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완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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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완득이』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3.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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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주 샘을 만나지 못했다면

 

▲완득이와 똥주 샘 사진=네이버 영화
▲완득이와 똥주 샘 사진=네이버 영화

하나의 작품을 다양하게 만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완득이는 김려령의 소설 원작이 핵폭풍 인기몰이 후 영화, 뮤지컬, 연극으로 재생산되면서 관람 기회를 연중행사처럼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했고, 학부모 초청강연, 다문화 체험학습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였으니 많이도 우려먹은 셈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태를 살포시 드러내곤 재빨리 날아 가버린 나비처럼 그 많은 사연들이 남긴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여운만이 맴돌 뿐이다.

▲ 완득이와 엄마의 어색한 모습 사진=영화네이버
▲ 완득이와 엄마의 어색한 모습 사진=영화네이버

완득이는 소설 원작이 이미 10년이 지난 작품이다. 2011년 스크린에서 김윤석과 유아인을 처음 만난 영화인데 이후 이들은 한국영화의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윤석은 똥주역이나 1987의 박처원에서 보여주는 유들유들하고 독선적인 이미지가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은은히 발효되어 깊어진 모습인데 유아인의 연기는 매력적이지만 아직은 깊은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를 최근 다시 보면서 순둥이 사춘기 반항아 캐릭터가 유아인의 튀는 외모와 잘 어울렸구나 싶었다.

영화는 김려령 작가의 소설 원작에 충실했고, 김윤석(똥주 선생님)과 유아인(완득이)의 연기는 의뭉하면서 톡톡 튀는 맛깔스러운 대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필리핀 엄마와 신체장애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완득이, 그는 고2 때까지 엄마 없는 생활이 당연한 것처럼 살았고, 친구 사귈 줄도 모른 채, 존재감이 없어야 편안한 외톨이였다. 그런 완득이에게 변화가 찾아오는 건. 온전히 똥주 선생님 덕분이다.

똥주 선생님은 과연 누구인가.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는, 완득이가 죽기를 기도하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얼마나 악독한 사람인가보다는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보여준다. 알고 보니 그는 맥이 빠질 만큼 선량한 사회선생님이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언어폭력과 몽둥이로 체벌을 행사하는 평범(2010년 이전 기준)하면서 나사가 서너 개 빠진 듯 허우적거리며 등장한다. 그렇게 은근슬쩍 이어지는 장면은 전지전능한 구원자 역할이다. 완득이에게 얼굴도 모르고 자란 필리핀 엄마의 존재를 알려주는가 하면 평소에 화가 나면 강펀치를 날리는 완득이에게 킥복싱이라는 세계로 인도하며 진로를 코칭한다. 완득이가 똥주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똥주 선생님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교회를 통째로 사서 그곳에 다문화 센터를 만들고 완득이네 아버지와 엄마의 직장까지 만들어준다. 완득이가 똥주 선생님을 만난 건 노력이나 성실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완득이가 결혼이주여성인 자신의 엄마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매우 성숙한 것이다.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미술시간,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에 대해 뭘 봐.”로 시작하는 해석은 엉뚱하지만 기발하다. 원작에는 없는 대사까지 이어진다.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 온 여성’, ‘그 나라에서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라는 교과서적인 표현을 유머에 녹여낸다. 이삭을 줍는 세 명의 여성을 싸울 준비 하는 포즈로 묘사하는 것이다. 영화 전체에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은 건 이 말에 녹아있는 완득이의 고뇌과정을 영화적으로 형상화했음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 청소년의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50년이면 신생아 중 3명에 1명은 다문화 자녀일 것이며, 전체인구의 10프로가 다문화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25년이면 다문화 군대로 변화될 것이라 한다. 세계화 시대의 당연한 추세이다. 실제로 2017년 이후 학교에서도 결혼이나 취업으로 외국에서 이주해온 가정의 자녀들을 학급당 1-2명 정도 만나고 있다. 피부색이 다른 경우를 제외하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완득이처럼 한국사회에 완벽히 적응해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천안에서 만난 1학년 소녀 하와는 파키스탄 이주민 가족이다. 히잡을 쓰고, 라마단을 하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급식실에서는 하와를 위한 음식을 별도로 준비해준다고 한다. 피부색이 거무스름하고 눈이 큰 하와는 한국인과 다른 자신의 모습이나 종교행위를 당연시한다.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라마단은 이슬람교의 종교의식이자 축제로, 이 기간에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식사, 흡연, 음주 등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해가 진 다음에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이슬람교인들은 낮에는 단식으로 기운이 없지만 저녁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이처럼 종교에 따른 생활방식의 차이는 자칫 갈등요인의 소지가 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생활방식이나 종교생활을 포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태국이나 필리핀, 베트남 엄마와 한국인 아버지를 만난 아이들 중에는 이주민 결혼가정임을 숨기고 싶어한다. 외모만으로는 구별 짓기가 쉽지 않기에 충분히 그러고 싶을 것이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건 그것이 불러올 차별과 편견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임을 체득하면서 보호본능이 발동하는 것이리라.

▲ 똥주선생님의 냉정한 표정 사진=네이버 영화
▲ 똥주선생님의 냉정한 표정 사진=네이버 영화

다문화라는 말이 본래의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구별 짓기가 되어, 또 다른 차별의 언어가 되고 있음은 우려할 일이다. 저학년을 위한 다문화 영화 황구, 리틀 히어로는 홍보영화의 성격이 강하고 차별의 민낯을 보여 불편하다.완득이는 차별이 증발해버린 자리를 이동주 선생님이라는 해결사가 대체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볼거리, 생각할 거리가 많다. 이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면 장애인, 왕따, 다문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체험하며 소수자 이해감수성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소수자 문제를 대하는 구원자 방식의 해결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인공이 완득이가 아니라 이동주 선생님처럼 보이는 건 나만의 예민한 반응은 아닐 터이다.

빌리 엘리어트세 얼간이등 역경을 딛고 꿈을 향해 달리는 성장서사를 담은 캐릭터를 통하여 다름차이의 감성을 키워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까지는 다문화 영화 중 이만한 것도 없지 싶다.

 

(2011 제작, 한국, 이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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