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코미디 영화와 살인의 몽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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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코미디 영화와 살인의 몽타주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4.1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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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가족』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폭염과 땡볕더위에 시달리는 날들이 연일 이어진다. 열대야로 잠을 설치면서 멋진 휴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면 영화 피서는 어떨까? 필자는 냉방이 오싹한 극장 객석에서 귀신영화 보는 것을 최고의 피서로 친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영화관을 찾기는 쉽지 않다. 벼르고 별러서 날을 잡아도 들쑥날쑥 발생하는 일들이 많아서 대부분 허사가 된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는다. 이맘때면 TV가 제구실을 잘 하는 경우가 있는데 명화극장, 한국영화특선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 TV를 켰다. 초저녁잠에 빠지면 늦은 아침까지 길고 깊게 자는 필자가 잠을 설쳤다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다. TV에서 조용한 가족예고편이 스치듯 지나갔는데 이 영화가 잠을 못 자게 끌어당겼다는 말이 더 현실적이다. 그러니까 조용한 가족은 필자를 낯선 영화의 길로 인도한 고마운 작품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가 주는 재미는 소품과 어울리는 배우들의 표정연기만으로도 짝꿍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절묘한 긴장감이 넘쳤다. 잊을 수 없는 충격과 웃음을 선물한 영화였다.

신혼 초 비디오를 들여놓을 때는 아들딸의 영어 교육을 앞세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상자료를 구입했지만 정작 그 효과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결국 비디오 기기는 오락용 만화영화를 대여해서 시간 때우기로 활용한 것이 전부였다. 그때까지 필자는 TV나 영화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소설책보다 더 재미있는 오락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책바보였다. ‘형광등이라는 별명처럼 가족들이 비디오를 심드렁하게 대할 때쯤 뒤늦게 비디오 촉이 발동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그때 만난 영화가 가위손, 식스센스, 아제아제 바라아제, 씨받이, 수탉등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다. 방화, 외화 가리지 않고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하루에 두세 개씩 대여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아끼면서 계절을 몰입해서 본 비디오 개수는 100여 개가 넘었을 것이다. 그때 조용한 가족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 참 묘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간간 터진 뒤 이렇게 웃어도 되나?’ 뒤통수가 불편했다. 그렇다. 조용한 가족은 불편한 영화였다. 장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남는 탁월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가족들이 합심하여 저지르는 살인영화라니 불순하고 꺼림칙하지 않은가. 학생들에게 권유할 수 없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이미 많은 학생들이 재미있게 보았다니 할 말이 없지만.)

왜 누가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거지? 그런 의문으로 남았던 영화가 이후 20여년 뇌리에 각인되었던 건 그만큼 불가항력의 강렬함 때문이다. 이후 잘 만들어진 오락 스릴러 가운데 이 작품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걸 보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주는 강렬함과 재미는 공포와 엽기적 살인자체가 아니다. 행복과 불행의 씨앗이 우연과 충동 속에서 싹 트는 일상성의 디테일이 주는 리얼리티이다. 또한 살인과 시체의 무감각 때문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가족이 운영하는 산장의 첫 손님 그의 자살 때문에 생계에 위협을 느낀 박인환(아버지)은 사망신고 대신 매장을 선택한다. 남녀동반 자살을 한 두 번째 손님은 가족들의 도움까지 받아 매장하는데 중간에 죽었던 남자가 살아나자 깜짝 놀라 가지고 있던 삽과 곡괭이를 휘두른다. 불법매장에 살인까지 저질렀으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어쩔 수 없이 그 다리를 불태운다. 이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매장하게 된다. 자살과 살인, 밤중에 이루어지는 비밀스러운 매장 작업은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산장의 경관은 평화롭고 음악은 무겁게 흐른다. 그 와중에 도로계획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살인이 들킬까 봐 시체를 파서 다시 매장하는 일련의 장면과 대사, 배우들의 연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신선하고 코믹하다. 송강호, 최민식, 나문희 등 출연진의 연기력이 한몫 거들고 있다. 또한 그 신선함은 살인을 원한관계나 사이코패스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일상적 평범함과 결부시켰다는 점이다. 살인을 공포나 스릴러적 관점이 아닌 일상적 웃음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한 불편함은 살인조차 장난 웃음으로 일관한다는 분위기에 공감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그러면서 영화 보는 시간과 예배드리는 시간과 도서관에서 공부 하는 시간은 전혀 다른 시간임을 자각했다. 친구와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시간과 비어홀에서 맥주를 마시는 시간 또한 전혀 다른 색채의 시간이다.

우리가 영화 관람에서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지식과 교훈을 위해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목적의식이 강한 계몽영화나, 종교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주장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뜻한 위로와 짧은 휴식의 평안함을 영화에 기대한다. 빵 터지는 웃음과 시원한 후련함이 함께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관객 천만 영화는 웃음과 카타르시스의 계산된 기획 속에서 시대적 흐름과 합체하여 탄생하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대개 만족이 낮아진다. 그래서 영화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거는 기대감이 턱도 없이 거대한 것이 나쁘지만은 않은 풍조다. 간혹 기대 이상 충만감으로 몸을 떨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실망하면서 그런 영화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자학에 빠지기도 한다.

소문난 맛집을 멀리서 힘겹게 찾아갔을 때 실망한 경험이 많았던 이유는 기대가 컸던 것도 한 몫 한다. 그러니까 기대라는 건 허기와 반대되는 속성을 발휘할 때가 많다. 허기는 식욕을 채우기 위한 마중물이지만 기대는 식욕 이상의 만족감을 채워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들은 만족감을 얻기 어렵다. 그런 이상주의자들을 위해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말을 준비한다. 지나친 기대감으로 실망하지 말고 작은 기쁨을 누리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에게 일상의 순간은 김빠진 맥주처럼 무미건조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영화를 평할 때는 다양한 기대를 담아야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철저히 즐겨야 한다. 스크린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다.

조용한 가족을 보면서 불편한 이유 몇 가지가 있다.

산장의 가족들은 선량하지만 욕망이 차단당한 존재들이다. 생활능력 결핍자들인 이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족의 모습과 닮은꼴이다. 단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잘 풀리지 않는 것이다. 산장에 들어온 첫 손님이 어쩌다가 운이 나쁘게 자살을 했을 뿐인데, 신고 대신 매장을 선택하면서 운명은 점차 겉잡을 수없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블랙코미디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나 잔혹한 사회에 대해 풍자하면서 그렇게 반어적 웃음을 선물한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가족이기주의는 극단적 양상이지만 우리들의 자화상임에 분명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정서는 차라리 사랑스러운 지도 모른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엽기적이다. 친부, 친모가 저지른 아동학대, 친부나 친모를 향한 친족살해의 사연은 자세히 들여다볼 용기조차 내기 어렵다.

비극적 가족의 사연은 이제 더 이상 울고 짜는 스크린이 아니다. 고령화 가족이나 장수상회처럼 말이다.(이 영화들은 보편적 감성을 자극하고 평범하게 가족담론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영화이다.) 그러니 터지는 웃음을 억제할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그냥 생각 없이 웃어주면 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더구나 블랙코미디 영화라면 웃는 예의를 구태여 거절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조용한 가족,김지운 감독 1998 제작, 한국)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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