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우리는 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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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우리는 형제입니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2.14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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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찾아 삼만 리
▲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 사진=네이버 영화
▲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 사진=네이버 영화

좋은 영화란 잔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장면들은 된장국처럼 개운하게 속을 풀어주거나, 커피향 여운이 남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슬프고 무서운 장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장면들을 통하여 잊고 살았던 무지갯빛 하늘의 시선을 선명하게 만난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놓치게 되는 것들, 이를테면, 공기처럼 무심히 잊고 살던 가족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내 안의 숨겨진 보석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 사진=네이버 영화
▲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 사진=네이버 영화

장진· 정혜경 감독의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읽는다.

오감(五感)과 육감(六感)까지 끌어 모아 읽는다. 재회 스토리의 구성으로 전개된 형제의 파란만장한 성장과정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시공을 녹여낸 세월을, 읽는다. '영화를 본다'하지 않고 '읽는다'고 하면 능동적인 해석으로 스크린의 시점이 풍요로워진다.

생활고에 지친 엄마가 형제를 고아원에 맡긴 게 시초다. 이후 30년의 세월이 흘러 미국으로 입양을 간 형(조진웅)우리는 가족입니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동생을 찾아오는 것만 해도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한국에 남은 동생(김성균)은 치매 증상의 엄마와 살고 있었는데, 형제가 상봉하는 TV 녹화장에서 엄마가 사라지는 엉뚱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후 엄마를 찾기 위해 형제가 전국을 헤매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빵 터지는 웃음을 연출한다. 위험천만의 고비마다 터지는 웃음은 일회용 폭소가 아닌, 두터워진 형제애를 지지하는 울타리가 된다. 30년 전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엄마(김영애)는 과거와 현재를 혼동함으로써 슬픈 해학을 유발한다.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 사진=네이버 영화

자식을 고아원에 맡겼던 엄마의 애통함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장면도 특이하다. 기억상실의 장치 속에서 새롭게 떠올리는 모성애가 김영애의 맑은 웃음을 만나 서정적으로 피어났으니. 자식에게 콩깍지가 씌운 엄마의 일편단심은 치매의 질환조차 막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좋은 영화는 문자와는 또 다른 톤과 결로 세상을 안내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뻥뻥 뚫리는 가슴으로 시원했다. 고갈된 영혼에 물기가 흐르듯 막힌 문제가 풀리면서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이다. 나에게 이만큼의 숨통이나마 없었다면 인생이 얼마나 빡빡했을까. 좋은 영화를 만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각설하고,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동네방네 입소문 내고 싶은 그런 작품이다. , 갑자기 그레고리 펙과 톰 크루즈가 열연했던 레인맨이 생각난다. 자폐증의 형과 유산상속에만 관심이 있었던 동생이 잔잔하게 키워내는 형제애는 섬세한 내면의 미묘한 흐름을 천천히 응시한다. 진지하고 개성이 톡톡 튀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담은레인맨의 안정감 있는 구성은 폭소나 눈물 없이도 몰입도가 높은 영화이다.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깨알재미를 찾아보자.

우선 유년의 기억들을 해석해내는 시간들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 흐릿하게 지워진 기억들이 또렷하게 피어오르는 순간들, 영상의 틈새로 남동생들의 개구쟁이 모습이 천천히 다가왔다.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진한 정이 오래된 서랍 속 사진처럼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잊었던 그리움들이다.

영화는 30년 이별을 배경에 깔고 시작한다.

형제의 고아원 안팎 사연을 코믹하게 그려내면서도 눈물샘을 자극한다는데 이 영화의 진가(眞價)가 있다. 우격다짐으로 키워내는 유치찬란하면서도 끈끈한 형제애를 스멀스멀 조명한다. 고아원에 아이를 맡긴 후 가슴아파하는 엄마의 마음도 동시에 보여준다. 치매증상(가끔 정신이 돌아온다)에도 기억의 줄을 단단히 잡고 있는 어린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은 가슴 뭉클하게 엄마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엄마는 성인이 된 아들을 여전히 30년 전 개구쟁이로 대함으로써 지난했던 모자(母子)의 상봉을 유년시절로 돌리는 특별한 장면으로 부각시킨다. 그 드라마틱한 상봉을 위해 병실 앞까지 왔지만 형은 막상 문턱을 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30년이 지난 아들 얼굴을 엄마가 알아보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다. 헤어진 아픔보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이 더한 쓰라림이 될 지도 모른다. 이때 던지는 김영애의 대사가 하이라이트이다.

"니들 또 싸웠나? 괘안타."

두 아들을 끌어안으며 던지는 이 대사, ‘, 이거다절로 탄성이 나왔다. 30년 세월을 뛰어넘는 엄마의 천연덕스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엄마와 이어진 탯줄을 보여주는 듯했다.

형제끼리는 집안에서 늘 싸우지만 밖에 나가는 순간 다른 피붙이들과 방패막을 형성하면서 오히려 우애가 더 돈독해지지 않던가. 유년시절, 집집마다 흔했던 풍경이다. 내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었는데 성격이나 외모나 모든 면에서 천양지차였다. 날마다 죽기 살기로 싸우던 모습. 밖에 나가면 둘이 한편이 되어 또 쌈박질을 하던 모습이 끈끈한 잔영으로 겹친다.

가족영화의 사회역사적 배경은 헤어짐과 만남의 과정에 설득력을 주는 장치가 된다. 이 영화 역시 6·25전쟁 직후 고아원의 생생한 실태, 학대받는 입양아, 고위정치인 장례식과 조의금 봉투, 터미널 도둑 등 다양한 사회 풍자를 시도한다. 특히 형제를 맡긴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봉투를 꺼내 주는 장면은 엄마의 행방을 보여주는 재치 있는 구성이다. 정치권에 대한 풍자와 아들을 향한 모정을 코믹하게 담아내어 통쾌한 웃음을 선물한다.

▲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 사진=네이버 영화

미국 입양 이후 30년 만에 나타난 형은 진정성이 몸에 배어있는 목사의 풍모였다. 고아원에서 도망쳐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무속인으로 자리를 잡은 동생은 형의 진지하고 품격 있는 태도에 적응하기 힘들 만큼 언행이 거칠다. 목사인 형은 무속인의 동생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며 혼란을 느낀다. 좋은 환경에서 엘리트로 성장한 것처럼 비치는 형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입양 이후 동생에게 빚진 마음을 품을 만큼 행복하게 살았던 세월은 아주 짧았다. 양아버지는 사고로 가족(아내와 딸)의 죽음을 겪은 이후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그 원인을 입양한 아들 때문이라며 잔인하게 학대했다. 형은 동생 대신 겪는다는 마음으로 혹독한 세월을 견뎠다. 이후 갱이 되었고 살인사건으로 20년 복역을 하다가 교도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던 것이다. 결혼 이후 피해자의 아들을 입양했는데 불치병으로 골수이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할 때는 영화의 무게중심이 어두운 무거움으로 흐른다.

칼 든 깡패를 제압하는 싸움 실력과 온몸의 문신은 형의 과거를 증명하는 장치가 되고, 형제가 성장과정에서 겪은 아픔을 나누는 거멀못이 된다. 터미널에서 만난 도둑형제조차 구수함으로 녹아나는 가족의 풍경도 있다. 목사와 무속인이라는 직업의 차이나, 한국과 미국이라는 거리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엄마의 장례식을 기독교식 기도와 무당의 굿거리로 화합하면서 둘은 서로를 인정한다. 무속인 동생의 휴대폰에서 터지는 찬송가 벨소리나, 목사인 형의 성경책에 끼워진 부적이 서로를 확인하는 정표가 된다.

영화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불신과 머뭇거림을 털고 우리는 가족입니다서로의 손을 잡아 보라고. 히로카즈 감독 가족영화의 메시지도 이와 동일하지만 편집과 진행은 보다 냉철하다. 현대인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묻는 섬세함 속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듯 세태를 반영한다. 그의 영화로는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등이 있다.

(2014 제작, 한국, 장진·정혜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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