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원권 지폐에 있는 '묵죽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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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원권 지폐에 있는 '묵죽도', 아시나요?
  • 최창석
  • 승인 2020.06.0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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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은 이정의 그림, 묵죽화
생활 근거지: 원산정(이인면 만수리 )
이정의 묘소가 이인면 구암리에
▲최창석 공주문화원장
▲최창석 공주문화원장

 

▲오만원권에 실린 '묵죽화'
▲오만원권에 실린 '묵죽화'

이정(李霆, 15541626)은 조선시대 묵죽화(墨竹畫-먹으로 그린 대나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섭(仲燮), 호는 탄은(灘隱). 세종의 현손으로 익주군(益州君) 이지(李枝)의 아들이다. 석양정(石陽正: 이란 조선 때 비교적 가까운 왕손에게 준 작호로 정3堂下에 해당함)에 봉해졌다. 뒤에 석양군(石陽君)으로 승격됐다.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화가 탄은(灘隱) 이정의 이정 필 삼청첩’(李霆 筆 三淸帖)15941212일 충남 공주에서 그린 그림들로 총 1첩의 54면으로 구성된 서화첩(書畫帖)이다. 2018627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984호로 지정됐다.

이 화첩에는 이정의 묵죽화 뿐만 아니라 매화와 난 그림이 수록되어 이정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검은 비단에 금으로 그린 대나무라는 뜻으로 니금세죽(泥金細竹)이라 부른다.

묵죽화에 있어서 그는 유덕장(柳德章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꼽힌다. 그는 묵죽화뿐 아니라 묵란·묵매에도 조예가 깊었고,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다.

그는 임진왜란 때 적의 칼에 오른팔을 크게 다쳤으나 이를 극복하고, 회복 후에는 더욱 힘찬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조선 초기의 묵죽화들이 대개 수문(秀文)의 묵죽화와 같이 줄기가 가늘고 잎이 큰 특징을 보인다. 이에 반하여, 이정의 묵죽은 줄기와 잎의 비례가 좀 더 보기 좋게 어울리며, 대나무의 특징인 강인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특히 굵은 통죽(筒竹)을 잘 그렸는데, 통죽의 굵은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표현했다. 통죽의 마디를 묘사함에 있어서 양쪽 끝이 두툼하게 강조된 호형선(弧形線)으로 마디의 하단부를 둘렀다.

그리고 거기에서 약간의 간격을 떼고 아랫마디를 짙은 먹으로 시작해서 점차로 흐려지게 하였다. 이 기법은 조선 후기의 여러 묵죽화가들에 의하여 널리 쓰이게 됐다.

그는 풍죽도에서 대나무의 줄기와 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해 대나무의 탄성(彈性)을 잘 나타냈다. 화면의 공간감(空間感)을 살리기 위해 짙은 먹과 흐린 먹의 구별이 뚜렷한 대나무들을 대조시켰다.

또한 묵죽화 또는 묵란화에서 그는 당시 유행하였던 절파 화풍(浙派畫風)의 영향을 받아 강한 농담의 대조를 사용한 토파를 묘사했다.

만년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우죽도(雨竹圖)가 있다.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참조)

▲금종이에 그린 탄은의 묵죽화
▲금종이에 그린 탄은의 묵죽화
▲탄은 이정의 풍죽도(風竹圖), 비단에 수묵. 간송미술관 소장
▲탄은 이정의 풍죽도(風竹圖), 비단에 수묵. 간송미술관 소장
​▲왕의 자식인 군이 편안하게 잠든 곳이라 해서 군안이 마을 -> 구난이 약초마을로 변화
​▲왕의 자식인 군이 편안하게 잠든 곳이라 해서 군안이 마을 -> 구난이 약초마을로 변화

 

▲이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구암리 2구 약초체험장 윗쪽의 무덤
▲이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구암리 2구 약초체험장 윗쪽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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