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화양연화』는 첫사랑처럼 발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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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화양연화』는 첫사랑처럼 발칙했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6.2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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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나는 처음이라는 말에 예민한 편이다.

남들도 나와 같지 않다는 건, ‘초경의 기억과 맞물려서이다. 어쩐 일인지, 출산의 체험에 담긴 스토리텔링은 저마다 푸짐했지만 초경의 기억을 털어놓는 여성을 만난 적은 드물었다. 많은 여성들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정말이지, 믿기 어려웠다. 어떻게 그날의 떨림과 두려움과 초조함을 잊고 살 수 있을까?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나의 경우는 새벽부터 으슬으슬 춥고 입맛도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잠이 많고 식탐이 유별난 편인데 그날은 일찍 눈이 떠졌고 김밥의 단무지가 돌처럼 딱딱해서 씹기가 싫었고 김의 이물감이 입안에서 겉돌면서 기분 나쁜 해초냄새가 났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달리 민감한 성격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무디게 넘기는 걸 좋아하는 축에 속한다. 당연히 책임질 일도 줄고, 부대낌으로 발전될 싹도 애초에 잘라버린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반복되는 일상을 탈주하는 힘을 처음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과 만나서 이루어지는 화학반응은 폭발력으로 증폭하여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처음의 상황은 그렇게 씨앗처럼 심어져 싹이 트고, 잎을 만나,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는 성장과정을 함께한다.

생애 처음 바다를 만난 체험과 기타 등등 처음이라는 단어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달콤함과 신비함이 잘 버무려진 언어이다. 첫눈 오는 날이면 여학생들은 첫사랑 이야기를 졸랐다. 교직에 있는 30년 동안 만들어낸 첫사랑 스토리는 체험을 상상과 버무려서 해마다 조금씩 살이 붙었다. 매달 치러내는 달거리 의식도 내게는 초경의 체험을 되새기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역사였다. 생각해보니 화양연화또한 나에게는 첫사랑 같은 영화, 영화와 마주친 첫사랑이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의 마력에 처음으로 퐁당 영혼을 빠뜨리게 된 순간이었다. 낯선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접했던 게 그때부터였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절대적인 매력이 있어서는 아니고 단지 나와 맺어진 특별한 인연일 것이다. 당시 이루어지지 않는 갈망으로 고갈된 임계 지점에서 절실하게 탈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나는 40대 중반이었고, 삶의 목표는 욕망의 억제였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최대한 말을 절제하고 수녀처럼 간결하게 살고 싶었다. 자신에게 과도하게 어둡고 무거운 생활방식을 강요하였다. 검약과 절제로서 정신적 아름다움을 꽃피우고 싶었다.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자고 나머지 시간에는 독서와 명상으로 살고 싶었던 시절. 하지만 나의 실천은 비루했고, 현실 적응이 힘겨워 방황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주어진 현실을 통째 거부하고 싶었으나 그러지는 못했다.

가출이나 출가를 하지 못했고 대신 영화와의 연애를 시작했다. 나에게는 독서라는 오랜 동지가 있었다. 영화라는 연인을 만난 건 외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샛길임에는 틀림없다. 가끔 새로운 길을 가고 싶을 때, 영화는 나에게 무한한 영감이자, 현실적 에너지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영화 관련 글을 쓸 때의 맹목성과 거침이 없는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연인을 향한 애정공세일 뿐이니까 여기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그래서 자유롭다. 당연히, 헛소리도 많고 허장성세도 있겠지만 두렵지 않은 것이다.

화양연화는 그렇게 첫사랑처럼 뜨겁게 다가왔다.

영화의 내용을 문자언어로 표현하면 유부남 유부녀의 진부한 러브스토리이다. 서로의 배우자끼리 만남을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레 시도하는 접촉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기에 충분하다. 1962년 홍콩의 시간과 공간을 떠올려본다면 그들의 떨리는 심정을 더욱 리얼하게 느낄 것이다. 만나서 배신당한 슬픔과 막막함에 빠진 서로를 위로하다가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도덕적인 불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별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하지만 영상언어는 인물들의 숨겨진 욕망을 은폐와 표출의 시선을 활용하여 숨이 멎는 듯한 아름다움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모든 상황은 처음이자, ‘새로움의 맥락에서 재해석이 가능하다. 동일반복으로 보이는 나날의 단순한 만남을 새롭게 이끌어내는 마술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주인공 남녀는 같은 날 같은 건물로 이사한 차우(양조위)와 리첸(장만옥)이다.

무역회사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리첸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지역 신문의 데스크로 일하는 차우와 그의 아내이다. 차우와 리첸은 서로의 배우자끼리 바람이 나서 만나게 된 불편한 관계이다. 차우는 리첸이 아내와 똑같은 핸드백을 가지고 있으며, 리첸은 차우가 남편과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의 배우자가 자신들 몰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같은 건물에 살다보니 둘은 당연히 자주 마주친다. 처음에는 서로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과 배신당한 서러움을 솔직하게 말하고, 서로 위로해주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병상련으로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서로의 시선을 밀착시킨다. 간결한 대사와 화면을 가득 메우는 치파오의 영상으로 다가오는 장만옥과, 소년처럼 그윽한 눈길의 양조위가 멋진 화음을 이루어 리드미컬하게 둘의 만남은 이어진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영상미를 통해 대사를 극도로 자제한다. 장만옥의 치파오를 입은 모습은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떠난 상실감을 억지로 감추고 있는 듯 온몸을 꼭꼭 동여매고 있다. 차이나칼라로 가려진 목선과 발끝까지 닿는 길이의 옷차림은 닫혀있는 울음이 배어 있다. 그녀는 차츰 현실을 인정하고 떠난 남자를 잊고 새 출발을 하고자 한다. 그때 어디선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자신의 남편과 함께 떠난 여인의 남편인 차우(양조위)이다. 양조위는 색계와 몇몇 작품에서 만난 이미지가 강렬하다기보다는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소년처럼 아련한 스타일로 남아있다. 소년의 갈망하는 그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한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다. 사실 그녀의 가려진 몸을 통해 흘러나오는 육체의 언어는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처음에는 배신감에서 오는 슬픔과 허무였지만 점차 꿈꾸는 소녀처럼 영롱함인가 싶더니 요염함과 정염의 언어가 뿜어 나온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였으나, 차우는 망설이기만 한다. 그녀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지만 자신이 없는 것일까.

화면의 영상은 흐르듯 속삭인다.

사랑은 절대적인 것도 일회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긴다 하여도 순간일 뿐이라는 것.’

결국 이 둘의 만남은 소심함과 머뭇거림 속에서 어긋나기만 한다. 1962년 홍콩, 골목길을 오가며 부딪치는 숱한 인연의 만남과 사라짐이 다했을 뿐인 것이다. 이별 혹은 단절만이 최선의 방책인 것처럼 둘의 사랑은 스스로 절제되고 금지 당한다. 사랑의 행위가 용납되는 윤리에서 이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도 없다.

현란한 화면편집과 감각적인 화면구성 대신, 느린 템포와 정적인 화면구성을 통해 주인공들이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차우와 리첸, 서로의 몸이 닿을 듯 말 듯한 배치만으로 생략된 언어가 무궁무진하게 피어난다. 뻔한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장면들 또한 진부하지 않게 담아냈다. 영화 제목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은유하는 말로, 가수 주선(周璇)’이 부른 동명의 곡에서 제목을 차용했고, 영화의 삽입곡으로도 사용되었다. ‘방탄소년단또한 동명의 앨범을 발표했다.

차우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돌구멍에 사랑의 비밀을 봉인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사랑의 고백이 지닌 유한성에 대항하는 표정을 보여준다고 할까. 헤어진 연인에게 고백하는 사랑의 언어가 역설적이다. 처음과 끝의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언어표출 행위는 애처롭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모든 사랑은 유한하다는 것. 사랑은 변하고 반복한다는 것. 배신당한 사랑 역시 사랑의 또 다른 밑거름인 것을, 그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밖에는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랑은 처음의 씨앗을 키워냄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의 언어를 속삭인다.

(2000년 제작, 2020년 재상영, 홍콩, 왕가위 감독,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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