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눈먼 돈은 없다”…부여군 체육회 보조금, 이제는 ‘시스템’으로 답해야
경찰 수사·환수로 끝나서는 안 된다…군민 혈세 앞에 필요한 것은 ‘말’보다 ‘통제’다
보조금은 공짜 돈이 아니다.
체육회에 지원되는 보조금 역시 마찬가지다. 그 돈의 출처는 결국 군민의 세금이고, 체육회와 종목단체가 집행하는 순간에도 그 돈의 주인은 여전히 군민이다.
그런데 보조금 집행 과정에서 부정·부적정 집행 문제가 불거지고 경찰 수사까지 이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문제가 발생한 뒤 환수하고 정산하는 것만으로 과연 군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충남 부여군이 최근 내놓은 ‘체육회 보조금 관리 시스템 개선 방안’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번 대책은 지난 1월 제기된 보조금 부정 집행 제보를 계기로 자체 특별점검이 실시되고, 이후 경찰 수사까지 진행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문제가 된 2025년도 용선대회의 목적 외 사용 보조금 가운데 일부는 이미 환수됐다.
여기까지는 사후 조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누가 잘못했느냐”를 따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느냐”를 따져야 한다.
보조금 관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거액의 횡령만이 아니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부적정 집행, 허술한 증빙, 형식적인 정산, 부족한 현장점검, 담당자의 회계 이해 부족 등이 쌓이면 어느 순간 ‘관행’이 되고, 관행은 결국 ‘문제’가 된다.
그리고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특별점검과 수사가 시작된다면 행정의 관리·감독은 이미 한발 늦은 것이다.
부여군이 이번에 내놓은 대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알기 쉬운 통합 정산 매뉴얼을 배포하고, 체육대회와 행사 전 회계교육을 의무화하며, 보조금 집행 현황을 상시 공개하고, 분기별 현장점검을 정례화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사업에는 외부 회계감사까지 의무화한다.
예방 중심의 관리체계로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건당 군비 3억 원 또는 국비 1억 원 이상 사업에 대해 실적보고서 적정성을 검증하고, 보조 결정 후 3개월 이내 외부 회계감사인을 선임해 결산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 것은 내부 정산만으로는 부족했던 부분을 외부 검증으로 보완하겠다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종이 위의 개혁에 불과하다.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읽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고, 회계교육을 해놓고 현장에서는 예전 관행대로 집행한다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현장점검 역시 ‘점검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실제로 무엇을 확인했고, 무엇을 바로잡았으며,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했을 때 어떤 책임을 물었는지까지 공개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성과 평가제’다.
부여군은 체육회 보조금 정산 결과와 집행 투명성을 다음 연도 예산 지원 규모와 연계할 방침이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보조금을 많이 받는 것이 권리가 아니라 투명하게 집행하고 제대로 정산해야 다음 지원도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보조금 관리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다.
“국민과 군민의 돈이라면 내 돈보다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상식이다.
경찰 수사가 끝났다고 사건의 의미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하게 사용된 보조금은 환수해야 하고,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시에 관리·감독 과정에서 놓친 부분이 있었다면 행정 역시 이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부여군이 이번 기회에 보여줘야 할 것은 거창한 쇄신 구호가 아니다.
보조금이 교부되는 순간부터 단돈 1원까지 어떻게 집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드러나는 공개 구조, 잘못 집행하면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는 원칙이다.
그것이 갖춰질 때 비로소 ‘보조금 관리 강화’라는 말에 힘이 생긴다.
체육회는 군민을 위해 존재하고, 보조금은 군민의 세금으로 마련된다.
따라서 군민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얼마를 지원했느냐”가 아니다.
“그 돈이 제대로 쓰였느냐”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정산 문제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부여군 체육행정의 낡은 관행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만들 것인지는 이제 행정과 체육회의 몫이다.
부여군이 내놓은 시스템 개선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작동한다면 이번 논란은 오히려 체육행정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제도만 만들어 놓고 또다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눈감는다면 군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보조금에는 주인이 있다.
그 주인은 체육회도, 종목단체도 아니다.
바로 군민이다.
이제 부여군 체육행정이 답해야 할 차례다.
군민의 세금 앞에서 정말 달라졌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