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 찾아 돌아왔는데 숲이 통째로 죽었다"…태안군 해안 덮친 소나무재선충, 주민들 '망연자실'

푸른 소나무 숲 사라지고 고사목만 빼곡…주민 "2년 만에 산이 통째로 변했다" 국립공원 관리·방제 논란 확산…감염목 처리·사유지 규제 개선 요구도 거세

2026-08-05     안연옥 기자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리 산 89 일원 바닷가 해송과 몽산1리 야산 곳곳에 빽빽하게 서 있는 소나무와 노송들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돼 푸른빛을 잃고 붉게 말라버려 ‘녹색 죽음’ 의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사진-태안군프레스협회(편집 안연옥 기자)

"소나무 냄새가 좋아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이제는 솔향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충남 태안군 남면 망상1리. 한때 해안을 따라 짙은 솔향을 품었던 소나무 숲은 이제 갈색으로 변한 고사목과 잎이 모두 떨어진 나무들만 남았다.

일부는 이미 벌목돼 도로변과 산림 가장자리에 쌓여 있었고, 살아 있는 소나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는 광범위했다. ▶본보 7월 30·31일, 8월 3일 사회면 참고

현장을 다시 찾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잘려나간 나무는 그대로 방치돼 있었고, 산 전체는 회색 줄기만 드러낸 채 생기를 잃었다.

마을 주민 A씨(60대)는 산을 바라보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지역은 그래도 살아남은 나무가 조금씩 보이는데 여기는 아닙니다. 산이 통째로 죽었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숲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A씨는 7년 전 짙은 솔향과 바닷바람에 이끌려 이 마을로 이주했다. 집 주변을 가득 채우던 소나무 향이 삶의 터전을 결정한 이유였지만, 이제는 향기와 풍경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소나무가 급격히 말라 죽기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몇 그루 정도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산 전체가 갈색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 "몽산포부터 해안 따라 사실상 전멸"

주민들이 말하는 피해는 망상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며 태안 해안지역을 자주 오가는 주민 B씨는 "몽산포에서 해안을 따라 달려보면 피해 규모를 한눈에 알 수 있다"며 "일부 구간은 소나무가 사실상 전멸했다고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최근 급속히 확산된 소나무 집단 고사의 원인으로 소나무재선충병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현장에 쌓여 있는 벌목 목재가 실제 재선충병 감염목인지 여부는 관계기관의 공식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감염목으로 확인될 경우에는 파쇄와 훈증, 소각 등 관련 방제 기준에 따른 신속한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풍경 훼손 넘어 주민 안전까지 위협"

문제는 경관 훼손에 그치지 않는다.

고사목은 내부가 말라 강도가 크게 약해지면서 강풍이 불 때마다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가 쓰러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1리의 한 주택 인근 산자락에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으로 추정되는 벌목된 나무들이 남아 있다. 주민 B 씨는 “벌목된 지 일주일이 넘도록 나무가 현장에 방치돼 있다”며 감염목 방제처리지침 준수 여부와 추가 확산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확인을 요구했다. /태안군프레스협회

B씨는 "바람만 불면 마른 나무에서 '따닥따닥'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며 "언제 집이나 도로 쪽으로 넘어질지 몰라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을 곳곳에서는 일정한 길이로 절단된 고사목이 쌓여 있었다.

주민들은 태안군이 위험목을 벌목했지만 이후 반출 작업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B씨는 "군에서 나무를 잘랐고 다른 작업자가 가져간다고 들었는데 아직 그대로 쌓여 있다"며 "언제 반출하는지, 어떻게 처리하는지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 "국립공원이라면서 숲은 지키지 못했다"

주민들의 불만은 국립공원 관리 문제로도 이어졌다.

이들은 국립공원이라는 이유로 사유지 이용은 엄격히 제한받아 왔지만, 정작 소나무 숲 집단 고사를 막지 못했다며 관리 책임을 제기하고 있다.

B씨의 부인(50대)은 "국립공원이라면 숲을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숲은 모두 죽었는데 주민들은 여전히 재산권 행사조차 어렵다. 국립공원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국립공원사무소를 직접 찾아 피해 상황과 사유지 규제 문제를 전달하고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숲을 지키겠다며 수십 년 동안 규제를 받아왔는데 정작 지켜야 할 숲은 사라졌습니다. 최소한 주민들이 합리적인 범위에서 토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합니다."

■ "이제는 원인 규명과 신속한 대응이 필요"

주민들은 이번 사태가 어느 한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태안군의 방제와 고사목 처리, 국립공원 관리기관의 산림 관리, 충남도의 종합 대응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민들은 정확한 고사 원인과 피해 면적, 소나무재선충병 감염 여부, 벌목 목재의 반출 및 처리 계획 등을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A씨는 마지막으로 산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사진으로는 피해가 잘 안 보입니다. 드론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숲이 얼마나 넓게 사라졌는지 그대로 드러날 겁니다."

한때 태안군 해안을 따라 짙은 솔향을 실어 보내던 숲은 이제 메마른 고사목만 남았다.

주민들에게 소나무의 죽음은 단순한 산림 피해가 아니다. 고향의 풍경과 삶의 터전, 자연경관, 주민 안전, 재산권, 그리고 미래까지 한꺼번에 흔들린 지역사회의 위기다.

관계기관은 소나무재선충병 여부를 포함한 정확한 원인 규명과 함께 위험 고사목 제거, 감염목의 신속한 방제, 피해 현황 공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