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백석의 탕약(湯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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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백석의 탕약(湯藥)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3.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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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탕약(湯藥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김명수시인 사진=공주시 시아북
▲김명수시인 사진=공주시 시아북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봉령에 산야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六味湯) 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 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닳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발어 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萬年) 녯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넷 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아진다


()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음식은 참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설렁탕 갈비탕 곰탕 우거지탕과 같이 우리 음식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것들의 특징은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끓여 우려내는 데 있고 그러는 동안 그 음식에서 오는 냄새가 구미를 당기게 한다. 이를 음식문화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추운 날 따뜻한 곰탕 한 그릇을 깎뚜기 하나로 한 그릇 하고 나면 몸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솟는 느낌도 난다.

윗글은 한약을 달여 먹는 우리의 전통적 탕약문화의 한 풍경을 시로 나타낸 글이다.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늘 탕악이 끊이질 않았다. 읍내에 있는 한의원에 가서 꼭 탕약을 지어 오곤 했는데 한의사 선생님은 갈 때마다 한약재 하나하나를 작은 추가 있는 저울로 일정한 양을 달은 뒤 네모진 한지에 여러 가지 약재를 넣고 규칙적으로 예쁘게 접어 싸은 뒤에 약 봉지 앞면에 붓으로 약 이름을 한문으로 써 주셨다. 그리고 한줄 내지는 두 줄로 약을 한 첩 한 첩 포개어 쌓은 후 종이로 가늘게 꼬아 만든 끈으로 열십자로 묶는다.

그리고 제일 위쪽에는 들고 가기 좋게 손가락 하나 둘 들어 갈 수 있게 고리를 만들어 주었다. 집에 오면 바로 화롯불에 약탕기를 올려 약을 다리기 시작하는데 반드시 숯으로 해야 은근한 불이 되어 약이 제대로 우러나온다. 그래야 약효가 좋다했기 때문이다. 윤기 나는 약탕기에 약을 쏟아 넣고 물을 알맞게 부은 다음 남은 약 종이로 약탕기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살짝 비틀어 돌림질을 하여 봉한 후 은근한 불에서 약을 닳이는데 약물이 넘치지 않고 수증기만 증발 되도록 해서 약기운이 그대로 남도록 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약은 닳이는 사람의 정성이 있어야 그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참 편한 세상이 되어 그런 장면은 옛날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나 가능하고 모든 것이 자동화 되어 한약방에서 아예 약을 닳여 주어서 집에서 약을 닳이는 것은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만 남게 된 것 같다.

이 시의 2연에서 보면 한약을 닳이는 과정을 비교적 실감 있게 다루었는데 이 시인은 한약을 몸소 닳였거나 닳이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약을 닳이면서 그 냄새를 향으로 인식하고 약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조차 즐거웁다 하니 이 약을 닳이는 사람은 필경 효자 아니면 효녀이리라. 그것도 반들반들 빛나는 곱돌 약탕관에 약봉지를 털어 넣고 봉한 뒤 이마에 살짝 흐르는 땀을 한 쪽 손으로 살짝 쓸어 올리며 부채로 살살 부쳐 가면서 약을 닳이는 모습을 상상 해 보면 어쩌면 그것은 가장 한국적 풍경의 한 모습이 아닐까? 더구나 약을 닳이는데 약탕관에서 삐삐 소리가 난다니 그건 아마도 내 경험에 의하면 약을 닳이다 보면 귀퉁이를 돌아가면서 봉한 한지가 수증기의 압력에 의해 어느 한 부분이 살짝 떠서 틈이 생기는데 그 때 거기에서 새어나오는 김이 빠져나오는 강도에 따라 나는 소리인 것이다. 약을 닳이는 순간만이 가져 올 수 있는 최고의 자연음 이라할까? 이 시를 지은 백석은 이 작은 순간 아주 작은 부분까지 그냥 넘기지 않고 시의 한 구절로 승화 시긴 것이다.

 

또 하나 약을 닳인 후에는 하얀 사기대접에 약을 짜서 환자에게 주게 되는데 그 때 하얀 사기대접에 들어앉은 까만 액체의 모습을 보면서 이 시인은 옛적 그리고 만년(萬年)이란 단어를 썼다. 이 말은 이런 흑백의 조화가 아주 까마득하게 오래전부터 전해왔던 우리 인류의 전통,지혜,신비 그 모든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바로 탕약이 갖고 있는 인고의 지혜와 효능을 말하는 듯 한데 우리 조상들의 탕약문화로 연결시켜 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뭐니 뭐니 해도 백석시의 특징은 우리나라, 자기가 살 던 고장의 토속어를 많이 씀으로써 자기고장 나아가 우리나라 우리겨레를 끔찍이 아기고 사랑했다는 것을 이 시에 나타난 언어로, 다시 말하면 토속어로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것이 최고여라는 말을 이 시의 말미에 붙이고 싶다.(e)(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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