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대서사시’로는 태부족한 판페라 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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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대서사시’로는 태부족한 판페라 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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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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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금강일보 기자
이건용 금강일보 기자

판페라 무령은 대체로 무난했다. 출연자들의 열연과 가창력은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대 분위기와 상황 상황에 맞는 선율은 특히 돋보였다. 때로는 장중하면서도 유려하게, 때로는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게 그야말로 화이불치 검이불루(華而不侈 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의 백제의 멋을 그대로 투영해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시도 또한 신선했다. 무령왕을 소재로 판소리와 오페라를 결합한 새로운 장르의 판페라무대를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시험무대로서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1500년간 잠들어 있던 무령왕을 소환하는 데는 실패했다. ‘처녀공연으로써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현재의 모습대로라면 공주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상품의 효과도, 흥행도 기대하기 어렵다.

탄탄하지 못한 스토리 구성은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1막이 무려 8, 2막은 무려 9장에 달해 러닝타임만 2시간 40분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무령왕의 이미지를 그려내기 위한 서설이 너무 길어 갈수록 피로감만 쌓여갔다.

무령이라는 제목과 달리 내용 전반은 동성을 이야기 한다. 피날레 직전까지 무령왕이 아닌 동성왕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주인공이 마치 사마(斯摩/斯麻, 무령왕의 이름)가 아니라 모대(牟大, 동성왕의 이름)로 착각할 정도다. 동성왕 일대기를 그린 공연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빈약하게 설정된 스토리 구조 탓에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모호하다.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신파적 설정이 내내 아쉬움을 남긴다. 시간 순서에 따른 서술구조와 뻔한 스토리는 관객들의 흥미를 반감시키기에 충분했다.

동성왕의 이야기로 점철된 무대와 더불어 토호세력 또는 호족세력의 암투를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혼란을 부추겼다. 백가(苩加)의 동성왕 시해로 무령왕이 즉위하긴 했지만 백제의 중흥을 이끌고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무령왕을 이야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무령왕 대서사시로는 태부족이다.

진 씨와 연 씨, 백가 등 호족세력의 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그려내면서 백제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무대에 불과했다는 이해준 공주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평가도 새겨볼 대목이다.

또렷하게 기억에 남을만한 임펙트 있는 장면도 부족했다. 단순한 나열식 무대로는 관객들을 매료시키기 힘들다. 백제문화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웅진판타지아가 매년 시험무대에 그쳐 흥행참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드는지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다.

판페라 무령이 오는 925일 금강신관공원 주무대에서 개최되는 제67회 백제문화제의 개막공연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금강신관공원 무대는 더구나 오픈된 공간으로 관객들의 흥미유발이 관건이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무대가 되지 않으려면 과감한 칼질이 필요하다. 색다른 소재와 캐릭터 발굴, 흥미진진한 사건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lgy@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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