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정지용의 무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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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정지용의 무어래요?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3.2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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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래요?

한고개 넘어 우리집.

앞문으로 오시지는 말고

▲김명수 시인 사진=시아북
▲김명수 시인 사진=시아북

 

뒤ㅅ동산 새이ㅅ길로 오십쇼

늦은 봄날

복사꽃 연분홍 이슬비가 나리시거든

뒤ㅅ동산 새이ㅅ길로 오십쇼

바람 피해 오시는 이처럼 들레시면

누가 무어래요?

 

 

요즈음 나이든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는다.“ 세월 참 빠르지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십대 때는 참 더디게 가는 것 같았었는데 이십대 때부터는 왜 그렇게 빠른지, 그리고 삼십 지나 사오십부터는 고속도로요 육십 칠십이 되니까 화살 같이 빠르게 갑니다. ”등이다. 정말 그러고 보니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엊그제까지 날씨가 추워서 옷깃을 여미고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 했는데 어느 새 봄이다.

산책길 비탈길에 복수초가 노랗게 피고 집 언덕에 노오란 산수유가 병아리 주둥이 내밀 듯 다가오더니 진달래꽃이 금 새 병풍처럼 둘러 쳐지고 아직도 진달래꽃들이 만개해 있는데 가는 곳마다 벚꽃이 하얗게 바다를 이루고 있다. 바로 그 옆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목련은 벌써 지고 있고 길옆에는 여전이 노오란 민들레꽃이 손을 흔들며 봄을 맞는다. 이렇게 봄은 우리들 주변에서 갖가지 꽃들을 모셔오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 새 꽃 이불 속에 둘러 싸여 내 옷과 몸까지 모두 꽃이 되어 혹시 내 정신까지 꽃의 혼령 속에 빠져있는 듯하다. 누군가 벚꽃나무 밑을 지나며 하는 말을 들었다. 한마디로 봄은 꽃에 미친계절이다.라고.


이렇듯 봄은 누구에게나 꽃을 한 아름씩 한 짐씩 한 덩어리씩 안겨 준다.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누구 든 외면하지 않고 누구 든 사랑으로 문을 열어주는데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반겨 찾아오는 건 벌과 나비다. 언 듯 보면 꽃들이 인심 좋아 가슴 팎을 열어젖히고 마음껏 내주는 것 같지만 그들은 틈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고유한 향기로 그들을 유혹하고 한 곳에서 배부르지 못하게 조금씩만 꿀을 내주고 대신 이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며 배를 채우도록 유도한다.

그러는 사이 어느 새 발끝에 묻힌 꽃가루로 그들만의 수정을 도와주어 꽃들은 꿀을 내준 대신에 탐스런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말이 없어도 나름대로 독특한 삶의 방식으로 그들의 종족을 잇게 하고 번식시킨다. 그러고 보면 아주 작은 꽃들이지만 그들만의 삶의 방식에 그들만의 종족 번식 방법에 경탄을 금할 수 가 없다. 겉으로 연약하고 예쁘기만 한 꽃들이 꽃잎을 팔랑거리며 내뿜는 향기에 유혹되는 벌과 나비, 인간 세계에서 흔히 말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와 비슷하다면 말이 되는 걸까? 아무튼 저 아름다운 봄꽃들이 몰려오면서 주변은 온통 화사한 병풍을 두른 것 같아 사람들 마음도 치유되는 것 같고 그래서 꽃을 찾는 사람들 또한 행복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봄님은 참 맘도 좋으시고 넉넉하시고 풍요롭고 이상적이시다. 내 생에 봄이 없이 그냥 여름으로 뛰어 넘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아니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이렇듯 봄은 아름답고 사랑스런 계절이다. 봄은 화사하고 행복한 계절이다. 봄은 다시 시작하고 싶은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는 역동적인 계절임에 틀림없다. 이런 봄을 정지용 시인은 앞문으로 오지 말고 뒷동산 사잇길로 오라했다. 그건 아마도 앞문으로 들어오면 한 번에 확 들어 왔으니 갈 때 또한 한 번에 확 가버릴 수도 있기에 오지 않는 듯 오게, 나도 모르게, 은연중 봄을 느낄 수 있게 뒷문으로 조용히 왔으면 좋겠다고 표현한 게 아닐까?

그것도 이슬비를 촉촉이 맞으며 뒷동산 사잇길로 천천이 오라고 그래야 봄다운 봄을 느낄 것 아니냐의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바람을 피해 오는 사람처럼 살짝 둘러서 오시면 누가 뭐라 하겠냐고, 봄이 천천이 오고 천천이 간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고, 그러니까 천천이 왔다가 천천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정지용 시인 역시 수십 번의 봄을 맞고 보내는 동안 세월의 빠름을 느꼈을 것이다. 시간을 맞이하는 느낌은 옛날사람이나 현대인이나 비슷한 것이 아닐까? 정말 시간이 빨리 오고 빨리 가는 것에 대하여 옛사람이나 지금사람이나 맞이하는 심정은 비슷하리라. 그래서 이 시간이 잠재되어 있는 싯 귀에서 정지용 시인이나 독자들이나 받아들이는 감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시간이여 정지 할 수 있으면 정지 하라, 잠간만이라도, 한 순간 만이라도,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욕심일 뿐, 시간을 정지해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서 한 치도 게을리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먼 훗날 시간을 되돌아 볼 때 우리들이 살았던 한 인생이 아름다웠다 라고 하지 않을까? 봄에 관한 짧은 시 한 편 이지만 보내는 시간이 몹시 안타깝고 안쓰러운 모습으로 다가 오는 것 같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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