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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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어요』
  • 박명순작가
  • 승인 2020.11.1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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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죽음을 앞두고 1년만 다시 살 수 있다면?’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에 대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그때가 언제일까 생각해 보는 것, 영화는 답이 없는 물음을 준비한다. 현문우답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겠지만.

필자는 이 영화를 접하기 이전,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었고 평론을 쓴 적도 있다. 세상 끝 절망을 감당해야 하는 무겁고 슬픈 가족 이야기를 담담함과 웃음의 코드로 참신하게 처리한 작가의 순발력과 재기발랄함에 매혹 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백하자면 김애란의 장편소설과 영화의 만남은 썩 괜찮았다. 황순원의소나기처럼 소설을 영상으로 바꾸는 순간 도둑맞은 느낌까지 들던 그런 실망감은 전혀 없었다. 그때는 문자언어가 강세였던 시대였고, 저예산 영화의 문제점이기도 했을 것이다. 작품이 강간당한 듯 수치심조차 일 만큼 제작의 문제가 심각하기도 했었다. 진짜배기의 아우라가 사라진 느낌을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내가 소유한 명품의 가치가 조악한 짝퉁으로 인해 훼손당한 그런 느낌일 것이다. 아무튼 영화와 소설의 서로 다른 질감을 떠올리면서 이 영화를 보는 분들에게는 소설 읽기도 권하고 싶다.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만드는 장면들은 위트와 순발력으로 처리된다. 가출을 꿈꾸는 시발공주(욕을 잘 해서 얻은 별명) 최미라(송혜교)와 체육고에서 퇴학당한 한대수(강동원)가 만나는 장면이 그것이다, 고교시절에 연애를 하고 아이(아름)를 낳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여자 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비는 한대수에게 가수를 꿈꾸던 최마라가 강물에 빠지면서 알몸인 한대수와 물속에서 만나는 장면. 현실에서 둘의 만남은 집안망신이고 풍기문란이다. 하지만 아름이 상상하는 이 장면들은 부모와 자식이 관계 맺는 신비스러움으로 승화된다. 우연과 충동이 만들어내는 인생에 바치는 예찬에서 죽음도 예외는 아니다.

남녀의 만남과 잉태 과정이 이토록 우연적이고 가볍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주도면밀한 계획과 무관하다는 진실을 슬쩍 던져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연을 감당해야하는 숙명 앞에서 인간의 삶은 더욱 위대한 것이다. 사랑과 잉태와 출생의 과정은 신화적이고 비현실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복제인간, 시험관 아기, 인공수정 등의 가능성조차도) 그 안에 죽음이 없다면 앙꼬 없는 찐빵처럼 밋밋할 것이다.

철없는 풋사랑 임신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대책 없이 아이를 낳게 된 어린 부모. 이들에게 부모의 자격 운운하며 손가락질을 하는 어른들 또한 오십 보 백 보일 뿐이다. 그래서 부모의 자격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나의 탄생은 축복이었을까이런 문제를 끊임없이 곱씹게 이끌어주는 영화가 된다. 제목 두근두근 내 인생의 비밀은 철없는 부모와 조숙한 자식(17세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이 새롭게 열어가는 가족의 재생산에 대한 희망이다.

아빠, 젊다는 건 어떤 거예요?”

아름에게 1년이라는 세월은 남다르다. 희귀병인 조로증을 앓는 아름은 이 시기에 청춘과 노년의 죽음을 한꺼번에 겪는다.(신체 나이 80세인 아름의 실제 나이는 16세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름은 17세에 만나서 부모가 된 엄마, 아빠의 이야기(소설 두근두근 한여름)를 완성하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과정에서 아름이 겪는 아픔의 장면들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죽음에 이르는 희귀병과 싸우며 꿋꿋하게 일상을 즐기는 아름에게 닥친 어려움은 뜻밖의 사소함에서 비롯한다. 우리를 일상에서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거창한 문제가 아닌 우연히 마주친 말 한마디일 수 있음을 포착하는 장면이다.

뱃속에 잉태한 자신을 없애려고 심하게 뛰었다는 엄마의 말을 그야말로 우연히 엿듣고 괴로워하는 아름, 그 말 한 마디에 자신의 존재 전부가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과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화한 두근두근 한여름원고는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 부모에게 고통만 안겨준 자신의 존재에 절망하면서 아름은 하염없는 자책감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출연했던 TV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암투병중인 이서하와의 이메일 만남에서 받았던 설레임과 기쁨의 허상으로 인한 박탈감이 슬프다. 이서하가 시나리오 작가지망생 중년남자였음이 밝혀지면서 그 사기당한 감정은 청춘의 덧없음과 겹쳐진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사랑의 의미를 그대가 아닌 에게 무게중심을 둔다. 그리하여 아름은 착각일지언정 그 만남에서 가졌던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고 이토록 큰 선물을 준 서하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신기루 사랑처럼 청춘이 덧없다 해도 그 가치는 다른 무엇과 대체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이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변한다 해도 그 순간의 감정은 거짓이 아니라는 자각이다.

옥의 티라고 할까, 아름의 부모 강동원과 송혜교가 너무 젊고 고와서 고생스런 부모 흔적이 덜 묻어나는 것이 아쉽다. 책으로 읽을 때는 상상력으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지만 영상언어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연기력이나 촬영기법으로 가난과 생로병사의 고통에 대한 처절함이 좀 더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는 자식이 되고 싶어요.”

비극의 주인공, 아름의 소망은 이루어졌을까?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은 아름인 동시에 철없는 부모인 엄마와 아빠이다. 그리고 아름이 떠난 자리를 채워 줄 뱃속에 있는 아름의 동생일 수도 있고 영화나 소설을 접하는 우리들 모두일 수도 있다. 자식이 되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각자 독립된 존재로 그들만의 방식대로 생을 사랑하며 살다가 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두근두근설렘으로 살아야 할 내 인생이 소중하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진부하지만 유머 그리고 생명과 동의어로서의 청춘예찬은 매혹적이다.

(2014 제작, 한국, 이재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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