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지막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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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지막골 이야기
  • 이시민 1학년
  • 승인 2021.03.06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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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여자중학교 이시민 1학년
▲지막골 집터 사진=윤여관선생님
▲지막골 집터 사진=윤여관선생님

지금부터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는 공주시 금학동 지막골에 대한, 실제로 그곳에서 나고 자라고 지금도 살고 계신 조성일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이다. 지막골은 공주여자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생태공원수원지로 알려진 바로 그곳인데, 지막골도 위, 아래가 있어서 생태공원이 있는 아랫마을은 큰골, 작은골로 나뉘어 산 위로 올라가는 윗마을에 비하면 사는 형편의 이 다른 대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야기하려는 마을은 윗마을이다. 나는 세상에 나온 지 14년밖에 되지 않은 여중생이다. 60~70년대 이야기는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나이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옛날 옛적에, 지막골 나무꾼이 막걸리 한잔 걸치고 노래를 흥얼대며 집에 가던 시절에.

커피나무의 사장님이신 조성일 선생님은 그리운 시절이라고, 지금 다시 살라고 한다 해도 늘 택하고 싶은 그리운 삶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주변 어른들은 항상,

그때는 진짜 먹고 살기 힘들었지. 너네는 복 받은 거다. 나 때는 하루에 세 끼 챙겨 먹기 힘들었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조성일 선생님도 참 먹고살기 힘들었다고 하셨다. 더군다나 지막골은 공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던 동네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때 태어난 사람들이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셨다.

인류사에서 대한민국에 내 나이로, 50년대, 60년대 태어난 사람들은 정말 복 아닌가 싶어. 그 시절부터 이 시절까지 보고 있으니까. 난 이게 발전이라는 것이 수긍이 안 돼. 그냥 진행일 뿐인 거지. 그 시절에도 그냥 살았거든. 그냥, 살았거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으응?’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루에 세 끼도 못 먹고 산 그 시절이 왜 그리운 걸까? 하고 말이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지막골 이야기를 다 듣기 전엔 나도 그랬다. 말씀을 듣고 나니 그 시절보다 우리가 사는 지금이 훨씬 낫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동네가 있는 산이 주미산인데, 우금티 너머 오곡동 쪽에서 보면 굉장히 큰 산이란 걸 알 수 있어. ‘큰 산 밑에는 먹을 게 있다, 공주에서도 가장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살았어. 가진 것 하나 없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산 거지. 한 스물다섯 채, 여섯 채 정도 있었을 거야. 지금으로 따지면 죄다 무허가 집들인데 그 당시에 그런 개념이 있었겠니. 그냥 살았던 거지. 농토가 있어야 농사라도 지어 먹고 사는데 산골이니까 농사도 못 지었지. 널린 게 나무라 나무를 해다 팔았어. 공주의 나무는 다 지막골에서 나왔어. 그때는 시내 사람들도 나무를 땠지. 제민천 알지? 그 제민천에서 나무를 팔았어. 지금 바흐 있는 언저리, 그리고 한일당 약방 있는 데, 두 군데 나무전이 있었어. 눈이 쌓이면 신발에 새끼 감발 치고 나무 지게를 지고 가는데 나뭇짐이 커서 사람은 안 보여. 나무 지게만 주욱 걸어가는 거여.”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을 휘익 접으시면서 웃음을 터트리셨다. 추억에 젖으신 선생님의 눈동자에 허연 눈 위에 떠 있는 나무 지게가 아른거리는 듯했다.

내 나이인 사람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다 일을 했어. 너희 나이지. 공주교대 알지? 교대 맞은 편에 직조공장들이 있었어. 여자아이들은 거기 다녔고 남자아이들은 주로 양복점, 중국집, 이발소에서 일했지.”

내 나이에 공장에 다녔다니. 말간 얼굴에 하얀 손을 한 내 또래의 친구들을 떠올려 보아도 도저히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 그 시절에 좋은 직업도 있었어. 땜쟁이라고. 양은 냄비 알지? 라면 끓여 먹는 그 냄비. 냄비를 쓰다 보면 구멍이 나거든. 구멍을 때워주는 사람을 땜쟁이라고 불렀어. 나무 상자에 도구를 실어서 돌아다녔는데, 좋은 직업이었지. 전문직이었어. 또 한약방에 가면, 한약 첩이라고 아니? 한약 첩 싸매는 끈을 칡으로 만들거든. 지막골에 널린 게 칡 아니겠냐? 그 칡넝쿨을 물에 담가 풀어서 하나하나 꼬아서 실타래 뭉텅이처럼 만들어 한약방에 팔았지.”

땜장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조성일 선생님과 국어 선생님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셨다. 나는 두 분이 웃으시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언가를 같이 추억하고 공유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60년대, 70년대 사람들은 양은 냄비도 때워가며 쓰고 한약을 묶는 끈도 칡으로 만들어 썼다는 것이 선생님께서 하시고 싶은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삶이 불가능해진 지금, 칡끈과 전문직 땜장이의 이야기는 신비롭기까지 했다. 다시 선생님은 나무장수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저녁나절에 나무를 판 돈으로 고무신도 사고, 막걸리도 사고, 생선도 사고, 하는데 지금은 생선 손질을 다 해서 용기에 담아 주잖아? 예전에는 그냥 생선을 통째로 주는 거야. 비닐도 없고 쇼핑백, 가방은 더더욱 없었는데 어떻게 들고 갔겠어?”

커피나무에서 함께 인터뷰를 한 현주가 지게에 매달고 갔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렇지. 나무 지게에 대롱대롱 매달고 걸어가는 거지. 아이들은 어른들이 올 때 뭐 사 오시나,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고. 막걸리 한잔 걸치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생선을 매달고 가는 그 기분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마스크에 가려 있었지만, 선생님이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퇴근할 때 치킨을 사 오는 우리 아빠를 떠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아빠들의 마음은 똑같나 보다.

근데 나무를 못 판 사람도 있었어. 내 친구 아버지도 제민천까지 갔는데 못 판 거야. 나무를 다시 지고 와서 지게를 뒤로 젖히고 마당에 나무를 넘기면서 한숨을 푹 쉬셨대. 그 친구는 아직도 그 한숨이 기억에 남아있다고 해. , 그 심정이 어땠을까 싶어.”

그 심정이 어땠을까, 나도 어렴풋이 짐작해 보았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무게가 담긴 한숨이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아 몸이 흠칫 떨렸다. 잠깐의 상상에 미끄러지는 볼펜을 다시 꽉 쥐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이건 예전에는 다 그랬던 거지만 항상 뭘 씻을 때는 냇물에 가서 했어. 흐르는 물에 빨래도 하고 목욕도 했지. 여름만 되면 위로 올라가서 아낙들이 목욕을 하고, 겨울에는 얼음을 깨서 빨래를 했지.”

지금은 수도만 틀면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데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려면 얼마나 추웠을까. 괜히 손이 찌릿해 핫초코를 한 입 들이켰다. 뒤늦게 난 참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안의 단맛이 사라지고 쌉싸래한 뒷맛이 느껴졌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말씀을 다시 시작하면서 선생님의 눈은 벌써 웃고 계셨다.

옛날에는 군대에 안 가거나 탈영을 하면 헌병이 잡으러 왔거든. 근데 지막골 청년이 휴가를 나왔다가 안 돌아간 거야. 그래서 헌병들이 잡으러 왔지. 그때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지프차 소리가 덜덜덜 들리면 아, 잡으러 왔구나. 하고 산으로 홀랑 올라가 버렸어. 그럼 어떻게 잡아. 산에서 찾기 어렵지. 그렇게 몇 번을 잡으러 왔다가 둘러보니까 집안 형편이 너무 안 좋은 거야. 공주에서 제일 어려운 마을이었다고 했잖아. 형편이 너무 어렵다, 이 사람은 집에 있어야겠다, 하고 상부에 보고해서 나라에서 그냥 풀어줬어.”

허술하네, 허술한 게 참 좋다.”

하고 국어 선생님께서 우릴 보고 웃으셨다. 얼마나 가난했으면 풀어주었을까.

인정이 통했던 거지. 그래서 그 엄마가 자기 아들 풀어줘서 고맙다고 떡을 두 말이나 해서 머리에 이고 강원도 부대까지 가서 돌렸어.”

다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번에는 나도 웃었다. 나라에서 마을 형편이 너무 안 좋다고 그냥 풀어주고, 그 엄마가 부대에 고맙다고 강원도까지 떡을 이고 가시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조금 전 국어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되었다.

허술하네. 허술한 게 참 좋다.’

, 지막골에 나무 장사를 하던 형제가 노래를 그렇게 잘했어. 정식으로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나무를 팔고 막걸리 한잔 걸치면 노래를 흥얼거렸거든. 근데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는데 그 나무장수 형제 중에 형이 나오는 거야! 노래를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잘하는 줄 몰랐어.”

다시 국어 선생님이 눈을 접으며 웃으셨다. 조성일 선생님도 웃으셨다. 이제 선생님의 이야기도 거의 끝으로 접어들었다.

그 마을 제일 끝에 사는 분이 계셨거든. 만재 아저씨라고. 난 그분이 마을에 제일 처음 오신 분이라고 짐작하고 있어. 확실하진 않지만, 짐작만 할 뿐이지. 어쨌든 그분이 뭐랄까, 도인 같은 분이었어. 아이들하고 둠벙에서 고기 잡고 수영하러 올라가 보면 만재 아저씨가 큰 너럭바위에 이렇게 가만히 앉아 계셨어. 아저씨네 방엔 책이 많이 쌓여있었어. 지막골에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만재 아저씨가 그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쳤지.”

왜 선생님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마을은 만드는 게 아니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이 인상 깊었다. 지막골 산골짜기에 사람들이 솥단지 하나 지게에 얹고 식구들의 손을 잡고 들어오면 먼저 와서 살던 사람들이 다 모여서 흔한 나무와 돌과 흙으로 같이 집을 지어줬다고 한다. 벽지는 물론 없고 장판이랄 것도 없이 부들을 엮어 방바닥에 깔았지만, 땔감이 많으니 겨울에 방이 뜨끈뜨끈한 집에서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지어진 스물다섯 채의 집들은 다 무허가였다. 정말 없는 사람들에겐 복지 개념이랄 것도 없던 그때가 지금보다 더 나았다고 선생님은 생각하셨다. 다 같이 가난하니 서로의 존재가 다 소중했을 것이다. 무시당하는 사람이 없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서 살았을 것이다. 지금의 복지는 가난한 사람을 따로 구별해서 분리한다. 이웃과의 평등한 오고 감도 불가능하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코로나 이야기를 하셨다. 현주와 나도 선생님들도 마스크를 끼고 앉아 한 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눈 끝이기도 했다.

생명적 관점에서 보면 문명이라고 하는 건 문명이 아니라 야만의 결과야.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할 때는 서로 깃들어 살라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 텐데, 인간은 자꾸 무언가를 건드려. 막혀있으면 뚫고, 터널이 그렇지. 높은 것은 까 내리고, 낮은 곳은 메꾸고, 바다나 산꼭대기나 살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집 짓고. 전염병도 마찬가지지. 코로나도, 페스트도. 인간이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똥거름도 말이야, 가만히 놔두면 굳어. 냄새도 안 나. 근데 그걸 건드리면 냄새도 나고 그러는 거야.”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한참 생각했다. 과학적으로 발전을 이루고 우리의 삶이 편리해진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진 게 없어도 그 안에서 서로 돕고 이웃의 집을 지어주고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며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살았다는 지막골 사람들의 삶이 가난해서 불행했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편해진 대신 사람들이 사는 곳은 회복이 안 될 만큼 파괴되고 있고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더 버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의 마음은 대부분 외롭고 가난하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도 이웃에 기대어 다 살았는데, 깃들어 살지 못하고 산이든 강이든 건드려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어버린 우리는 정말 행복할까?

커피나무에서 나오니 찬바람이 고막을 때렸다. 나는 원래 공상에 잘 빠지는 편이라 걸어가는 내내 선생님의 말씀과 지막골에 대해 생각하며 글 구상을 해보았다. 찬바람에 숨을 내쉬자 마스크 때문에 안경에 김이 확 서렸다. 나무 지게를 지고 저만치 가는 나무장수를 그려보았다. 다시 코로 숨을 내뱉자 눈 덮인 지막골이 보이는 듯했다. ! 하고 울리는 경적에 정신을 차리고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러자 나의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신호등, 전봇대, 건물들, 콘크리트 바닥, 수많은 차. 걸음을 멈추니 차 하나가 쌩하고 지나갔다. 문득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시절이 그립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사진=공주시
▲지막골 사람들이 떠난 뒤, 금학동 생태공원 사진=공주시

                                 

 

                                           출처: 작은숲 출판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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