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삶이 주어진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남은 삶이 정확히 6개월이라면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대면하는 일이 때로는 도움이 된다. 유한자로서의 자각은 우리를 깊은 성찰과 사유의 세계로 안내하는 스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년만 산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향해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던 얼굴이 떠오른다. 몇몇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며 무르익은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분위기였다. 망설임 없이 답을 했던 그 날의 떨리는 심장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비슷한 질문을 반복했던 시절이었다. 삶의 위기를 체감하면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또는 ‘내게 주어진 삶이 단 며칠이라면’, 이런 질문으로 실존적 당위성을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대로 살던 대로 살 겁니다. 음… 일상에 조금 더 충실하고 싶어요.”
뭔가 분위기가 싸하다. 재미로 주고받는 질문에, 믿을 수 없는 대답이라는 반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30대 새파란 젊음이 주는 생기가 빠져있는 답변이었을 수도 있다.
“선생님은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당장, 직장 때려치우고 혼자 여행을 떠날 겁니다.”
현재를 벗어날 수 있는 명분으로서의 질문이었을 뿐. 진지한 물음이 아니었던 건가? 고개를 갸웃했다. 삶의 무게가 저마다 다르고 그 대응 방식도 천차만별인 것을 몰랐다. 그 이후로 가끔 당시의 나를 떠올려본다. 잠깐 고민의 시간을 해보지만 역시나 결론은 같다. 지금처럼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다고 믿었다. 상상력의 부족 때문이 아닌, 풍파가 많은 삶이 주는 선물 덕분이었다.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운명이라 믿었으며 그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돈 룩 업』은 지구 종말을 앞둔 시점에서 벌어지는 정치, 과학, 자본, 미디어와 그리고 시대의 자화상을 풍자한다. 6개월 이후에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99.7%의 가능성 앞에서 권력과 자본이 결탁하고 미디어와 과학이 소비되는 상황에서 6개월의 시간은 속수무책 흘러간다.
처음 혜성을 발견한 대학원생 케이트와 지도교수 랜들, 심각하게 이 문제를 받아들인 정부 관계자 테디와 함께 대통령을 만나지만 소용이 없다. 대통령은 본인의 지지율에 불리할 것으로 판단하며 소통을 거부한다. 거대자본을 상징하는 피터는 대통령을 조종하며 지구인의 안전보다 혜성의 물질적 가치를 우선한다.
인기 프로그램인 ‘잭과 브리’에 출연하여 혜성의 출현과 지구인의 위기를 전달하지만 유명 가수의 스캔들에 묻혀버릴 만큼 관심을 끌지 못한다.
“우리가 본 걸 전달하는 게 죄가 되나요?”
비밀을 지키라는 협박에 대항할 힘이 없다. 학교와 연구실에 갇혀 천체 관측에 일생을 보냈던 랜들은 상황을 돌파하지 못한다. 정치권력과 미디어에서 ‘섹시한 과학자’, 최초로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 스타 과학자로 인기를 끌며 서서히 전락한다.
영화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풍자의 화살을 날린다. 그게 웃음 코드가 되고 문제의 심각성을 분산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웅적인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케이트는 처음 혜성을 발견하였고, 그 위기를 직감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오히려 마녀 이미지로 대중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가족에게마저 거부당해 길거리를 떠돈다. 랜들은 유명 인사가 되어 혜성의 존재를 알리지만 단지 소비재로서 이용당할 뿐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혜성의 존재는 위협으로서가 아닌 다양한 불안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심지어 인사말로 사용하는 지경까지 이르며
“여러분! 즐거운 종말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식의 무감각의 극단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극단적으로 자본과 정치 권력이 결탁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영화는 충분히 공을 들였다. 우리가 두려워 할 세력이 자본의 편을 드는 권력(정치)임을 명백하게 간파하고 있는 흐름이다. 수백 조 달러의 가치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자본의 상징 피터 이셔웰은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를 무조건 해고하는 야비함으로 정보를 독점한다.
경제 붕괴, 핵 누출, 대기가스, 빈곤, 기아, 낮은 출산율, 오존층파괴, 기후 위기, 지구의 멸망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걸까? 영화는 다양한 문제의식을 심도 있게 제기한다. 정치인, 자본가, 스타 과학자를 믿으면 발등 찍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풍자의 최종 대상은 우리들, 이름 없는 대중이다. 미디어에서 하는 말을 믿고, 자본의 술책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 자신이다. 서서히 내면을 파고들며 작은 실천을 자각하게끔 흔들어댄다.
『돈 룩 업 Don't Look Up』은 말 그대로 하늘을 바라보지 말라는 뜻이다. 지구 위기의 진실을 가리기 위한 정치권의 조작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하늘을 바라보면 안 돼요.”가 구호가 된다.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말이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재현될 수 있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정치는 현실과 이상의 줄다리기 게임이 아닌가. 2022년 3월 한국 대선의 과정과 결과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블랙코미디가 『돈 룩 업 Don't Look Up』과 일정 부분 일치하는 지점이 있었다. 진실은 명확하지만 일상의 한걸음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맹점이 있다. 『돈 룩 업 Don't Look Up』을 외치는 미디어와 구호를 벗어나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용기와 결단의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지상에 혜성이 떨어지는 순간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
6개월 이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오늘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지구의 멸망, 나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제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정치권력과 자본에 밀려 세상을 구원할 수 없었던 실패자들, 과학자 랜들과 케이트, 테디처럼.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과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으로 품격을 보여준다. 케이트의 말이 주는 울림이 크다.
“제가 감사하는 건 우리가 노력했다는 거예요”
유한한 삶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의미 있는 무언가를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욱 소중하다.
좋은 영화는 우리에게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가 아닌, 질문의 원천을 제공한다. 『돈 룩 업 Don't Look Up』이 제공하는 ‘지구 종말’과 ‘인류 구원의 가능성’이 주는 다양한 질문의 시간이 좋았다.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할지라도 나를 변화시키는 힘에 보탬이 되었음을 믿기 때문이다.
『돈 룩 업 Don't Look Up』 , 2021 제작, 아담 맥케이 감독, 13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