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 박경리의 일 잘하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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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 박경리의 일 잘하는 사내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1.3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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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사내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들었다

왜 울었을까

 

홀로 살다 홀로 남은 팔십 노구의 외로운 처지

그것이 안쓰러워 울었을까

저마다 맺힌 한이 있어 울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을거야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림

그것 때문에 울었을 거야

 

언제부터인가 책을 사는 게 취미가 되어서 호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서점에 가서 책을 샀다. 내가 초,,고를 다닐 때는 학교에 도서관이 열악해서 중학교 때는 시내에 책 빌려 주는 곳에서 친구와 돈을 주고 23일 빌려 와 보면 두 권을 읽을 수 있어서 밤새 읽고 그 이튿날 서로 바꿔 보곤 했다. 고등학교 때 어느 날 모처럼 용돈이 생겨 참고서를 사려고 서점에 들렸는데 마침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이란 소설책이 새로 나온 것을 보고 참고서를 사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루고 그 책을 먼저 산 것이다. 박경리의 소설을 처음 읽게 된 것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 .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토지의 저자 박경리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시집이 나왔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난 습관대로 소설가는 참 어떤 시를 썼을까 하고 궁굼 해서 얼른 서점으로 향했다. 사실 박경리는 문단에 데뷔하기 전부터 이미 장시를 발표했다(19546월 서울상업은행근무 시 사보 천일에 바다와 하늘이란 시:16159행의 장시,시집 우리들의 시간에 편집자가 소개) 또한 현대문학에 나올 당시 박경리가 김동리에게 처음 가지고 온 원고는 소설이 아닌 시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시집을 본 순간 박경리는 소설을 쓰는 중에도 틈틈이 시를 써서 못 떠나는 배를 비롯한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는 것을 알았다. 어찌 그 대단한 소설 토지를 쓰면서도 웬만한 시인보다도 많은 시집을 냈을까. 이는 평소 글을 쓰는데 대한 집중과 열정 그리고 부지런함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 소개한 일 잘하는 사내라는 시는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 수록된 작품이다. 고인의 미발표 작품 36편 속에 들어 있는 시인데 박경리는 당시에 글을 쓰는 순간에 아니 시를 쓰는 순간에 시가 그에게 행복의 순간을 던져 주었다고 이 시집의 추천의 말 속에 들어 있다.

강원도 원주에 가서 채전을 일구며 토지를 집필하던 박경리. 그가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실고 싶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그 광대하고 깊고 복잡한 토지를 집필하랴 이것저것 채전을 가꾸랴, 그건 어쩌면 나이 든 여자의 몸으로 조금 힘들었을 거라 짐작된다.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집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웬만한 것은 앞에서 뒤에서 모두 처리 해 줄 수 있는 건실한 남성 하나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한다. 손수 땅을 일궈 농사를 짓는 것도 좋지만 써야 할 것이 많은 사람에겐 시간이 더 필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경리는 세상을 떠나는 날이 다가 옴을 알고 이 시집의 제목을 정했는지도 모른다.

박경리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그가 2008581세로 타계한 후 출간된 유고시집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갔다 하지만 시는 남아서 그가 평생에 걸쳐 쓴 토지와 더불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것이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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