집 잔디를 쓸고 청소하는 막일을 만족스럽게 여겼죠.”

영화가 제작된 것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다큐전문 감독 말릭 벤젤룰은 2006년 남아공에서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를 듣고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다는 확신으로 작업을 시도했다. 벤젤룰은 그의 이야기를 장편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 했지만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았고 그는 결국 혼자 힘으로 영화를 기획했다. 그에게 로드리게즈는 어떤 형태나 제도에 순응하며 살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 그의 음악과 그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을 기다려왔고 그 외에는 어떤 길도 가고 싶지 않았던 특별한 사람이었다. 감독의 영감과 열정으로 로드리게즈의 음악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평생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그가 등을 보이고 공연을 했던 것,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골목길에서 만났다는 에피소드, 그리고 노동을 통하여 생계를 해결한 것 또한 타협하지 않는 그의 정신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겠다. 젊은 감독은 단 한 편의 영화를 남기고 2014년 타계했으니 굵고 짧은 생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의 노래 중, 난 궁금해(I Wonder)의 가사는 단순 소박하다. 이 노래를 부르며 독재에 저항하고,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남아공 독재정권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것도 영화의 또 다른 감동이다.

난 궁금해/ 넌 얼마나 많이 속아봤는지/ 난 궁금해/ 넌 얼마나 많은 계획을 망쳤는지/ 난 궁금해/ 넌 얼마나 많이 섹스를 해봤는지/ 난 궁금해/ 다음은 누구 차례인지/ 난 궁금해/ 정말 궁금해.”

그의 음악에 대해 감독은 밥딜런이나 비틀즈에 뒤지지 않는다고 발언한다. 실제 남아공에서 전무후무한 사랑을 받았고 사회변혁의 흐름에 일정부분 기여한 바도 있으니 전혀 얼토당토한 말은 아닐 것이다.

슈가맨을 찾아서2015년부터 1년 가까이 방영된 적이 있었던 TV 프로그램이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 일명 '슈가맨 (SUGAR MAN)'을 찾아 그들의 전성기와 히트곡, 가요계에서 사라진 이유와 행방 등을 알아보고 슈가맨의 히트곡을 새로운 버전으로 재탄생시켜 승부를 겨루는 프로그램이다. 영화보다 더 유명한 이 프로그램으로 영화 또한 대중적 관심을 받은 바 있지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아서 못내 아쉽다.

슈가맨 로드리게즈 그는 누구인가.

영화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다큐영화지만 추리적 진행 속에서 예술가로 사는 것과 평범한 일반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동등한 잣대를 보여주는 것에 이 영화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슈가맨을 온전하게 만난다면 그의 음악과 주변사람들을 통해 그를 만나는 신비로움이 온전히 내 안에 스며 육체언어로 새겨지는 순간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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