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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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5.3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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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사랑과 행복은 공존할 수 있는가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제목의 상징성이 주는 호기심은 끝내 해결되지 않는다.

조제는 주인공 이름이고, 호랑이와 물고기는 조제가 갈망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들이다. 호랑이는 밀림의 제왕처럼 두려움의 대상이고, 물고기는 심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무리이니 조제에게 거리를 두는 동네사람들, 사회, 집단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물고기는 수족관에 갇혀있고, 호랑이 또한 동물원 우리 안에서 포효할 뿐이다. 조제라는 이름 역시 프랑스와즈 샤강의 소설 속 인물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열정적이었던 샤강처럼 조제는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와 사랑과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뿐.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는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거주하는 공간처럼 멀어진 연인의 심리적 거리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호랑이는 물속에서 살 수 없고, 물고기들 역시 산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조제는 이를 깨달으며 홀로서기를 아프게 시도하는 듯하다. 영화는 일본의 소도시 풍경과 젊은 남녀의 표정을 영상으로 담아내면서도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곳곳에서 울림의 목소리로 여운을 남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제와 어렵게(어렵지 않은 사랑은 없다, 결단코.) 사랑을 꿈꾸던 츠네오이다. 미숙한 젊음과 가난, 그리고 신체적 장애와 사랑에 대해 눈물을 글썽이는 목소리는 진정성의 품격을 갖춰 나름 설득력이 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조제는 몸이 불편하지만 자신의 한계에 쉽게 안주하지 않는다.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조제에게, 세상을 향한 문을 활짝 열어주는 역할을 맡은 츠네오와의 사랑은 자연스럽다. 사랑이 뜨거운 만큼 이기적 욕망에도 계산이 없을 수 없다. 이별의 아픔으로 울먹이는 츠네오와 전동휠체어를 끌고 홀로 외출을 시도하는 조제. 그 조제는 유머러스하고 늘 당당하며 때때로 심술궂으리만치 까탈스럽고 자기중심적이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의 짐을 끌어안았다기보다는 보통의 젊은이처럼 미숙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음과 발랄함이 돋보인다. 짐짝처럼 방안에 처박혀 고립된 세계에 갇힌 조제가 특별 외출을 하는 건 할머니의 유모차에 숨어서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시선이 담겨 있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동정과 연민과 특별함이 탈색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간적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단점이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없지만, 그 한계를 끌어안으며 사랑을 지속한다는 건 과연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불완전하기에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야 할 인간임을 우리는 가끔 아주 잊고 살지는 않는지, 다시금 생각해볼 일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사유의 즐거움은 누구의 몫인가.

우리는 유한성의 존재이기에 종교와 예술과 기타 등등의 무한한 세계를 동경하지 않는가. 조제가 누리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가 날마다 바라보는 그런 하늘과 바람과 꽃과 고양이와 구름일 뿐이라는 점이 어쩌면 특별하다.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기에 더욱 간절하게 계절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뿐인 것이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버려진 책으로 독서를 하고, 소양을 쌓으며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채워 나가는 조제를 생각하면서 뭉클해지는 시간들을 나는 사랑한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나듯이 한계에 갇힐수록 갈망은 더욱 강렬해져간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멘트 바닥을 뚫고 나온 노오란 민들레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처럼 벅차오르는 황홀감. 이런 시간에 나는 마술처럼 신비한 체험에 녹아든다. 조제와 멋진 교감이라도 나누듯 내 안의 단점과 한계조차 여유롭게 사랑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가장 멋진 장면은 조제가 의자에 앉아서 홀로 요리를 하는 당당한 모습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조제는 생선을 굽고, 계란말이를 부친다. 평범한 요리를 특별한 맛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라면 조제의 요리 실력은 수준급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었던 맛있는 요리를 이제는 스스로를 위해 만드는 조제. 평범하지만 특별한 요리는 계속될 것이다. 자부심이 넘치는 요리처럼 조제의 앞날은 사랑하는 츠네오가 옆에 없어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이다. .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유별나게 자존심이 강한 조제와 유약하고 소심한 츠네오의 만남은 처음부터 안정감이 없었다. 위태롭고 위험한 둘의 만남을 포기하면서 츠네오는 슬프게 울지만 조제는 담담하다. 영화에서 시종일관 담담하게 그려내는 조제가 지닌 삶의 무게는 거꾸로 츠네오에 의해 부각된다. 정작, 힘든 삶을 살아가는 조제와 달리, 츠네오는 힘겨운 사랑 앞에서 소심하고 유약한 인물로 설정된다. 눈물을 보이는 자와 감추는 자의 내면을 느끼는 건 오롯이 우리들의 몫이다. 불안하고 위태롭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사랑이 있다. 하지만 조제는 아니다.”

첫 장면 츠네오의 내레이션에는 시작과 끝이 버무려있다.

(2003제작, 2017재샹영, 일본, 이누도 잇신 감독,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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