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제당 속에 감춰져 있는 역사문화유산 산신도(山神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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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당 속에 감춰져 있는 역사문화유산 산신도(山神圖)
  • 인간 전병철
  • 승인 2024.06.0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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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 추억! 이런 문화유산도 있었네! - 공주시 산제당 정리(4)

인간 전병철(작가)

 

산제당이나 산신제를 우리의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으로 보는 데에는 나름 이에 부합하는 이유가 있기도 하다. 산제당 건물의 생김새나 구조, 형식이 독특한 것은 물론 건물을 짓는 데 흙과 나무만을 사용하여 지은 흙집이나 나무집을 비롯하여 요즘에는 보기 드문 양철 지붕 등이 산제당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산제당 내부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제단(祭壇)과 함께 산신을 그려놓은 탱화(幁畵: 벽에 거는 그림, 두루마기 그림)인 산신도(山神圖), 그리고 위패(位牌)와 제기(祭器) 등 나름 예스러운 작품 등이 남아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산신도는 산신(산신령)을 그려놓은 그림으로 산신탱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대개 산신령과 함께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산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이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한반도 북부지역은 남신(男神), 남부지역은 여신(與信)이 많이 나타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지역보다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원래 산신은 여성에서 출발하였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최초의 산신은 남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아가 신라 때는 여성 산신이 우세하게 나타나다가 고려 때는 남성 산신이 더 우월하게 나타나면서 이후에는 유학의 보급과 함께 남성 산신의 비중이 월등하게 높아져 산신 하면 흰 수염을 한 할아버지 모습의 남성 산신이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산신도라고 하여 똑같은 구조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나무 아래에서 호랑이 옆에 앉아있는 신선(神仙) 모습의 산신령이나 흰 수염을 기른 노인 모습을 한 산신령이 있는가 하면, 근엄한 재판관 모습을 한 산신령도 있고, 책을 든 학자 모습을 한 산신령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산신도에 등장하는 산신령 모습에는 도교와 유교 및 불교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인다. 일반적으로 도교적 산신도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긴 눈썹을 한 신선 모습으로 손에 하얀 깃털 부채나 불로초 등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많으며, 배경 그림에는 '신선 세계의 산'이라고 하는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洲山), 방장산(方丈山) 등 삼신산(三神山)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유교적 산신도는 머리에 유교적 복식을 상징하는 복건(福巾), 유건(儒巾), 정자관(程子冠) 등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신령) 모습에 주변 배경으로 책, 대나무, 차를 달이는 도구 등이 그려져 있는 편이다. 또 불교적 산신도는 삭발한 스님 모습에 손에는 불경이나 염주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가사 모양의 옷을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불교보다 도교나 유교적인 색채가 더 많은 반영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마을 산신도는 사찰 산신도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막상 크게 다른 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불교 산신도에도 도교적인 모습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고, 마을 산신도에 불교적인 색채가 적잖게 반영된 것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주시에 남아 있는 산제당 산신도에는 상투나 두건 같은 모자를 쓴 산신령과 줄무늬 호랑이, 소나무, 동자 등이 그려진 산신도가 많았다.

산신도에 등장하는 호랑이도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갈색의 줄무늬 호랑이를 비롯하여 점무늬 호랑이, 희거나 검은 호랑이[백호(白虎), 흑호(黑虎)]가 많이 등장하는 가운데 맹수(猛獸)의 왕()’ 답게 위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하면, 장난스럽고 애교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호랑이는 산신령 그 자체이거나 산신령의 사자(使者: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존재인 만큼 무섭고 근엄하게 보여야 하겠지만, 때론 우스꽝스럽게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무래도 친밀감을 주려는 의도에서 그리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현재 공주지역에 남아 있는 산제당 산신도에 그려진 호랑이도 무섭고 근엄해 보이는 호랑이를 비롯하여 장난스럽고 우스꽝스러운 호랑이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주지역에 남아 있는 산제당 산신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구읍 세동리 상세동 산신각의 산신도가 아닐까 싶다. 상세동 산신각은 다른 산제당과 달리 마루가 있는 게 특이하고, 또 마루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2개지만 들어가면 하나의 공간인 게 특이하고, 더욱이 같은 산신도 2개가 걸려있는 특이한 산제당이다. 산신도 한쪽에 쓰여있는 글에 공주 마곡사를 중심으로 전통 불화(佛畫)의 맥을 이어온 화승(畵僧)으로 알려진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 18461928)18963월에 그린 것으로 쓰여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2009.01.20.)되었다.

상세동 산신도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서인지 요즘에는 마을 입구에 산제당을 안내하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으며, 산제당 건물 산신각 안에는 같은 산신도 2개가 정면 벽 좌우에 걸려있다. 하나는 낡은 것으로 액자 없이 걸려있고 다른 하나는 새것으로 액자에 들어있다. 무슨 이유로 똑같은 산신도 2개를 걸어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원래 산제당에는 하나의 산신도가 있었을 것이며, 원래 산제당 안 모습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산제당 안에 있는 신신도 2개 모두가 복사본이라고 한다. 원본은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산신도를 원래 색으로 복원해 놓기도 하였다. 원본은 따로 보관하고 산제당에는 복사본으로 전시하는 것은 아마 도난을 방지하고 원본을 잘 보존하여 훼손을 줄이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상세동 산신도에 표현된 호랑이 얼굴을 보면 놀란듯한 표정이 독특하기도 하고 좀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동자(童子) 2명의 키가 산신령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너무 작게 그려져 있는 게 눈에 띄었는데, 실제 키가 이 정도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산신령과의 위계(位階)를 상징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이리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다른 산제당 산신도에서도 이렇게 표현된 게 적잖게 있었다.

산신도가 오래되고 낡아서 새로 장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멀쩡한 산제당 산신도를 잃어버리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산신도를 훔쳐가는 도둑 때문이다. 공주시 교동 산제당 산신도는 1980년대 도난을 당해 새로 장만하였다고 하며, 반포면 상신리 산제당 산신도도 도둑맞아 1990년대에 새로 마련했다고 한다. 또 이인면 이인리 운암산 산제당 산신도는 2000년대에 도난당해 그림 없이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문화재(문화유산)가 있는 곳에 가보면 문을 열쇠로 잠가놓은 곳들이 있다. 이는 문화재 도둑을 막기 위해 취한 조치일 것이다. 하여 문화재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오는 일이 있곤 하는데, 공주시 교동 산제당도 문이 잠겨 있어 할 수 없이 틈새로 사진을 촬영하려고 했으나 제단 앞에 커튼이 쳐져 있어 산신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대부분의 문화재는 원본은 따로 보관하고 복사본을 전시하곤 한다. 부전동 뜸박 열두동네 산신제를 살펴볼 수 있는 부전대동계(浮田大洞契) 관련 문서 23개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2013.04.22.)된 우성면 한천리 부전동 뜸박 열두동네 산신당 산신도도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이라고 한다. 원본은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천리 산제당은 문을 열쇠로 잠가놓았는데 도난 문제보다도 관리 및 청소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부전동 뜸박 열두동네 산신각은 무성산 산제당으로 불리며 널리 알려진 산제당이라 그런지 때론 무당이나 기도를 하려는 이들이 찾아와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어지럽힌 상태로 그냥 돌아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개방하지 않고 문을 잠가놓게 되었다고 한다. 문화재 관리에는 도둑도 문제지만 사용하는 이들의 행위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귀한 문화유산을 대하는 질서 있고 예의 바른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성면 한천리 부전동 뜸박 열두동네 산신각 산신도에 표현된 호랑이 자세 또한 특이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산신도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대개 몸을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지만 이와 다르게 한천리 산신각 산신도는 아래에서 위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곡면 대중리 산신당 산신도나 사곡면 월가리 산제당 산신도처럼 대부분의 산신도에 표현된 호랑이는 몸을 위에서 아래 또는 옆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산신령보다 호랑이가 훨씬 큰 모습으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어째서 한천리에서는 호랑이가 위로 향하게 그려지고 산신령보다 더 크게 표현했을까?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호랑이의 피해가 어느 곳보다 많거나 커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사곡면 대중리 산신당 산신도는 물감으로만 그리 게 아니라 천에 자수(刺繡)를 놓아가며 그린 것으로 보여 특별하였다.

우성면 한천리 산신각 산신도나 사곡면 대중리 산신당 산신도를 비롯하여 사곡면 운암2리 운정 산제당 태화산당’, 우성면 보흥리 산제당 산신도, 신풍면 산정리 산제당 산신도 등에 표현된 소나무 아래 부채를 들고 앉아있는 산신령의 모습이 너무 비슷하였다. 거의 같은 구도나 비슷한 배경에 다만 등장하는 동자 수나 호랑이가 바라보는 방향만 조금씩 다를 뿐이었다. 아무래도 산신도에도 나름 정형화된 구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구읍 세동리 상세동 산신각 산신도처럼 산신도가 2개 걸려있는 산제당이 더 있었다. 사곡면 운암리 구암 산신각과 탄천면 국동리 산제당 또한 2개의 산신도가 함께 걸려있었는데, 똑같은 산신도가 걸려있는 한천리와 다르게 서로 다른 산신도가 걸려있었다. 사곡면 운암1리 구암 산제당은 원래 나무로 지은 산제당이 있었으나 오래되어 무너지는 바람에 2010년쯤 성금을 모아 시멘트와 벽돌집으로 산신각을 새로 지으면서 신묘(辛卯: 2011)년에 송암(松岩) 정원(丁源)이 그린 산신도를 새로 마련하여 중앙에 모시고 예전에 있던 산신도는 옆쪽 벽에 함께 걸어놓았다고 한다. 옛 산신도와 새로 장만한 산신도 모두 호랑이 얼굴이 좀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고 전체적인 구조가 비슷하나 새로 그린 산신도가 더 화려하면서 산신령이 왼발을 좀 더 앞으로 내놓은 자세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을 보아 더 당당해 보인다. 그리고 국동리 산제당도 산신도가 오래되어 새로 마련한 것으로 보이는데 낡은 옛 산신도 위에 새로 장만한 산신도를 그대로 붙여놓은 듯하다.

반포면 하신리 산제당에는 3개의 탱화(幁畵)가 산제당 안 정면에 나란히 걸려있었다. 이들 3개의 탱화는 칠성탱화(七星幁畵, 칠성도), 산신탱화(산신도), 장군탱화(將軍幁畵, 장군도)로 칠성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가리키며 비 또는 인간의 수명과 재물을 다스리는 신을 말하고, 장군은 말 그대로 무신(武臣)인 장군을 가리킨다. 산신 이외에 별(칠성)을 섬기고 장군을 섬기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민간신앙의 한 형태이다. 산제당에 칠성과 장군을 모신 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니 반포면 하신리 산제당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장군이 어떤 장군인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반포면 하신리 산신당 산신도도 아주 특이하였다. 세 개 그림이 나란히 붙어있는, 가로로 길쭉한 대형 산신도였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산신도는 도둑맞아서 1990년대에 새로 마련하였다고 한다. 호리병이 그려진 모자를 쓰고 있는 산신령의 모습이 부처님이나 보살 같기도 하고 옷차림을 봐서는 선녀 같기도 하다. 또 양 끝에 서 있는 무사처럼 생긴 이들은 불교의 신장(神將)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불교적 색채가 많은 듯하나 배경이나 모자를 쓰고 산신령 주변에 있는 이들을 보면 딱히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고 할 수 없다. 불교를 비롯하여 도교, 유교, 민간신앙이 혼합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호랑이가 웃고 있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한편 옛 산신도를 보면 산신령이 여자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계룡산, 속리산, 지리산을 중심으로 여성 산신령이 자주 등장한다고 하니 관심 있게 볼 산신도이다.

공주시에 남아 있는 산제당 가운데는 산신도가 거의 같은 것으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사곡면 계실리 음촌 산제당 산신도는 50년 전쯤에 새로 마련한 것이라고 하는데 정안면 쌍달리 산제당 산신도와 비교하여 색깔만 다르고 구체적인 사물이 약간씩만 다를 뿐 전체적인 배경이나 배치, 형식 등이 거의 같았다. 사곡면 계실리와 정안면 쌍달리는 행정구역상 다른 면에 속해 있지만 둘 다 무성산(武盛山, 614m)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다. 계실리와 쌍달리는 국도(國道)로는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무성산 속 임도(林島)로는 가깝게 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마을이다. 그렇다고 이런 이유로 같은 종류의 산신도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우연의 일치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자세한 기록이나 그 자초지종을 아는 이를 찾지 못해 더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산제당 산신도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형식, 가령 산신령의 모자나 자세, 부채, 호랑이의 위치 및 앉은 자세, 산과 소나무 배경, 동자 등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자주 사용하는 형식이 있어 비슷한 산신도가 적잖게 제작된 것은 아닌가 싶다. 사곡면 회학리 산제당, 유구읍 연종리 연마루 산제당, 공주시 산성동 산신각, 유구읍 동해리 산제당, 정안면 고성리 음달말 산제당 등의 산신도만 봐도 산신령이 쓰고 있는 모자가 비슷하고, 흰 수염을 늘어뜨리고 있는 산신령의 얼굴이나 앉아있는 자세가 비슷하였다그리고 사곡면 회학리 산제당 산신도와 유구읍 연종리 연마루 산제당 산신도의 호랑이가 앉아있는 모습이 아주 비슷하였다.

유구읍 동해리 산제당 산신도는 좀 색다른 분위기를 주기도 하였는데, 산신령이 앉아있는 장소를 산꼭대기처럼 표현한 점과 산신령이 쥐고 있는 지팡이와 과일을 담은 쟁반을 금빛으로 처리하여 돋보이는 점, 그리고 대부분 산신도가 붉은색과 초록색을 많이 사용한 것과는 달리 검은색과 회색이 주로 사용하여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점 등이 특이하였다. 한편 정안면 음달말 산제당은 현재 산신제를 지내지 않는 탓에 건물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산제당에 남아 있는 산신도도 관리가 되지 않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낡은 채 있었다.

공주시 남아 있는 산제당 산신도를 살펴보니 다양한 산신도가 있었다. 같은 산신도가 2개 걸려있는 산제당도 있고 서로 다른 산신도 2개가 걸려있는 산제당이 있었다. 거의 같은 산신도를 사용하는 산제당들이 있는가 하면, 서로 비슷한 산신도를 사용하는 산제당들도 있었다. 산신도를 포함하여 3개의 탱화를 모신 산제당이 있는가 하면, 대형 산신도가 모신 산제당도 있었다. 또 관리가 안 되는 산신도가 있는가 하면, 문화재로 지정된 산신도도 있었다. 한마디로 다양한 산신도가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고 특이하거나 특별한 산신도가 있었다.

세상이 변하였다. 세상이 엄청나게 바뀌었다. 산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지 오래며, 호랑이로부터 피해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오래되었다. 호랑이는 신이 아니며, 산신령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더구나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나 장승, 오래된 나무, 기이한 바위 등은 그냥 나무이고 돌일 뿐 신처럼 섬길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우물이나 부엌에 정령이 없으며, 바람과 구름과 파도는 자연 현상일 뿐 결코 신처럼 여길 대상이 아니며, 하늘과 땅과 바다도 자연의 하나일 뿐 신으로 여길 것이 아님을 또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우리는 하늘과 땅에, 바람과 구름에, 나무와 바위 등을 대상으로 우리의 마음과 소원을 담아 기도를 하고 빌기도 한다. 이런 일에 신이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미신이 아니냐며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문화일 뿐이다. 사람들은 당시 그들에게 어울리는 문화를 통해 문제를 헤쳐나가며 살았을 뿐이다.

또 그럼에도 우리는 서양의 하늘의 신인 제우스나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 등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 삼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바다의 신인 용왕이나 산을 수호하는 신인 산신령,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 등은 미신이라고 아예 무시하곤 한다. 따져보면 같은 이치에서 나온 것인데 어쩌면 이렇게 다르게 인식하고 차별적으로 대접하는지 아리송할 뿐이다.

화에는 옳고 그른 게 없다고 한다또 문화에는 높고 낮은 게 없다고 하며, 좋은 문화 나쁜 문화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뿐이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지역에 적합하고 그 시대에 부합하는 문화가 있었을 뿐이다. 자연과 사람에게 어울리는 문화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문화는 이전에 형성된 문화를 바탕으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이 품어왔던 산제당과 산신제 문화를 오늘날에 어울리는 문화로 되새김하려면 현재 우리는 산제당과 산신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번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흔히 공주를 역사문화도시라고 일컫기도 한다. 역사문화도시 공주를 좀 더 역사문화도시다운 면모(面貌: 얼굴 모양)를 살리고자 한다면 혹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음에도 묻힌 채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산제당을 대상으로 하는 답사 코스를 개발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현재 산제당을 답사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곳은 없을 터이니 역사문화도시인 우리 공주에서 개발운영한다면 신선한 일인 것은 물론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뜻이 있다면. 역사문화도시 공주를 공주답게 꾸미고 싶은 맘이 있다면 말이다.

[추신] 지면 관계상 <공주시 마을 산제당‧산신당‧산신각‧산제각∙산령각∙산제단 현황> 목록은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다음에 <공주시 산제당 정리(5) 마을 산신제(山神祭)는 언제 어떻게 지낼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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