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나를 치유하는 음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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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의 영화이야기=나를 치유하는 음식여행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3.1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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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는 손에 닿으면 온몸에 풋내음 물감이 번질 만큼 상큼하다. 제목처럼 작은 숲이 되어버린 풍경이 화면 곳곳에 배어 버렸다. 진돗개 오구와 논두렁 밭두렁 그리고 한옥이 담긴 풍경에 젊은이 셋이, 현실과 비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끼어있다. 계절 음식을 나누며 술을 곁들이며 노는 듯 보이는 이 젊은이들은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아주 잊은 건 아니니까.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성인이 되어 다시 뭉친 삼총사 혜원(김태리)과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의 만남은 별다른 사건이 없다. 복잡다기한 갈등들이 생략된 영상이 일기장에 옮겨진 시간들에 대한 수채화처럼 담담하다. , 여름, 가을, 겨울의 시골 풍경과 어우러지는 계절음식과 술잔을 주고받는 이들 삼총사는 내세울 바 없는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 젊은이들이다.

 

알바를 하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혜원처럼 취업준비생의 고단함은 일상의 풍경처럼 흔한 일이고. 또한 힘들게 취업을 했어도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재하는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염증에 사표를 던지고 귀농하여 사과 농사를 짓는 청년이다. 어쩌면 이들은 실패자가 아니라 도시생활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뚝심 있는 젊은이들일지도 모른다. 재하의 캐릭터는 농촌 청년이라기보다 클럽이나 카페에서 만남직한 신세대 이미지다. 은숙은 이들 중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을 위해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비애를 알 만큼 세상사에 치이고 닳았다는 점에서.

▲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는 땀 흘리며 일하는 순간을 포착하지 않겠다고 고집한다. 퇴근 이후,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웃고, 수다 떨며 쉬는 시간만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말하자면 리틀 포레스트는 꽃봉오리 젊음에게 바치는 힐링 영화이다. 일중독으로 살아온 세대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 수도 있다. 힘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었던 세대에게 젊은이의 힐링 여행은 조금은 엄살 같고 낯간지럽기도 하다. 그러함에도 풋풋한 젊음이 부럽다. 자전거를 달리는 혜원(김태리)을 보며 아, 나도 저렇게 한번 살아봤으면 솟구치는 울림이 일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80년대, 목숨을 걸고 시위에 앞장서는 선후배를 생각하면서 도서실에서 공부하는 것도 죄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노동자 농민과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당위성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위한 고민에 빠졌던 적이 많았다. ‘커피 한 잔이면 보리쌀이 두 됫박이라는 주장으로 자본의 힘과 독재 권력에 저항하려는 의지를 불태웠던 젊음이었다. 감방에 잡혀가지 않고, 고문당하지 않고 해직의 칼날을 면한 것을 천행으로 여기면서도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던 시절이었다. 투쟁에 동참하면서 쫒기든가, 뼈 빠지게 일하면서 지원금이라도 보태든가, 이도저도 못하는 나약함을 자책하던 시간들.

임순례 감독은 남쪽으로 튀어라에서 일상의 숨통을 막아 버린 듯했던 독재 권력의 감시와 부정부패와 비리 정치인과의 외로운 싸움을 벌이던 영화감독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담았었다. 80-90년대를 겪은 부채감을 그런 식으로 풀어냈을 것이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고, 젊음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구나 싶다.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쉼과 휴식의 갈망과 구체적인 길을 안내하는 즐거움이 이 영화의 메시지일 지도 모르겠다. 숲길과 논두렁길을 청아함으로 수를 놓으며 빛나는 영상으로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마법처럼 내가 만들어야 하는 작은 숲을 들여다본다. 오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요리란 당연히 함께 먹는 것이고, 누군가를 위해 만드는 것이라 여겼었다. 그래서였을까. 음식을 통하여 나를 치유하고 키워내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친숙한 듯 낯설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는 엄마의 음식을 만들면서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20년의 몸으로 기억하는 음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수능 보는 날,

잘 보고 와.”

평소처럼 나를 배웅해주던 엄마가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어디론가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부재는 이처럼 갑작스럽다. 예고가 없으니 준비가 불가능하다. 혜원이 견디기 어려운 건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다.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그런 엄마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다. 아버지도 없이 자란 단 하나뿐인 자식을 버린 엄마. 하지만 그 엄마를 이토록 당당하게 그려내다니, 이 영화의 미덕은 다양하지만 나는 특히 이 점이 무작정 좋다.

허브에서 엄마를 연기한 배종옥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7세의 정신연령으로 살아가는 지체장애 딸 상은에게 차근차근 이별을 가르친다. 우리는 엄마란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 리틀 포레스트같은 영화적 설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 떠나는 엄마도 있지만, 현실에는 자식을 버리는 엄마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지운 무거운 짐을 더 이상 당연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설정이 썩 마음에 든다.

음식은 엄마의 부재를 대신하는 기억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혜원은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자신을 치유한다. 엄마에게 받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아무리 많이 받아도 고맙지 않은 엄마, 더 이상 보살펴 주지 않는다고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키우게 되는 세월들. 혜원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행복했다. 아버지의 부재조차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재를 견디며 살았던 엄마의 삶에 대해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그런데 엄마가 떠난 이후 한꺼번에 닥친 어려움은 힘겨웠다. 알바와 대학생활, 그리고 이어지는 임용고시 준비는 순탄하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지독한 소외감이 있었다. 모든 것이 부재하는 엄마 때문인 것처럼 여겨졌다.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구토와 소화불량이 멈추지 않는다.

혜원의 갑작스러운 귀향은 결국 진정한 나를 심고 가꾸는 일을 배우기 위함이다. 양파를 심을 때 먼저 씨를 뿌려서 모종을 키우고 그 모종이 자라면 아주심기를 한다. 혜원은 자신의 삶에서 아주심기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하는 듯하다. ‘엄마의 숲과 별개로 나만의 숲을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혜원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작은 숲과 작은 숲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이 넘실대는 세상을 그려본다.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2018 제작, 한국, 103

 

▲ 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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