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수상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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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수상한 그녀』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1.1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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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과 젊음을 합체할 수 있다면
▲ 영화 『수상한 그녀』의 정체는 ‘노인문제 전문가’ 국립대 교수 아들을 자랑삼아 살아가는 70세 오말순 할머니(나문희)이다. 사진=네이버
▲ 영화 『수상한 그녀』의 정체는 ‘노인문제 전문가’ 국립대 교수 아들을 자랑삼아 살아가는 70세 오말순 할머니(나문희)이다. 사진=네이버

남편 환갑기념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베트남 다낭, 도로를 채우는 오토바이 행렬(여자들이 더 많다)이 강렬하게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얼핏 오토바이 달리기 대회인가 했으나 그게 베트남의 변화하는 일상이었다. 거리풍경은 그렇게 오토바이와 노상카페가 인상적이다. 여자들이 일터에서 분주한 아침 시간, 사내들은 노상카페의 흡연 속에서 잡담에 빠져있다.

남편과 아들딸이 함께 떠나는 첫 외국여행이었지만 발걸음이 무겁고 조마조마했다. 양가 부모님이 연로하신 탓에 힘들게 내린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은 병석에 누워계신 93세 아버님 때문에 마음 졸이며 일정에 집중하지 못한 채 여행 내내 얼굴이 굳어 있었다. 함께 다닌 12명 대가족 일행의 평화로운 모습을 힐끔거리면서 속절없이 흐른 세월만 탓할 수밖에 없었으니.

,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부모님과 멋진 여행을 떠날 수 있으련만.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의 화살은 엉뚱하게 걱정 안 해도 될 아들딸을 향한 자책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국의 거리를 걷고 고적을 답사하는 여행은 꿈꾸지 못할지언정, 가까운 들길을 찾는 여유로움으로 아들딸과 더 많이 놀아줄 수 있었는데책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재잘재잘 떠드는 말을 오래오래 들어주어야 했는데.

머릿속 가득 고독한 부모님과, 취업의 벽과 힘겹게 씨름하는 아들딸의 무게에 짓눌린다. 그러니까 가족여행은 훌훌 털어버리는 여행이 될 수 없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가 섞였건 안 섞였건(피가 가족의 유일무이한 조건은 아니다) 엮이고, 묶여서, 짊어져야 하는 짐들이 온몸을 칭칭 감아드는 느낌이 달라붙는 것, 그게 가족여행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정체는 노인문제 전문가국립대 교수 아들을 자랑삼아 살아가는 70세 오말순 할머니(나문희)이다. 삶의 목적이 오로지 내 새끼만 챙기며 살았던 그녀는 터무니없이 당당하고 기가 세다.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였지만 스무 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죽어가는 아들(구체적인 병명은 모른다)을 키우며 시장바닥에서 욕쟁이 할매로 살아남았다. 생명의 은인을 파산시킬 만큼 독하고 경우 없는 과거를 지닌 인물.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분만 남은 이 뻔뻔한 여인을 자식마저 외면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며느리가 심장병으로 쓰러져 입원하면서 그녀는 집안의 화근덩어리가 된다. ‘요양원에 모셔야 한다는 가족회의 장면을 엿듣고 가출을 결심하지만 갈 곳이 없다. 여기까지는 노인문제의 현실감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전개된다. ‘노인문제 전문가아들의 어두운 표정과 위세당당한 시어머니에 짓눌린 검은 표정의 며느리까지. 모두 선량한 인물들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가족 풍경이다. 진중하면서 웃음기 없는 아들의 표정은 노인문제 전문가의 딜레마이다. 아들을 위해 청춘을 희생한 어머니 앞에서 며느리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무능한 남편의 자화상도 보인다. 이렇듯 영화는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나 진행은 유쾌 발랄함으로 통통 튀어 오른다.

그녀는 요양원에 가기 전 청춘사진관에서 찍은 영정사진 덕분에 20세 젊음을 되찾는다. 오말순 욕쟁이 할매에서 스무 살 꽃처녀 오두리(오드리햅번의 변형 이름)로 변신한다. 신체나이 20세와 정신연령 70세의 조화가 만든 독특한 캐릭터로 변신한다. 그 즈음. 잘 나가는 방송국 PD는 개성 없는 아이돌, 걸그룹과 차별화된 컨셉 구상에 승부를 건다. 20대의 팔팔한 젊음과 전통의 숙성이 혼재된 영혼의 목소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녀의 손자 반지하는 공부를 때려치우고 뮤지션의 꿈을 위해 자신이 작곡한 노래와 어울리는 가수를 찾다가 그녀와 만난다. 70세인 그녀를 처녀시절부터 아가씨라 부르며 남몰래 흠모하던 박씨는 그녀와 젊음과 늙음의 사연을 함께 나눈다. 그녀는 숨겨진 끼와 열정으로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 맘껏 청춘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심은경)의 연기는 스무 살 꽃처녀가 욕쟁이 할머니의 걸음걸이와 말투를 거침없이 뱉어내면서 통쾌한 웃음을 선물한다. 이상적인 남자에 대해 질문하는 PD에게 하는 말.

남자는 처자식 굶기지 않고 밤일만 잘 하면 되는 겨.”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뱉는 습관으로 며느리가 스트레스를 받아 심장병까지 걸렸지만, 스무 살 꽃처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매력 넘치는 위트와 지혜로 인정받는다.

생선찌개 지질 때 무를 밑에만 깔지 말고 위에도 얹어야 맛있는 국물이 고기에 배어 맛나요.”

손님으로 초대받은 상황을 망각하고 습관대로 나온 말이다. 70세 욕쟁이 할매의 잔소리가 지혜의 명언이 되는 순간, 손자인 반지하는 열광한다. 얼굴도 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음식도 잘 할 것 같은 그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며느리는 예전에 시어머니에게 반복해서 듣던 말을 떠올리면서 당황하지만 싫은 내색을 할 수 없다.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아닌가.

다시 스무 살 꽃처녀로 살 수 있다면!

영화는 이런 꿈같은 상황을 연출하면서 흘러간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한결같이 80년대 감성을 자극한다. ‘라성에 가면’, ‘하얀 나비’, ‘빗물김정호의 하얀 나비를 들으면서 요절한 가수의 고독했던 표정이 떠오른다. 가버린 청춘을 반추하는 야릇한 기분, 애절하면서 달달하다.

잠깐, 영화 수상한 그녀에게서 20대 청춘의 고뇌, 청년실업의 해결책, 이런 기대는 버려야 한다. 코믹영화일 뿐이다. 고부갈등과 노인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진지한 물음은 일단 관람한 다음 숨고르기가 끝난 후 시작해도 늦지 않다. 영화는 영화일 뿐. 보는 내내 웃음이 터지면서 통쾌하다.

어머니, 저 환갑 때까지 사실려구요?”

다시 좋아진 고부 사이, 아들과 딸(할머니의 보컬을 손녀가 이어받았다)의 콘서트장 화장실에서 얼굴을 매만지며 며느리는 농담을 던진다. (쯧쯧 그걸 말이라구, 100세 시대가 대세 아닌가.) 2014년 제작된 영화인데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드는 옥의 티를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다. 아들 자랑으로 사는 시어머니, 자식들의 성공에 만족하는 며느리, 이들 장면을 통해, 고부갈등이 해결된 것처럼 보여주는 설정은 매우 수상쩍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뮤지션으로 성공하는 손자 손녀를 통한 대리만족으로 가정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적 망상일 뿐 아닌가?

영화의 결말은 욕쟁이 할매를 아가씨로 떠받들던 박씨 아저씨(박인환)의 변신이다. 그녀처럼 청춘사진관을 만나 20대로 변신한 박씨(김수현)는 오토바이를 날렵하게 몰면서 말한다. 오말순 할머니와 20대 박씨의 만남은 영화의 결말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워뗘, 후달려?” (‘후달려는 상대하기에 벅차다, 불리하다 이런 뜻).

집은? 가족은 어떡할 거여

집이 무슨 소용이여, 두 다리가 튼튼한디.”

이 영화는 늙음과 젊음의 화합을 위해 라는 상징장치를 준비한 듯하다. 필자는 어린 시절 등골 빨아먹는 자식이라는 말이 주는 죄의식 속에서 자랐다. 딸자식이 대학공부까지 한다고 아버지 친척들이 쉽게 던진 문장들이 뒤통수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평생토록 떨어지지 않았다.

상처에 흐르는 피에서 노화가 진행된다는 설정은 핏줄의 복선장치이다. 손자인 반지하가 교통사고를 당해 희귀혈액을 찾지 못해 사경을 헤매는 상황에서 그녀는 젊음을 포기하고 가족을 구하는 역할을 자청한다. 아들은 수혈을 하지 말고 스무 살 꽃처녀로 꿈을 펼치며 젊음을 누리라고 간청한다.

어머니는 하고 싶은 대로 맘껏 사세요. 제 자식은 제가 살릴 겁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오말순 할머니로 돌아온다. 반지하 밴드에서 꿈을 펼치는 손자손녀, 평화롭게 보이는 이들 가족. 이 영화에서 가장 수상한 장면이다. 고부갈등, 노인문제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이걸 어쩌나?

영화의 샛길을 들여다보자면 이렇다.

모든 부모가 오말순 할매처럼 청상과부로 시장바닥에서 죽어가는 목숨을 살려놓거나, 18,000원짜리 신발 하나 사는 것도 발발 떨며 자식을 키우지는 않는다. 희생과 헌신으로 키운 자식이 모두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것도 결코 아니다. 자식과 부모는 서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늙음의 현재에 고정화되어 잊힌 늙음 이전의 역사(오말순 할매의 과거처럼 부모에게는 피눈물 나는 역사가 있다는 것)를 사랑으로 기억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은 것이다. 이 영화에서 리얼리티의 총체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어찌되었든 부모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자식이 성장한다는 것을 로 일깨워준 설정은 나름 참신성이 보이고 설득력이 있다.

의붓아버지의 피를 입양하였다’(손홍규, 이슬람정육점)는 문장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수직적이지 않고 고정적인 것도 아니다.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된다는 순환은 세월의 무상함만이 아니다. 구순의 아버님을 걱정하는 환갑의 남편을 바라보는 나의 심경은 착잡하다. 늙음과 젊음의 강물이 따로 있지 않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오말순 욕쟁이 할매가, 감칠맛 나게 노래 잘 하고 고운 오두리로 변신하여, 늙음과 젊음을 오가는 장면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늙는다는 것. 선택이 아닌, 시간의 노예가 되어 늙는다는 것. 막연하게 운명으로 여겼던 늙음의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많이 만난 영화였다. 영화의 장면과 무관하게 늙은 부모님의 젊은 피가 온몸 구석구석 뭉클함으로 파고든다.

(2014 제작, 한국, 황동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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