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가위손』
상태바
박명순의 영화이야기=『가위손』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5.19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설이 된 사랑이야기

 

▲ 가위손 에드위드 사진=네이버 영화
▲ 가위손 에드위드 사진=네이버 영화

팀버튼의 영화를 처음 만난 순간의 감격을 지금도 섬뜩함으로 기억하고 있다. 슬픔이 가득하면서도 소름끼치게 무서운 동시에 웃음폭탄을 선사하는 영화였다. 이제껏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특이한 영화에 대한 기억은 감미롭기까지 했다. ‘훌륭한 작가(작품)는 지금까지 없었던 거울을 세상에 선물한다는 말처럼 팀버튼의 영화는 확실하게 새로운 관점과 취향을 선보였다 할 수 있겠다.

그의 영화는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세상에 의심의 안개가 피어오르고 미지의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팀버튼의 영화에 담긴 기괴하고 음울함으로 얼룩진 세상은 무의식에 깔린 심층적 욕망을 자극하여 끝없는 호기심을 창출한다. 주인공의 엽기적 화장기법으로 연출하는 독특한 입체감은 변신술처럼 흥미로우며, 환상적 색채로 펼쳐지는 영상미는 마술적 분위기를 재현한다. 강렬한 터치, 원시적 색감, 전체적으로 흐르는 불안의 감정이 팀버튼의 모든 작품마다 펼쳐진다. 기괴함을 바탕으로 그려지는 그로테스크 미학도 현실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움의 표현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한다. 그 현실과 비현실의 갈등과 얽힘은 불확실성 시대의 소외된 이웃을 향한 관심과도 맥이 닿아있다. 아무리 어둡고 무거운 화면이 흘러도 이를 뛰어넘는 생기와 유머가 넘치는 건 이러한 관심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만큼 그의 영화는 생명력이 강하다.

▲가위 손 사진=네이버 영화
▲가위 손 사진=네이버 영화

처음 만난 팀버튼의 영화가 가위손이다.

기괴하고 슬픈 동화(童話) 스타일의 영화 가위손은 팀버튼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대표작이다. 손녀에게 할머니가 전설을 들려주는 형식의 액자구성으로 전개된다. 가위손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미완성의 피조물 에드워드(조니댑)가 마을 어귀의 고성(孤城)에서 세상과 단절되어 살다가 인간의 마을로 내려오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처음 만난 배우 조니 뎁과 팀 버튼은 이후 거의 모든 영화에서 동반자의 관계를 맺는다.

가위손은 고독한 영웅과 미숙한 외계인의 이미지를 반반씩 지녀 공포심보다 연민을 자극한다. 동시에 이방인,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괴력의 소유자이지만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심성을 지닌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가위가 지닌 두 가지의 극단적인 의미는 파괴와 창조에 있으며 이는 매우 위험한 이분법이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면 존재하는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에서 무수한 갈등을 수반한다. 창조를 열망하지만 변화의 고통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가위손 한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 가위손 한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 정원을 가꾸는 에드워드 사진=네이버 영화
▲ 정원을 가꾸는 에드워드 사진=네이버 영화

가위손은 다르게 생긴 외모와 능력(나무가꾸기, 머리손질 등의 가위질) 때문에 호기심의 대상으로 관심을 끌다가 싫증난 마을사람들에게 버림받는다. 독특함의 성향을 매력적인 외모와 탁월한 능력으로 인정하다가, 하루아침에 위험성과 범죄가능성으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미용실 여인과 킴의 남자친구가 그 대표적 존재이다. 미용실 여인은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무시당했다고 여겨서 복수심을 품고, 킴의 남자친구는 가위손의 능력(잠금장치를 만능으로 열 수 있는 가위)을 이용해서 자신의 아버지 집에서 도둑질을 하려다가 발각되자 모든 죄를 그에게 뒤집어씌워 유치장으로 보낸다.

하지만 킴은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에드워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에드워드와 킴이 처음 만나는 물침대 장면은 놀라서 소리치는 표정과 분수처럼 솟구치는 침대의 물줄기가 폭소를 자아낸다. 정원사로 인정받아 기뻐하던 에드워드와 마을여인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면서 헤어디자이너로 성공을 꿈꾸는 장면들은 소소한 재미와 애틋함이 흐른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에드워드가 언젠가는 자신들을 해칠 거라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이방인에 대한 관용은 사라지고 급기야 집단행동을 감행한다. 야비한 인간의 추악함이 인조인간의 순박한 사랑 앞에 맨얼굴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최후의 결투는 에드워드와 킴의 남자친구가 벌이는 막상막하의 긴장감으로 진행되고, 킴은 에드워드를 지켜준다. 킴은 흥분한 마을사람들에게 잘려진 팔뚝과 가위손을 보여줌으로써 죽음을 믿게 만든다.

가위손의 흉터 가득한 창백한 얼굴은, 사랑하는 사람을 안을 수 없는 극단적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하지만 사랑을 품은 고통은 아름답게 빛날 수 있으니 가위손은 갇힌 존재로 살아가지만 예전과는 달라진 삶이 펼쳐질 것이다. 마을은 무료했던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킴의 가족은 에드워드를 그리워한다. 미완성 피조물인 에드워드는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화 과정의 학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킴의 가족이 도와주려고 했지만 에드워드는 예전의 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고립된 삶을 살아야 하지만 에드워드에게는 팀의 가족과 주고받은 사랑으로 뜨거운 심장이 자리를 잡는다.

 

킴과 에드워드는 서로의 공간으로 돌아갔지만 둘의 사랑은 어쩌면 끝나지 않았다. 이후 세월이 흘러 킴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에드워드는 인공인간이므로 나이를 먹지 않고 영원한 청년으로 존재하는 점이 다르다. 지금도 그 성에서 에드워드는 킴을 위해 눈꽃을 날려주고 있는데, 이를 알고 있는 킴은 손녀에게 전설이 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킴을 위해  사진=네이버 영화
▲킴을 위해 킴을 위해 눈꽃을 날려주고 있는데, 이를 알고 있는 킴은 손녀에게 ‘전설이 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진=네이버 영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을 더듬어본다.

에드워드가 사랑하는 킴(위노나 라이더)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위손만의 작품이다. 얼음으로 된 천사상을 조각하며 눈꽃을 날려주는데 사랑의 기쁨을 표현하는 색다름이다. 둘의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한 시간이 흐르는데, 킴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춥지도 않나?)휘날리는 눈꽃을 음악 삼아 무도회의 주인공처럼 춤을 춘다. 영화 음악의 거장 대니 엘프만이 작곡한 '아이스 댄스(Ice Dance)'의 신비한 선율이다. 이 어울림의 아름다운 영상미는 사랑하는 자들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축복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함께 포옹할 수 없는 연인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온 세상이 정지된 듯 황홀감에 젖어드는 시간이 흐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길을 내밀면 가위의 날카로움에 다칠까봐, 얼음조각에만 전념해야 하는 가위손. (촬영 이후 이들 배우는 실제 연인이 되었다니 영화 속 아쉬움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아름답고 슬픈 이 장면에서 나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에는 내밀한 결핍과 아픔이 있음을 생각한다. 모든 사랑에는 축복과 아픔이 혼재함을 차가운 얼음과 하얀 눈으로 표현하는 메타포를 읽는다. 순간의 환상적 황홀감과 비정한 현실을 깨우치기라도 하는 듯.

▲ 사진=네이버 영화
▲ 에드워드를 받아주려 했던 선량한 팀의 가족, 그들의 얼굴들이 정겹게 기억에 남는다. 사진=네이버 영화

이방인인 에드워드를 받아주려 했던 선량한 팀의 가족, 그들의 얼굴들이 정겹게 기억에 남는다. 고독한 이방인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방을 주고, 함께 음식을 나눈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화장품 외판원 일을 하는 킴의 엄마가 집으로 데려온 에드워드는 마을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한 채 에피소드만을 남기고 쫓겨 갔다. 그게 인간의 세계다.

이제 에드워드는 고독한 1인 가족으로 살아갈 것이다. 가끔 옛사랑을 떠올리며 눈꽃을 날려주기도 하리라. 강렬한 사랑의 순간 감염된 바이러스는 마을에 대한 모든 기억을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는 촉매제로 그 생명력을 키워 나갈 것이다.

(1990 제작, 2014 재상영, 미국, 팀 버튼 감독, 10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