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라따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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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라따뚜이』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1.0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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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 “너는 결코 요리사가 될 수 없어.”사진=블로그에서
▲ “너는 결코 요리사가 될 수 없어.”사진=블로그에서

 

만화영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3D 애니메이션이라 한다. 그래픽 편집의 진화는 어디까지인가. 속도감, 입체성, 기상천외한 볼거리, 가상과 현실의 만남으로 확장된 삶의 영역은 무한한 상상력과 지적 긴장감으로 순간 행복의 절정을 만끽하게 한다. 그래도 나는 유년에 체득된 만화영화의 어감이 마음에 든다. 어쨌든 이 말을 떠올리면 천진난만한 동심을 민낯으로 만나는 설레임이 있다. 3D 애니메이션의 진화에 따라 동심도 복잡해지고 어려워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라따뚜이는 만화영화처럼 단순하고 편하게 집중되는 영화이다.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싶은 레미와, 음식 사랑을 전혀 모르고 지적질을 즐기는 요리 비평가 안톤 이고가 구스또의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혐오감의 대명사였던 존재를 사랑스럽게 재탄생시킨 미키 마우스의 생쥐는 이제 최고의 요리사가 되어 우리는 그의 요리를 꿈꾸고 사랑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요리책을 열심히 읽다가 전설의 셰프 구스또를 존경하는 마음을 품는다. 셰프가 생전에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믿게 된 것이다. 그는 출신성분의 비극을 스스로 극복하고자 못 말리는 열정을 쏟는다. 그에게 닥친 일련의 사건들은 최고의 요리사 탄생을 알리는 수난과정이라 해도 주변의 반대와 만류가 심상치 않다.

너는 결코 요리사가 될 수 없어.”

타고난 미각과 민감한 손놀림과 미적 섬세함까지 그를 당할 자는 아무도 없다. 마법의 요리, 환상의 요리가 탄생하고, 모두가 인정한 최고의 셰프가 된다. 나중에 생쥐가 한 요리임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요리비평가 안톤 이고의 극찬은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레미의 라따뚜이를 사랑한 대가로 요리비평가의 직함을 박탈당하는 위기에 처한다.

깜짝 놀랄만한 음식을 창조해내는 셰프, 그가 생쥐라는 사실을 빼면 그다지 특별한 스토리는 없는 듯하다. 나쁜 주방장과 착한 요리사의 등장도 전혀 새롭지 않고. 양념으로 곁들이는 로맨스와 출생의 비밀은 밋밋한 스토리에 간간한 맛을 더해줄 뿐이다.

그러니까 생쥐가 실력으로 주방을 점령한다는 설정 자체가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긴장감과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생쥐와 주방은 부조화스럽다 못해 천적에 가까운 관계임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바퀴벌레나 뱀에 비하면 혐오감이 덜 하지만 생쥐가 만든 요리는 상식적으로 허용하기 어렵다. 결국 레미의 존재가 위생반에 발각되면서 전설의 구스또 레스토랑은 영업정지와 폐업을 당하게 된다.

요리 비평가 안톤 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구스토 식당의 요리사는 상상도 못할 만큼 출신이 소박하다. 허나 비평가로서 장담컨대, 그는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일 것이다.”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 레미의 요리는 계속될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 ‘라따뚜이식당은 성업 중이다. 안톤 이고의 오동통 살이 오른 편안한 표정과 즐겁게 음식을 먹는 사람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서빙을 하는 주방장 이색적인 풍경이 벌어지는 식당이다. 그곳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건 누구일까.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듯하다.

필자는 라따뚜이를 먹어보지 못했다. 이 음식이 뭔가 찾아보니 야채를 넣어 끓인 찌개류라 적혀있다.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음식.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뭘까? 어렸을 때 간편하게 만들어주는 유년시절 어머니의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주고 정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라면 김치부침개일까, 쑥개떡일까. 돼지고기김치찌개나 두부된장찌개? 라따뚜이는 꼭 무어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추억이 깃든 음식이다. 잔칫상에서나 만나는 음식이 아닌 평범한 먹거리라는 것밖에. 평범한 음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법은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교감이다. 그런데 교감이라는 게 음식을 사랑하면서 형성되기도 하고, 사람을 좋아하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라따뚜이는 후자이다. 음식을 만든 주체가 생쥐라는 걸 알면서도 이미 형성된 교감은 흔들리지 않는다. 입맛을 사로잡는 힘이 때로는 운명처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생쥐라는 동물을 누구나에 포함시킬 때 상황이 180도 달라지니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 된다. 생쥐가 등장함으로써 풀어나가야 하는 기상천외한 발상과 그에 따른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로 변신한다. 그리고 영화의 깊이를 위해 당연히 요리를 알레고리로 이해하는 진지함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색다른 재미와 위안을 가슴에 품는다. 누군가 한번쯤은 소수자라고 자신을 느껴보았다면 그 감동은 현실을 추동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에 포함되지 못해서 슬퍼하고 있을 소수자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다. 그는 누구인가, 사람과 생쥐처럼 명확한 구분은 없다. 어린이나 노약자 또는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 전염병 환자기타 등등. 우리 모두는 꿈을 꿀 때 소수자가 된다.

내가 감히, 어떻게?’

이렇게 움츠려든다. 그럴 때 영화는 웃음과 위안을 아끼지 않는다. ‘누구나에 당연히 나도 포함된다고 믿는 당당함을 선물한다.

(2007 제작, 미국, 브래드 버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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