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 ... "웰컴 투 동막골"
상태바
박명순의 영화이야기 ... "웰컴 투 동막골"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2.05 2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가능한 꿈이라도 좋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 사진=네이버 영화에서
▲영화 웰컴투 동막골. 사진=네이버 영화에서

2010년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었다.

북한 땅을 밟고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순간의 감격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물론 민간인이 아닌 금강산 관광 요원이라는 제한이 있었지만 생애 처음 접한 북한, 그곳의 사람 냄새는 순박했다.

비무장지대를 넘어설 때의 두근거림은 오래 전에 소식을 끊은 먼 일가친척 부엌살림의 닳아진 세월을 대면하듯 마음 한구석이 아련했다. 남의 살림살이 구경하듯 휙휙 지나치는 해외여행의 기분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궁금하고, 측은하고, 철조망을 치고 경계하며 살아야했던 남북 현실이 무거운 감동으로 젖어드는 시간이었다.

북한체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비장한 심경까지 드는 건 분단세대의 감수성이다. 관광하듯 보여주는 곳만 며칠 겪는다 하여 고정관념을 뒤엎을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의 음식을 먹고 잠자리에 누워 체취를 느끼고, 땅과 바람 냄새를 맡으면서 새롭게 북한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컸다. 황석영의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읽었을 때의 경이감과는 완전히 질감이 다르다.

우선 가난했다.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만나며 안쓰럽게 느끼는 심리, 그 우월감을 떨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그 사회를 어떻게 긍정할까에 초점을 맞춰 움직였다.

그래서인지 남녀노소에 사용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품격 있게 느껴졌고, 안내원들의 단정하고 고운 말씨가 마음에 쏙 들었다.

▲사진=네이버 영화에서
▲사진=네이버 영화에서

무한한 기쁨으로 들떠 있는 팔순의 아버지는 금강산을 동네 뒷산이나 계룡산쯤이나 다를 바 없이 무심하게 등반에 열중할 뿐이다.

어쩌면 불가침 성역같은 비장한 감회에 젖어있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게 좋아 보일 수도 있다.

이후 개성에 갈 기회가 생겨서 선죽교(예상보다 너무 좁았던)를 건너보았고, 기념으로 사 온 도자기가 우리 집 유일한 거실 장식품이다.

그 후로도 조금씩이나마 북한과 만나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었다. 2015년 생애 최초 해외 여행지였던 베트남에서 북한식당에 다녀왔던 것도 그렇다.

김치는 맛깔스러웠고 음식은 푸짐했다. 그때가 마지막이었었다. 금강산 관광이 금지되면서 해외에서도 북한식당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2017년 겨울, 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화난 사람들처럼 표정이 굳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젊은 러시아 남자는 총을 멘 나치를 연상시켰고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들조차 조각상처럼 표정이 굳어있었다.

20181월 그곳에서 만난 북한식당 역시 표정이 무거웠다. 러시아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자유롭게 통용되는 식당의 분위기는 일제강점기 비밀협상의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북한사회의 불안함에 대해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혀끝에 감돈다.

20184, 김정은과 문재인이 7센티의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아버지와 아들처럼 무조건 얼싸안고 속내를 나눌 줄을 그때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북한의 경제파산과 요동치는 국제정세가 늘 불안했는데, 핵 포기 선언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을 그때는 짐작조차 어려웠었다.

 

'웰컴 투 동막골'은 분단시대의 아픔과 6·25전쟁의 후유증을 들먹이지 않는다. 비극적 시대의 배경을 생생하게 보여주지만 북한과 남한과 유엔군에게 이데올로그의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는다.

동막골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순수한 사람들이 있었는데이런 식으로 옛날이야기를 하듯 그들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막골은 6·25 전쟁의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고, 민족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환상의 공동체 마을이지만 비무장지대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상상 속에서 꿈꾸는 민족 화해의 공간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연합군까지 불러들여 국토를 총, 전투용 비행기와 대포와 수류탄의 폭발하는 쑥대밭으로 물들여도 건강함, 순수함을 까딱없이 지킬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영화 촬영지가 하필 2018 평창올림픽 개최지역이라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6·25전쟁 와중인 1950년 한반도의 산골마을,

이곳에서는 바깥세상과 무관하게 태평스럽게 농사를 짓고, 마을회의를 하면서 인간의 본심을 잃지 않고 있다. 한강폭파 명령을 수행한 후 자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흘러들어온 국군 소위 표현철과 문상사 일행이 등장한다.

패배한 전투에서 동지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구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인민군 리수화도 마찬가지다. 이 적군의 복장들은 모두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 동막골에서 마주친다. 연합군의 스미스까지 합류한다.

이들의 만남으로 긴장감은 극도로 고조되지만 웃음을 유발한다. 총을 본 적도 없는 동막골 사람들 앞에서 수류탄, , 철모, 무전기 따위의 특수 장비들은 아무런 힘도 못 쓰는 신기한 물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전쟁의 긴장이 동막골까지 덮치고 말았으니. 동막골에 추락한 미군기가 적군에 의해 폭격됐다고 오인한 국군이 마을을 집중 폭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군군, 인민군, 연합군은 힘을 합쳐 동막골을 구하며 스스로를 희생한다.

동막골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순수함과 유쾌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바로 분단시대의 아픔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견한 아름답고 맑은 마음은 이제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꿈도 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동막골 주민들 같은 순수함을 모아 통일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를 앞당겨 보여주는, 불가능한 꿈을 꿀 수 있어서 행복했던 영화였다. 통일 철도를 지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 횡단 열차로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2005 제작, 한국 박배중 감독)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