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의 춤에는 함께 비상하는 조력자의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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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의 춤에는 함께 비상하는 조력자의 꿈이 있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2.1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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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 사진=영화네이버에서
▲ 사진=영화네이버에서

빌리는 평범한 소년이다. 아니, 형과 아빠처럼 씩씩하지 못한 소심한 소년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치매기가 있는 할머니를 돌보며 엄마의 부재에 익숙하지 않은 외로운 소년이다. 권투를 배우면 남자다워질 거라는 아빠의 바람대로 체육관에 다니지만 늘 맞기만 하는 권투가 싫다. 하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견뎌내야 할 통과의례로 여기며 고단한 체육관 생활을 감당한다.

▲ 사진=네이버영화
▲ 사진=네이버영화

어쩌면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손바닥에 쥐어진 그 기회를 단단히 붙잡느냐 흘려보내느냐는 간발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 간발의 차이를 우리는 흔히 운명이라고 말한다. 가난한 탄광촌의 빌리에게 뜬금없이 발레와의 만남이 주어진 과정 자체가 그렇다. 체육관을 반으로 나눠서 권투와 발레교실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날 빌리는 체육관에 들어가기 싫어 미적거리다가 우연히 발레교실에 발을 들였고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그날 빌리에게 열린 새로운 세계는 바로 그 기회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 사진=네이버영화
▲ 사진=네이버영화

발레 선생은 동네에서 이상한 여자로 통하는데 막가파 인생처럼 험악하다. 수업 중에도 담배를 피우면서 스파르타식 수업을 진행하는 생활에 찌든 우울한 여성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발레교습을 하고 있지만,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 못지않게 그녀 역시 거칠고 퉁명스럽다. 예쁜 발레복을 입고 기계적으로 손과 발만 움직이는 소녀들에게 불만이 많아 보인다. 예술가의 비전도, 결혼생활의 행복도 잡지 못한 우중충한 인생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녀는 빌리의 내면에서 춤에 대한 꿈틀대는 열정을 볼 줄 아는 전문가임을 입증한다. 강렬하게 꿈을 간직했던 자만이 다른 사람의 내면에 담긴 그 열정을 감지할 수 있는 법이다. 다행히 빌리의 할머니는 손주의 꿈을 지지한다.

광부 일을 하는 아버지와 형이 빌리의 꿈을 무시하자 느릿느릿하게 그러나 설레는 표정으로 말한다.

▲ 사진=네이버영화
▲ 사진=네이버영화

내 꿈은 발레리나였어.”

이 말 한마디가 지렛대의 힘으로 작용한다. 그 후 할머니의 젊음과 꿈은 삶의 품격과 통하는 징검다리가 된다. 꿈을 가졌었다는 것만으로도 할머니의 풋풋한 소녀시절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빌리의 친구 마이클 역시 조력자이다. 여자 옷을 입고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 소년은 빌리에게 깊은 애정을 보이면서 그의 발레 동작을 사랑한다. 춤추는 것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답하는 빌리의 행복한 춤동작이 일시정지 당하는데. 갑자기 체육관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아버지가 등장한 것이다. 빌리는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것을 예견했다는 듯, 피하지 않는 용기를 발휘한다.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버지 앞에서 실력을 보여준 것이다.

넓은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발 소리와 춤 동작, 무반주 발레공연은 아버지에게 충격효과로 작용한다. 빌리는 이제 품 안의 어린아이가 아니고, 확고하게 자신의 길을 정했음을 몸으로 증명해 보인다. 빌리의 진심을 깨달은 아버지는 자식의 꿈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실천한다. 탄광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삶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고,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빌리를 지원했을 거라는 말에 동의한다. 비록 아버지 몰래 발레 교습을 받았지만 빌리는 틈틈이 자신의 의견을 소심하게 전달하고 있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 사진=네이버영화
▲ 사진=네이버영화

빌리가 등장하는 백조의 호수는 남성 무용수 중심으로 재구성된 작품이다. 여성의 부드럽고 우아한 춤동작에 보다 강렬하고 힘찬 선율의 아름다움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빌리가 한 마리 백조처럼 힘차게 허공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동작이다. 이 장면은 결국 빌리의 꿈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열린 결말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빌리의 성공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춤추는 뒷모습을 화려하게 클로즈업한 여운은 우리들의 몫이다. 빌리의 비상하는 춤에는 윌킨스 선생님, 마이클, 아버지와 형 그리고 할머니 등,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꿈을 지니고 살았던 조력자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가족이란 서로에게 조력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가족이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 않은 상황이 훨씬 많은 현실이 문제지만.

(2000 제작, 영국, 스티븐 달드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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