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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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 박명순작가
  • 승인 2020.11.0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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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을 잊고 살 때가 있다 가끔
▲박명순작가 사진=박명순
▲박명순작가 사진=박명순

 

시월이 오면 목이 멘다. 나뭇잎 색채의 흔들림에도 온몸으로 느낌표가 꽉 차오르며 풍경의 변화가 이방인처럼 낯설어진다. 지금 그 시월의 한복판에서 서성이는 내 마음을 바라본다.

공주천안 출퇴근,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깥 풍경 변화의 속도에 빠져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쾌청한 하늘과 들판의 황금물결, 노란 은행잎 가로수를 거울삼아 내 안의 나를 바라보게 된다. 오랜 세월 요양병원에 누워계시는 시아버님의 마른 팔뚝처럼 건조해진 나뭇잎들이 팔랑팔랑 허공을 가로지른다.

가족끼리 닭백숙이라도 나누면서 가을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런 소시민적 아쉬움으로 남은 세월을 가늠해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들. 이런저런 이유 속에서 가족이 모여 밥 한 끼 먹기 어려운 날들이 점점 늘어간다. 진학으로 취업으로 둥지를 떠난 아들딸들조차 특별한 행사에만 겨우 얼굴을 마주한다. 가출이나 이혼으로 생이별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흔한 풍경이 되었다. 가정의 견고함이 흔들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더 이상 두리번거리지 말고 내 안의 가족을 더 많이 품어야 하는데.

이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아주 특별한 이야기이다. 어느 순간 아빠와 함께 집이 사라져 버렸다. 지소는 동생 지석이 그리고 엄마와 미니 봉고차에 지낸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러면서 지소는 집을 구하기 위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계획한다.

영화는 이밖에도 시월의 한복판 깨알 같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들깨향의 고소함이 무 빛깔을 휘감고, 푸짐한 배춧잎 꼭대기까지 올라온다. 10월말 들판에는 벼를 베어 낸 텅 빈 논이 있고 간혹 추수 직전의 늦은 황금물결도 만날 수 있다. 들깨를 베어 널어놓은 밭을 거니는 행운이 온다면 그 향이 코끝에 찡 울린다. 내 옆에 없는 가족의 그리움까지 숨은 그림 찾기처럼 흥미롭게 다가와 웃음과 눈물을 선물한다.

영화 속 어른들의 삶의 무게는 주인공인 아이들로 인해 많이 가벼워진다. 집을 구하는 가격을 500만원(‘전원주택의 그림에 적힌 평당 500만원이라는 전단지를 보고, 지소는 평당에 있는 멋진 집이 500만원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으로 이해하듯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 하지만 어른들이 풀지 못하는 외로움과 가난의 문제를 단순함으로 무장해제 시킬 수 있으니 아이들은 힘은 세다.

집 나간 아빠, 그 빈자리에서 엄마는 혼자 집도 없이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한다. 고급 레스토랑 마르셸의 할머니는 괴팍하고 냉혹하다. 손가락 세 개가 잘린 노숙자 아저씨(최민수), 가족을 몰래 보러 가면서도, 가출생활을 정리하지 못한다. 이 아저씨를 통하여 지소는 아빠가 어딘가에서 우리를 몰래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는다. 몰래 도움을 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이다. 왜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영화가 끝나도 해결되지 않지만.

강혜정(지소와 지석 엄마)은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기다리며 집 근처(지금은 남의 집)를 맴돌며 차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철이 덜 든 엄마이다. 멋 부리고 싶고, 결혼 전에 따라 다녔던 남자(‘마르셸할머니 조카) 앞에서 불쌍해 보이고 싶지 않은데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검은 드레스 차림의 김혜자는 멋쟁이 할머니인데 고급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강아지 윌리만 아끼는 냉혹한 여인이다. (하나뿐인 아들은 엄마가 반대하는 화가의 길을 걷다가 요절했다. 아들이 남긴 그림과, 강아지 윌리를 위안 삼으며 살아가는 고독한 여인이다.) 김혜자의 유일한 혈육인 마르셸의 지배인은 숙모의 재산을 탐하는 인물이다. 강혜정은 지소와 지석 남매를 데리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지만 되는 일이 없다. 조숙한 지소는 철부지 엄마를 원망하며 아빠를 기다리지만 어른들의 복잡한 세계를 동화적 상상력으로만 해결책을 모색한다. 동생 지석과 친구 채랑이 든든한 후원군이다.

500만 원을 마련할 방법을 찾다 지소는 개를 찾아주면 사례비를 준다는 전단지를 본다. 개 주인과 통화를 시도하지만 이미 찾았다는 답변에 사례금은 증발되고 닭 쫓던 개가 되었지만. 이때부터 꼬마들의 맹랑한 반전이 시작되니, ‘개를 훔쳐서 사례금을 받자는 아이디어이다. 어떤 개를 훔칠 것인가부터 머리를 쥐어짠다. 주인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부잣집 개를 찾아 헤매는데, 역시 범인은 면식범이다. 엄마의 예전 남자친구가 지배인으로 있는 레스토랑 마르셸윌리를 선택한 것이다. 가정집보다 출입이 자유롭다는 점, 이미 윌리와 친분도 있으니 훔쳐서 데리고 있기도 수월하다. 지소, 채랑, 지석이 합세하여 작전에 돌입한다.

그런데 의외의 덫이 있었으니 할머니의 조카가 미리 개를 빼돌린 것이다. 개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몰래 본 조카는 개를 아예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할머니가 사들이는 그림 값조차 충당하기 어려워 레스토랑은 부도의 위기에 처하고, 조카는 레스토랑을 담보로 유혹하는 사기꾼에게 속아서 상속인 행세를 위해 개를 살해하려 시도한다. 서로 개를 훔치려는 추격전이 벌어지면서 지소는 주사기를 빼앗아 윌리의 목숨을 구해주고, 마르셸 할머니에게 찾아간다. 마르셸 할머니에게는 윌리가 자식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원작소설의 탄탄함에 힘입어 명대사가 많다. 그 중 한 장면.

지소가 할머니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가족을 버리고 집을 떠난 사람에 대한 기다림의 마음이 절절하게 녹아있다. 한 대목을 옮겨보면.

 

윌리를 찾지 않아요? 보고 싶지 않으세요?”

제 발로 나간 건 사람이고, 짐승이고 찾지 않는다.”

싫어서 나간 게 아니라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잖아요. 우리 아빠처럼 길을 잃어서 집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미안해서 못 오는 건지도 모르잖아요.”

 

남편도 아들도 자신을 배신했다는 피해의식으로 굳어진 마르셸할머니의 가슴이 조금씩 말랑말랑하게 풀어진다. 그 와중에 지소는 엄마가 아빠를 쫒아낸 게 아님을 알게 되고 외모를 치장하는 엄마의 속마음이 아빠에게 향해 있음을 눈치 챈다. 헤어져 있어도 마음으로 화해하고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는 시월의 낯선 아름다움과 들깨알 톡톡 터지는 고소한 웃음까지 넘쳐난다. 특히 아역배우들의 깜찍한 연기는 징그럽기까지 하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 부재하는 가족의 존재를 사랑할 수 있게 토닥토닥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영화, 망설임 없이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런데 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

(2014 제작, 한국, 김성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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