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끈히 이어지고 있었구나, 사곡면 운암1리 산제당 산신제(山神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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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히 이어지고 있었구나, 사곡면 운암1리 산제당 산신제(山神祭)
  • 인간 전병철
  • 승인 2024.06.13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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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 추억! 이런 문화유산도 있었네! - 공주시 산제당 정리(6)

인간 전병철(작가)

 

2024년 정초부터 바빴다. 공주시에 남아 있는 마을 산제당(山祭堂)‧산신당(山神堂)‧산신각(山神閣)‧산제각(山祭閣)‧산령각(山靈閣)‧산제단(山祭壇)을 조사‧정리하였다. 2월에 집중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사곡면 운암1리 마을회관을 찾아가니 때마침 이때가 정원 대보름 전날, 운암1리 산제사를 지내는 날이라 이 산신제에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다.

운암1리 김영관 이장님 말씀에 따르면, 산제사(山祭祀)[산신제(山神祭)]를 지낼 이들이 1시 30분 마을회관에 모여 이곳에서부터 산신제를 지낼 짐(음식 등)을 가지고 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현재 시간이 1시경이라 나는 몸도 불편하니 미리 출발하여 천천히 올라가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이장님은 내게 자동차를 타고 자신의 트럭 뒤를 따라오라며 구암소류지(九岩沼溜地 *소류지: 농사지을 물을 확보하기 위해 평지를 파고 주위에 둑을 쌓아 물을 담아 놓은 작은 저수지) 바로 위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안내해주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산제당에 오를 수 있도록 배려하고는 다시 트럭을 몰아 마을회관으로 내려가셨다.

이장님의 안내에 따르면, 요즘 같은 날에는 구암소류지 바로 위 포장도로까지만 자동차로 가고, 흙길에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고 한다. 평소 같으면 트럭으로 산제당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으나 요즘같이 날이 풀리면 땅이 질퍽하여 자동차로는 오르기 어렵고, 더구나 며칠 전부터 비‧눈이 온 탓으로 더더욱 땅에 물기가 많아져 트럭도 미끄러져 오르기 어렵다고 한다. 하여 사람이 직접 짐을 지게에 지고 걸어서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흙길이 시작되는 곳부터 산제당 앞까지 오르는 길은 잘 정비돼 있었다. 바닥에 물기가 많아 미끄럽긴 하였지만 오르는 데 어렵지 않았다. 몇몇 소나무는 내린 눈이 가지에 쌓인 무게를 더는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 쓰러진 채 중간중간 길을 막고 있기도 하였다. 그래도 소나무 자체가 뿌리째 뽑혀 쓰런진 게 아니라 다행히 혼자 치워도 될 정도의 큰 가지만 부러진 탓에 별 탈 없이 산제당에 오를 수 있었다.

눈길을 조심조심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산제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르기 전에는 멀 것 같아 걱정하기도 하였는데 막상 그리 먼 길이 아니었다. 작은 계곡 옆에 세워진 산제당에 도착하자마자 사진 촬영부터 하였다. 산제당은 콘크리트 건물에 붉은색 계열의 벽돌로 마감하고 양철지붕을 얹은 단칸 건물이었다. 정면에는 금빛으로 소나무와 산수 등의 무늬가 새겨진 철문을 달고 양쪽 벽에 바람이 통할 정도의 작은 창문을 냄으로써 깔끔한 느낌을 주는 산제당이었다. 그리고 중앙 문 위에는 “山神閣”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는데, 사찰에서 많이 보았던 ‘산신각’과 같은 이름이었다.

산제당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진행되는 산신제에 나름 금전적인 지원을 한 면사무소에서 나온 공무원 두 명이 올라왔다. 그들과 인사하고 이쪽저쪽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는 가운데 산신각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오늘 산신제를 지낼 제물과 음식을 준비해 올라오는 사곡면 운암1리 주민 여섯 분이었다. 짐을 지게에 지고 오는 분이 있는가 하면, 손에 들고 오는 분도 있었다. 지게를 한 번도 져본 적 없이 살아온 내가 보기에는 “얼마나 힘들까?”라는 걱정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고생하며 산신제를 지내는지 몰랐다. 또 “참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산제당 문을 열고 가져온 음식을 옮겼다. 산제당 안은 미리 청소해놓은 듯 깨끗하였다.

정면에 산신도가 걸려있고 양쪽 벽에는 산제당을 신축하면서 성금을 낸 분들의 이름과 금액을 적은 액자가 각각 걸려있었다. 특히 오른쪽 벽에는 성금명단 이외에 산신도가 또 하나 걸려있었다. 산신도가 2개인 것이 궁금해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나무로 지은 산제당이 있었으나 오래되어 무너지는 바람에 2010년쯤 성금을 모아 양철지붕에 시멘트와 벽돌집으로 새로 지으면서 산신도도 새로 마련하여 중앙 정면에 걸고 예전에 사용하던 산신도는 버리지 않고 옆면에 걸어놓아 2개의 산신도가 함께 있게 된 것이라 한다.

제단을 정리하고 장만한 음식을 차렸다. 흰떡과 고기, 북어, 사과‧배‧밤‧곶감‧대추‧귤, 과자 등을 제단에 올리고 술잔과 함께 술은 제단 앞에 놓았다. 그리고 제사를 지낼 네 분의 제관(祭官)과 축문(祝文)을 읽을 축관(祝官) 한 분, 이렇게 다섯 분이 서로 번갈아가며 제사상을 차리면서 의복을 흰옷으로 갖춰 입었다.

제사상을 차리고[진설(陳設)이라고 한다] 의복을 다 갖춰 입자 촛대에 꽂은 초에 불을 밝히고 향(香)을 피웠다. 제관 가운데 이장님이 대표로 술을 따라 첫 잔을 올렸다[초헌(初獻)]. 그리고 제관과 축관 모두 함께 절을 두 번 하였다[재배(再拜)].

이어 축관이 준비해온 축문을 읽었다[독축(讀祝)]. 축문은 산신께 올리는 글로, 보통 산신께 부탁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축관은 학식 있는 이나 마을에서 덕망 있는 이가 담당하곤 하는데, 축관이 큰소리로 축문을 읽고 있는 동안 다른 제관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었다.

이날 사용한 축문은 축관이 직접 한지(韓紙)에 한자로 작성한 것이었는데 별도로 컴퓨터로 입력하여 출력한 것까지 있었다. 접힌 한지 축문을 펴가며 사진 찍는 내가 좀 그래 보였는지 축관이 갖고 있던 인쇄물 한 장을 가져가라며 나를 배려해 주었다.

독축이 끝나자 운암1리 반별로 주민 이름을 받아 적어놓은 얇은 한지(韓紙)를 불에 태웠다. 소지(燒紙)라는 것인데, 소지는 부정(不淨)을 없애고 신께 소원을 빌면서 흰 종이를 태워 공중으로 올리는 일 또는 그런 종이를 가리킨다. 다섯 명의 제관‧축관은 주민 이름이 적힌 소지에 불을 붙인 다음 소원을 말하며 불에 타면서 줄어드는 한지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많은 분량의 소지를 한 장 한 장씩 불로 태우며 올리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소지가 끝나면 모두 다 함께 두 번 절을 올리고 산신제를 마치게 된다. 마친 후에는 차려진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다[음복(飮福)이라 한다]. 그리고 산제당에 남겨둘 것과 마을로 다시 가져갈 것을 고려하여 상을 차렸던 제단은 물론 산제당 주변까지 정리한 후 산제당을 내려가게 된다.

다른 산제당을 찾아봐야 할 일이 있는 나는, 산제당을 내려가기 전에 산신제를 이끈 제관과 축관을 모시고 사진 촬영을 하였다. 산신제를 구경할 수 있게 배려해 준 것도 고맙지만 먼저 내려가려는 나를 생각하여 음식까지 챙겨주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좋은 기운 많이 받아 뿌듯한 마음으로 산 아래로 내려왔다. 산제당 조사하다가 우연히 산신제에 참가하게 된 오늘, 마치 횡재한 기분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거나 숨어있는 산제당을 찾아다니고 산신제까지 참가하는가 하면, 세상이 변하면서 점점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으로나마 남겨두려는 이 늦은 겨울과 이른 봄에 비록 몸은 힘들어도 맘은 개운하였다. 혹 이런 게 사는 거 아닐까.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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