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충효예’라는 이름이 법과 재정까지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조직은 명분으로 만들고, 비용은 충남도민이 부담하는가
정치는 명분을 말할 수 있다.
행정은 그러나 근거를 말해야 한다.
‘충효예’는 누구도 쉽게 반대하기 어려운 가치다. 어르신을 공경하고, 공동체의 예를 중시하며,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억하자는 취지에 반대할 도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 신설과 정원 확대, 예산 투입까지 자동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충남도의 민선 9기 조직개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충남도의회 윤재은 의원이 최근 도정질문에서 ‘충효예기획관’을 정면으로 검증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질문의 본질은 ‘충효예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다.
왜 이 조직이어야 하는가.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
왜 56명의 정원이 필요한가.
법과 절차는 제대로 지켰는가.
그리고 그 비용을 감당할 재정 여력은 있는가.
행정이라면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다.
56명은 숫자가 아니라 ‘고정비’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충남도 집행부 정원이 6,629명에서 6,685명으로 56명 증가했다.
행정조직에서 사람을 늘리는 것은 일회성 사업비를 늘리는 것과 다르다.
사람은 매년 월급을 받는다. 수당도 받고 복리후생도 필요하다. 사무공간과 장비, 조직 운영비도 뒤따른다. 한번 늘어난 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속적인 재정 부담으로 남는다.
그런데 충남도의 재정 사정은 녹록지 않다.
충남도가 하반기 재정부족액을 1조304억 원으로 전망하고 경상경비와 기존 사업예산을 평균 20% 이상 줄이는 상황이라면, 도민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나온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면서 왜 조직은 늘리는가?”
이 질문에 정치적 수사로 답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조직이기 때문에’라는 답변도 충분하지 않다.
얼마가 더 들어가는지, 기준인건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통교부세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향후 몇 년간 추가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숫자로 설명해야 한다.
행정의 신뢰는 구호가 아니라 ‘계산서’에서 나온다.
■ 입법예고 20일 원칙, 4~5일로 줄였다면 이유부터 밝혀야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입법예고 절차다.
원칙적으로 20일인 입법예고 기간이 이번 조직개편 과정에서 4~5일로 단축됐다면, 그 자체만으로 위법이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단축했느냐’다.
입법예고는 행정이 자기들끼리 정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다. 도민에게 알리고 의견을 듣는 장치다.
특히 이번처럼 조직을 새로 만들고 공무원 정원을 늘리는 사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법이 정한 예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면 그 근거를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설명이 부족하다면 의문은 커진다.
“절차를 지켰는가”라는 질문에 “가능한 절차였다”는 답만 해서는 부족하다.
도민이 알고 싶은 것은 ‘가능했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느냐’이기 때문이다.
■ 3개과 짜리 국, 정말 필요한가
충효예기획관의 조직 구성도 따져볼 대목이다.
윤 의원은 충효예기획관이 3개 과로 구성돼 일반적인 국 단위 기구 설치 기준인 4개 과 이상에 미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행정의 답변은 명확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설치할 수 있다면 그 법적 근거를 제시하면 된다.
오히려 간단하다.
기준에 맞는다면 기준을 설명하면 되고,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예외의 근거를 설명하면 된다.
문제는 설명이 아니라 명분으로 넘어가려 할 때 생긴다.
더욱이 조례에서는 충효예 관련 사무를 ‘처리’한다고 하면서 시행규칙에서는 노인·보훈·장애인 정책을 ‘보좌’한다고 한다면 조직의 정체성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처리하는 조직인가, 보좌하는 조직인가.’
기존 부서와 무엇이 다른가.
새로운 정책 기능인가, 기존 업무의 재편인가.
기존 복지·노인·장애인·보훈 조직과의 업무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이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조직 신설의 필요성 역시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 ‘충효예’라는 우산 아래 모든 것을 넣어도 되는가
정책 편제 문제는 더 민감하다.
노인·보훈·장애인 정책을 충효예라는 가치 아래 함께 묶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문제다.
물론 세 정책 모두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중요하다는 것과 같은 조직에 넣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노인정책에는 노인복지라는 전문성이 있다.
장애인 정책에는 장애인의 권리와 자립이라는 독립된 정책 목표가 있다.
보훈정책 역시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예우한다는 고유한 법적·행정적 영역이 있다.
이들을 하나의 가치로 묶는 것이 정책적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각각의 정책이 가진 전문성과 독립성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충효예’라는 좋은 이름이 아니다.
업무의 명확한 구분과 책임 소재다.
■ 5,063억 원이라는 숫자도 다시 봐야 한다
청년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충남도의 2026년 청년 관련 예산이 약 5,063억 원, 전년보다 506억 원 늘었다면 얼핏 보면 상당한 증가다.
하지만 예산은 총액만 봐서는 안 된다.
청년들의 현실적인 관심사인 일자리 분야 예산은 약 107억 원 감소했고, 주거 분야도 약 6억 원 줄었다는 것이 윤 의원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청년예산은 늘었는데, 왜 청년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일자리와 주거 예산은 줄었는가.”
복지·문화 분야 예산이 늘었다고 해도 그 안에 대규모 체육시설 같은 인프라 사업이 포함돼 있다면 청년에게 직접 돌아가는 정책 효과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5,063억 원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돈으로 청년 몇 명이 일자리를 얻었는지, 몇 명이 주거 부담을 덜었는지, 얼마나 많은 청년이 자립의 발판을 마련했는지가 중요하다.
예산은 ‘얼마를 썼느냐’보다 ‘무엇이 달라졌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 어르신을 위한 정책과 청년을 위한 정책은 싸움이 아니다
여기서 또 하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충효예 정책과 청년정책을 세대 간 대결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
어르신을 공경하는 것과 청년에게 투자하는 것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문제는 세대가 아니다.
‘우선순위와 효율이다.’
한정된 재정에서 어떤 조직을 만들고 어떤 사업에 얼마를 투입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행정이다.
그러려면 모든 정책이 같은 질문을 받아야 한다.
“정말 필요한가.”
“법적 근거는 충분한가.”
“기존 조직과 중복되지 않는가.”
“투입하는 돈보다 효과가 큰가.”
“도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는 ‘충효예’도 예외가 될 수 없고, ‘청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 행정조직은 클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지방정부의 조직개편에서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고, 새로운 조직이 생기면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이 늘어나면 예산이 필요해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정책을 위해 조직을 만든 것인지, 조직을 만들기 위해 정책을 붙인 것인지’ 경계가 흐려진다.
조직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충효예를 실천하기 위해 반드시 별도의 조직이 필요한지, 기존 조직의 기능 조정만으로 가능한지부터 검토해야 한다.
새 조직이 생긴다면 기존 조직과 무엇이 달라지는지도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개편은 행정 효율화가 아니라 ‘행정의 덩치를 키우는 일’이 될 수 있다.
■ 이제 충남도가 답할 차례다
윤재은 의원의 질의를 정치적 공방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지방의원이 집행부를 감시하고 따져 묻는 것은 의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다.
특히 재정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지방정부라면 더욱 그렇다.
충남도는 이제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충효예기획관의 설치 근거는 무엇인지, 3개 과 조직이 국 단위 조직으로서 어떤 법적 근거를 갖는지, 입법예고 기간을 단축한 이유는 무엇인지, 56명 증원에 따른 추가 소요경비는 얼마인지, 향후 인건비와 운영비 부담은 얼마나 되는지, 기존 조직과 업무 중복은 없는지 밝혀야 한다.
그리고 청년예산 5,063억 원에 대해서도 총액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실제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자립에 얼마나 투입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도민은 이제 단순한 ‘숫자’를 믿지 않는다.
■ 명분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충효예는 좋은 가치다.
하지만 좋은 가치가 좋은 행정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좋은 정책도 잘못된 절차로 추진될 수 있고, 좋은 취지의 조직도 불필요한 행정비용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의회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론의 감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민의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하다.
민선 9기의 성공 여부는 조직을 몇 개 만들었느냐로 평가받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 정원을 몇 명 늘렸느냐도 아니다.
예산을 얼마나 크게 편성했느냐도 아니다.
결국 도민들이 묻게 될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
충남도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면 조직 신설도, 예산 확대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면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워도 설득하기 어렵다.
‘충효예’라는 이름이 법과 절차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청년예산’이라는 이름이 숫자의 면죄부가 될 수도 없다.
행정은 명분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 평가는 반드시 ‘법과 숫자, 그리고 결과’가 내려야 한다.
지금 충남도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름이 아니라 ‘납득할 만한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