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을 찾는 호사스러운 외출이 좋다 『신과 함께 -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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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찾는 호사스러운 외출이 좋다 『신과 함께 - 죄와 벌』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1.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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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함께』한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에서
▲ 『신과 함께』한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에서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인가. 여유로움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경제적 여유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는 시간이라든지 신체조건이 더 중요하다. 갱년기 이후 건강이 일상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영화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두어 시간조차 견디기 어려운 상황일 때가 많은 것이다. 집에서 이불을 켜켜이 쌓아 놓고 베개를 사방에 펼쳐놓고 몸을 지탱하면서 엎어졌다, 누웠다 늘어지게 몸을 뒹굴며 보는 편안함에 익숙하다보니 지금은 영화관을 고집하지 않는다. 집에서 TV화면으로 보는 편안함이 좋은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관이 점점 멀어진다.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이 뭉쳤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호사스러운 외출을 포기할 수 없다. 연말연시에 영화관을 찾는 즐거움을 무엇에 빗댈까.(코로나19로 그 소중함을 더욱 절감한다) 일출 여행도 좋을 것이고, 산사의 하룻밤도 의미가 있겠지만 갑작스런 선물처럼 누리는 영화관 동행의 작은 행복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가족이 함께 보는 영화가 늘어가는 뿌듯함은 열심히 참여한 독서모임의 책 목록처럼 지치고 힘든 일상을 넉넉하게 만드는 든든함이다.

흥행으로 치자면 신과 함께가 단연 최고였다.(이 글은 2017년도에 썼음을 감안해주시길) 명량에 이어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를 찍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흥행공학적 성공을 제작목표로 삼아 만들어지는 천만 영화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시대를 반영하는 대중코드에 가까이하고 싶을 뿐이다. 웹툰 애독자였던 지인 하나가 영화에 실망했다고 하는데 그 심정을 나는 안다. 나만의 해석과 상상이 만들어낸 문자세계(만화는 문자와 그림이지만 영화에 비하면 문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의 그 무한 상상력의 에너지가 영상언어로 바뀌는 순간 묘한 배신감이 드는 경우를 체험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웹툰에서 중심인물로 활약하는 진기한 변호사가 빠진 아쉬움은 충격적일만 하다. 각색을 통하여 웹툰의 평범한 인물이 영화에서 귀인으로 등장하는 설정 등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영화와 웹툰을 동시에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아마도 웹툰에 더 끌릴 것이다.)

영화는 충분히 흥미진진했고 무거운 주제의식을 가볍게 날리는 장점도 보여줬다. 설화에 익숙한 구성인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하는 설정이 친숙했다. 또한 지옥을 두려워하는 진지함을 일깨우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소재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질문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영화 신과 함께, 화재현장에서 어린이를 구하고, 사망한 소방관 김자홍이 저승법에 의해, 사후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거치는 과정을 펼치는 줄거리이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한 망자만이 환생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설화에 상상력을 덧입혀 전개하는 저승과 이승세계는 대체적으로 평범했다. 죽음 이후 북망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까 내심 기대가 컸는데, 구름 위를 거닐며 이동하는 모습이나, 저승사자의 옷차림 등 많은 부분이 식상했다. 염라대왕으로 분장한 이정재의 모습이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흥미로웠지만, 민담에 등장하는 산신령 분위기 이상의 특별함은 없었다. 소년 가장이었던 김자홍의 사연이 주는 애절함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자, 반전이었으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동원해서 주는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김자홍은 가족과 동반자살을 감행했던 비극적 인물이었다. 어린 동생과 시력을 상실한 어머니의 병원비를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죄책감으로 평생을 지옥 같은 생활을 자처하였다. 밤낮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았고 주기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처럼 꾸민 편지를 써서 어머님께 보내드렸다. 소방관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으나, 10여 년 동생과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김자홍이 환생에 대한 열망에 집착하는 건 어머니 때문이다. 용서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귀인으로 알았던 김자홍의 죄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관객은 눈물 콧물을 섞어 몰입도가 높아진다.(나는 왠지 지루했다.) 소년가장, 병든 어머니, 어린 동생,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 절망적 상황에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렇게 이해하고 싶었다.) 동생이 군대에서 억울하게 죽어서 요괴가 되는 장면까지 사건은 복잡다기하게 펼쳐진다. 김자홍 집안의 사연을 부각시키면서 군대의 의문사 문제를 끼워 넣은 설정이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데 기여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영화의 완성도와 관객의 감동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

죄와 벌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보면서 자꾸 그 소설이 오버랩되었던 건 같은 제목 때문만은 아니다. 가난한 러시아 청년 라스코르니코프가 살인을 저지른 후, 가족을 위해 몸을 파는 여인, 소냐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찾는 설정과 2018년 한국의 김자홍이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보여주는 구원의 주제가 지닌 보편적 모성 이미지때문이다.

나의 삶을 죄와 벌로 심판받는다면 오늘 이 순간 그 주체는 염라대왕도 아니고, 저승사자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절대자나 모성에 기대지 않는 구원의 가능성을 찾을 때까지 헤매야 하는 이승세계. ‘소냐어머니처럼 지금 당장 끈끈하게 연결된 구원의 끈이 부재한다면 어쩌면 내가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2018년 개봉된 신과 함께2 인과 연-에서 구원의 신파적 눈물 대신 천 년 전의 업보가 발목을 잡는다. 업보는 스스로 갚아야 하는 것, 환생의 열망이 업보와 관련된, 인연 때문인데 갈 길이 멀다.

(2017 제작, 한국, 김용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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