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를 생태도시의 메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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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를 생태도시의 메카로'
  • 조성일 참여연대 이사장
  • 승인 2021.02.0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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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서문  사진=공주시
▲ 공산성 서문 사진=공주시

미증유의 시대다.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걱정이다. 주위에 낙오자가 없도록 서로 마음을 써주면 좋겠다.

다같이 받는 고통은 아무리 커도 견딜 만하고 혼자 받는 고통은 아무리 사소해도 힘들다. 세상이 평등해야 하는 까닭이다. 평등은 인간이 끝내 인간이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내내 드는 생각이다. 정녕 코로나 19는 악마의 피조물인가? 아니라면 신은 왜 코로나 19를 세상에 내었는가? 그리고 인류의 문명은 항상 선한 의지에서 발현되는가? 인류의 번영과 안락에 공헌한 물질문명이 인간 이외의 생명체에게는 야만의 얼굴은 아니었을까? 그러하다면 우리의 욕망은 어디까지가 정당한 것인가?

사스, 메르스, 코로나 19, 점점 주기는 짧아지고 기간은 길고 독해지는 이 낯선 생명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의학과 생물학이 아닌 철학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살 것인가?

공주에 사람이 점점 준다고 걱정들이 많다. 급기야 소멸할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왔고 걱정 끝에 나오는 말은 늘 기업유치와 국책기관 이전이다. 이는 세계의 모든 국가와 지방정부가 기도문 외우듯 하는 말이다.

큰 국제기구나 정부기관 나아가 더 큰 기업이 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세상만물은 인과를 떠나 존재할 수 없고 만물을 두고 다투는 세상사는 만물의 조건을 떠나 이루어 질 수 없다. 농부가 토질을 알 듯 기업인은 기업의 맞춤한 입지조건을 안다. 오라해서 오지 않고 가라해서 가지 않는다. 오직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당연하다. 기업은 친구따라 강남가지 않는다.

 

무역이론에 비교우위라는 것이 있다. 각자가 조건상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그 결과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 공동선이라는 것이다. 이는 도시 경쟁력에도 해당한다. 공주에서 기업은 보완재이지 대체제가 아니다. 로마가 멘체스터가 될 수 없는 이치다. 그렇다 하여 관심을 두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응당 백방으로 애는 쓰되 우선은 블루오션, 즉 구체적으로 공주이기에 가능한 가치를 만들어가자는 이야기다.

공주의 미래는 현재에 달려 있지 과거 백제에 있지 않다. 그러나 백제고도라는 문화적 위상은 공주 제일의 자산이다. 이 자산이 훌륭한 가치를 지니려면 ‘오래된 것은 오래된 것이지 헌 것이 아니며 오래된 것일수록 귀하다’는 생각만 남겨두고 공주를 백제스럽게 해야된다는 생각은 베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미래로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주가 조악스럽고 억지스럽고 생뚱맞다. 가야할 곳은 생태도시다.

▲ 공산성 성문교대식 장면 사진=공주시
▲ 공산성 성문교대식 장면 사진=공주시

고도와 생태의 조화는 공주를 단순 관광지가 아닌 누구라도 살고 싶은 매력 있는 고장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확신한다. 하나의 이름 안에는 여러 구성요소가 있다.

A가 있다. 그가 누구의 아버지로 불릴 때와 누구의 남편으로 불릴 때는 각기 다른 요소 즉 다른 기억과 이야기가 따라온다. 하여 둘은 서로 다른 이미지로 나타난다. 공주도 그러하다. 그간에는 민족과 국가라는 근대적 이념의 토대 위에서 백제 고도, 조선 감영, 도청 소재지, 그리고 교육도시라는 국가행정체계적 요소가 공주의 면목이었고 1980년대까지만 하여도 작지만 주요한 도시로 그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교육환경 변화로 위상과 활력이 급격히 줄었다. 세상의 흐름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바람과 같은 것, 아쉬울 것도 없다.

세상은 이미 변곡점에 도달했거나 돌았다. 국가에서 시민사회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개발에서 자연순응으로. 효율에서 가치로, 이는 거역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다. 생태는 이념이 아니다. 인간 이전에 한 명체로서의 마땅한 도리다. 이제 공주가 새로운 면목을 드러낼 때다. 자연환경의 요소를 드러내어 생태계 안에 고도가 숨쉬는 공주를 설계할 때다. 공주를 생태도시의 메카로 만들 수 있는 조건은 차고 넘치게 갖추고 있다.

우선 해뜨는 동쪽으로는 석장리가 있고 반대편 해지는 서쪽으로는 유구마곡이 있다. 예사롭지 않다. 석장리가 어디인가? 까마득한 데서도 더 아득한 시절, 우리가 구석기 시대라 부르는 그 시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살 터를 찾아 지세를 살피며 강줄기를 따라 내려오다 마침내 이르렀으니 그 곳이 석장리다. 강이 흐르고 양지바른 곳이야 한반도 강 남쪽바라기면 많고 많을 터인데 왜 하필 석장리였을까? 우연이 아니다.

허공 중의 새도 둥지를 틀 때는 우선 안전한 곳을 찾는데 하물며 땅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임에야 안택이 가장 중요한 생존조건 아니겠는가? 재해가 없어 걱정 없이 살만한 곳, 짐작컨대 그 양반들에게는 지금 우리에게는 없는 천기를 감응하는 촉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때때로 그 양반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 시절에도 첫눈이 내리고 개나리 노랗게 피었겠지, 그랬을까? 그이들도 지독한 사랑을 했고 때로 삶이 무상하기도 했을테지. 우리처럼 갈급하기도 했을까? 그 시절과 지금 무한한 우주의 시간대에서 보면 한점이다. 그이들은 지금 우리의 옛사람이다. 무지하게 혹은 무슨 구경거리 쯤으로 대할 일이 아니다. 석장리, 시멘트 걷어내고 원초성을 살려 성찰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 일이다.

조선 인문지리의 정수 10승지 중 하나인 유구 마곡은 또 어디인가? 고난의 길을 가는 이나 삶이 위태로운 이가 찾아들면 아늑하게 위안을 느끼고 기운을 추스릴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 10승지다. 해월, 김구선생 등이 그저 숨어서 한 목숨 부지하고자 찾았겠는가? 멀게는 천주교 박해시절 교인들이 수리치골로 피하여 우리나라 최초 성모회를 열었고 가깝게는 해방 후 혼란을 피해 북에서 내려온 주민들이 유구에 둥지를 틀고 남한의 방직산업을 크게 일으키지 않았는가?

공주 살고자 오면 석장리의 기운으로 안전하게 울타리가 되어주고 쫓겨오면 유마양수지간의 기운으로 둥지가 되어 기운을 돋워주는 살기 좋은 터의 알파요 오메가다.

공주, 수만 년의 두께가 있고 도심 어디서건 몇 걸음이면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천을 만나고 또 몇 걸음 보태면 옛 산성을 끼고 동서를 흐르는 큰 강을 만난다.

이곳에서 가장 먼 저곳까지 동서로는 시어골에서 국고개까지 남북으로 금학동 지막골에서 신관동까지 걸어서는 두어 시간이면 족하고 자전거로는 30분이면 못 갈 데가 없다. 걷거나 자전거로 일상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도심을 막 벗어나면 중악단이 있는 명산 계룡산이 있고 춘마곡 추갑사 하동학 아름다운 큰 사찰이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철따라 꽃이 예쁘니 단풍이 예쁘니 한가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도심 사방으로는 농촌이 둘러싸고 있어 농촌과 교감하며 삶을 설계할 수 있다. 기후변화가 자못 심각하다. 세계 곡물시장을 몇몇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구조에서 식량자급이 취약한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비상시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른다. 내년일지도 후년일지도 모른다. 내일을 모르는 우리 인생이야 조짐없이 불시에 오지만 식량은 아니다. 여러 징후들이 심상치 않다. 그런 날이 오지 말아야 되겠고 오지 않는다해도 내가 먹는 쌀이 어디서 누가 지은 것인지 알고 먹는, 말 그대로 상거래가 아닌 인간관계속에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공주시민은 누구라도 그리고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 공주의 면목을 생태도시로 전환하기 위한 상징적 공간 즉, 공산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전에 먼저 한 시절을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다. 이러한 시절이 있었다.

콩알 하나 심는 일부터 집 짓는 일까지 모두 사람 손으로 하였으니 일은 더디었다. 더디었지만 때를 놓치는 법이 없고 못하는 일 또한 없었다. 길은 산따라 물따라 내었으니 굽이 굽이 돌고 돌아 멀기도 멀었으나 때에 늦지 않았고 못가는데 또한 없었다. 나무 베는 소리는 벌새 소리보다 크지 않았고 소구루마 소리는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보다 크지 않고 풀 베는 소리는 배암이 기어가는 소리보다 크지 않았다.

참깨 터는 소리는 구구구 저문 저녁 둥지로 돌아가는 비둘기 소리보다 크지 않았다. 그 시절 신역은 고되고 가난하였다. 가난하여 곡절도 많았다. 추웠고 배가 고팠다. 그래도 살만은 하였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참으면 되었고 해야 할 일은 하면 되었고 바래도 소용없는 일은 바래지 않으면 되었다. 입성은 남루하고 살림은 누추하였다. 하였으나 어른들은 자존감을 잃지 않았고 아이들은 인사성이 밝았다.

어른들은 장날이면 풀먹인 옷에 흰 고무신을 신고 길을 나섰고 아이들은 장에 간 어른들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이웃 간에 권리와 의무가 아닌 인정과 염치로 살았다.

자고 나면 어제가 옛일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어제 일은 희미한데 그 시절은 더욱 또렷하니 무슨 까닭인가?
▲ 공산성 가옥 사진=김혜식 작가
▲ 공산성 가옥 사진=김혜식 작가

괭이 갈퀴 나무지게 지게바작 삼태기 목도 벽채 자귀 대패 손수레 소구루마 등이 박물관 같은 박제된 공간이 아닌 하늘과 햇빛과 바람과 풀벌레 소리가 있는 곳에서 흙을 나르고 돌을 쌓고 길을 고치고 풀을 베고 집을 고치는데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 있다면, 더하여 그곳이 큰 길에서 살짝 비켜선 얕으막한 언덕을 넘으면 옛 산성이 배암처럼 길게 늘어있고 성벽 아래로는 강물이 반짝거리는 바로 공산성이라면 어떻겠는가? 공산성이 지금은 성벽 위며 길이 붉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다. 옛 산성과 시멘트라니 참 어색하다. 그 무모함에 마음이 불편하다.

산성이 축조된 백제시대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까지는 거슬러 올라가 그때의 방식으로 유지 관리하며 세세생생 이어가는 것이 고도에 사는 시민의 책무이자 문화적 자긍이기도 하다. 거슬러 오를 것도 없다.

바로 전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성안으로 노새 구루마가 넘나들었으니. 성안마을 약 30가구 중 세 집이 마소구루마를 생업으로 삼고 살았는데 공산성 밑에 기와공장이 있던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기계문명사에서 사람이 고안해낸 물건 중 사람의 노고를 가장 크게 덜어준 것은 단연 수레바퀴가 아닐까 싶다.

수레가 있기 전과 후는 증기기관이 있기 전과 후보다 훨씬 더 큰 변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레는 자동차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수천년을 이 지상 어디에서나 인류와 함께 하고도 그 쓰임이 다하자 다시 땔감으로 돌아가 가뭇없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물건인가? 수레가 가고 자동차가 온 불과 200여년 사이 지구는 독한 신열을 앓고 있으니 속도와 편의를 얻은 대가가 실로 크다. 그렇다하여 수레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편의와 풍요는 기꺼웁게 취하되 때때로 그 시절의 심상으로 지금을 볼 수 있기를, 그리고 공산성을 기계문명이 수레에서 멈춘 공간으로 되돌려 높은 산허리는 자르고 막힌 곳은 뚫으며 거침없이 달리는 광폭한 시대의 신호등으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공산성에 포크레인 및 각종 자동차와 엔진기계를 들이지 않고 사람과 마소의 노고로 자연성을 복원하고 유지하는 것, 그러한 행위, 즉 일 자체가 문화적 행위인 것이다.

 

▲1930년대 배다리 흔적. 사진=공주문화원 제공
▲1930년대 배다리 흔적. 사진=공주문화원 제공

더하여 강나루를 복원하여 금강둔치에서 공산성 안으로 나룻배를 타고 오고 가면 과거와 현대가 일상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낭만적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면 인근 세종시에서도 휴일이나 장날 둔치로 와서 나루를 건너 영은사길로 해서 진남루를 거쳐 산성시장으로 가서 장구경을 하는 휴식 겸한 꽤 괜찮은 나들이 길이 되지 않을까? 시장가는 길목 어귀 쯤에 대장간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선술집은 물론이다. 규모가 좀 되는 도예공방도 좋겠다. 이쯤 해야겠다.

예전에는 살기 좋은 곳을 이를 때 산좋고 물좋고 인심좋은 곳이라 했는데 이는 하나로 통하는 말이다. 산이 좋아야 흘러내린 들이 당연히 넓고 물 또한 풍부하다. 그러니 곡식이 잘 되고 인심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이 교통이고 다음이 청정한 환경인데 둘은 양립할 수 없다. 달리 모순의 시대이겠는가. 그러나 두 조건을 양립하게 할 수 있는 곳이 공주다. 걸어서 두 시간 자전거로 30분은 한 마디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차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상상해보라. 세살바기가 세발자전거를 안심하고 탈 수 있는 보기 좋은 가로수길이 사통팔달 연결되어 있다면 날 좋은 날에 굳이 차 탈 일이 어디 있을까?

큰 바위를 가랑잎으로 덮어도 바위다. 가랑잎 무더기라고 하지 않는다. 생태도시의 면목을 드러내도 공주는 백제고도다.

가랑잎이 바위를 아름답게 하듯 생태의 면목이 백제고도를 한층 돋보이게 할 것이다. 생각도 관성이어서 관점을 바꾸기가 굴러내리는 돌 멈춰 세우기 만큼이나 어려운 줄 알지만 우선 공산성 문제만이라도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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