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 박용래의저녘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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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 박용래의저녘눈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1.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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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녘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김명수시인 사진=시아북
▲김명수시인 사진=시아북

늦은 저녘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녘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녘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

겨울이 참 좋은 것 중의 하나는 눈이 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추운데도 눈 내리는 이 겨울을 좋아한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밤 하얗게 쏟아지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노라면 그 포근함과 함께 신비의 세계로 이끌려 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오래 전 잊어버렸던 기억을 다시 불러내어 정겨운 시간을 갖는다. 그 기억 때문에 즐거워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참 아름답고 고마운 선물이다.

열대지방에서 한국으로 와 이웃에서 살고 있는 어떤 외국인은 이 겨울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 신비스럽고 너무 환상적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스므 살이 되도록 하늘에서 사뿐사뿐, 때로는 펑펑, 하늘하늘 선녀처럼 내리고 있는 눈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눈 내리는 풍경속에 한 참 동안 넋을 잃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눈 오는 날이면 그 넓은 들판에서 눈을 맞으며 뛰고 딩굴고 눈싸움을 하고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먼저 걸어 꽃무늬 발자욱도 만들어 보고 깨끗하고 새하얀 눈을 한 웅큼 쥐어 먹어도 보고 둑방길에서 포대를 이용하여 미끄럼도 타 보고 눈 위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겁게 한 추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일까, 놀이문화가 변한 탓일까, 요즘엔 눈이 와도 어린이들이 그런 놀이를 하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참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1970년 발표 되었던 영화 러브 스토리가 생각난다. 하버드 법대생 올리버와 가난한 이민자 출신 제니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두 사람이 도서관에서 처음 보는 순간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부모들의 반대에도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어느 날 신의 질투일까? 제니가 백혈병에 걸려 고통스러워 하자 올리버는 미안해 라고 한다. 그러자 제니는 사랑은 미안해라고 하는게 아니야 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제니를 끝까지 사랑해주는 가슴시린 이야기를 그려서일까? 영화가 끝나는 자막이 나오고도 한 동안 눈을 감고 긴 여운 속에 잠긴다.

저녘때,눈발,발굽,조랑말,변두리 빈터,붐비다.등 이런 낱말이 중복되어 있는 이 시를 소리 내어 반복해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그림이 그려진다. 언어가 가져 오는 상상력으로 하여금 뭐라 말할 수 없는 따듯한 정감이 가득 들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런 게 바로 시의 맛이 아닐까? 대전 사정공원에 가면 최종태 조각가의 조형물이 함께 붙어 있는 박용래 시비를 만난다. 그 시비에 이 저녘 눈이 있다. 참 오래전 일이다. 대전 사정공원에서 눈물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박용래 시비제막식이 있던 날 김남조 시인의 축사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바람은 악기 용래는 울보, 오래전 퇴색된 일기장속에서의 한 귀절을 떠 올려 본다.

마스크를 쓰고 세상을 바라봐야 했던 2020년의 해가 간다. 이제 2021 새해에는 괴물 같은 코로나를 물리치고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밝고 아름답고 힘찬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는 날들이 되길 기도한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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