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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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3.1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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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  김명수시인 사진= 시아북
▲ 김명수시인 사진= 시아북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가졌는가

 

온 세상이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오래전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하나 생각난다. 한평생 살다가 죽을 때 한 명의 진정한 스승과 열 명의 진정한 친구, 백 권의 좋은 책을 기억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다 라고 쓴 글귀다. 글쎄 선생님이야 한 분쯤은 어쩌면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죽기 전 열 명 정도의 진정한 친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갈 수 있을까? 그것도 글쎄다. 그래서 정말 있다면 이란 가정법을 써서 정말로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다는 거다. 여기에 함석헌 옹은 바로 그 사람을 가졌는가? 라는 시로 대답을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정한 친구 열 명,기억할 수 있다는 것과 백 권의 책을 죽을 때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 누가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가? 아니면 내게 그런 친구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는가? 나는 진정 그 친구를 위해 무엇을 했었던가? 하고 생각해 볼 일이다.

고사성어에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란 말이 있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인데 다독(多讀)을 권장하는 말 중의 하나다. ()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백학사의 초가집을 지나며 짓다(題柏學士茅屋)’에서 유래한 말이라 하는데 푸른 산의 학사가 은어를 불태우고, 백마 타고 달려가 산야에 은거하였네[碧山學士焚銀魚 白馬卻走深岩居]/옛 사람은 삼년 겨울 독서에 자족하였는데, 그대 젊은 나이에 만여 권을 읽었구나[古人已用三冬足 年少今開萬卷餘]/맑은 하늘에 초가집 위엔 구름이 뭉게뭉게, 가을 물은 섬돌 가득 도랑으로 넘치네[晴雲滿戶團傾蓋 秋水浮階溜決渠]/부귀는 반드시 부지런히 힘써야 얻는 것이고, 남아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책을 읽어야 하지[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고사성어집)에서 보는 것처럼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었다면 혹시 그 많은 책 가운데 백여권의 책 정도는 머릿속에 남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죽을 때 백여권의 책을 술술 생각해 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1958년 함석헌은 장준하가 발행하던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라는 글을 써서 옥고를 치르고 유신정권이 들어서서는 씨알의 소리를 발행하여 군사정권에 맞서기도 했다. 윤보선 김대중씨와 더불어 민주회복 국민회의를 만들고 1971년에는 3.1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한 때는 감옥을 대학이라 부를 정도로 들락거렸으며 광주민주항쟁 때는 씨알의 소리가 폐간 되는 아픔도 겪었다.

함석헌은 성서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각 고전을 섭렵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소화하여, 씨알사상이라는 비폭력, 민주, 평화 이념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비폭력주의 신조로 말미암아 한국의 간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회 평론뿐만 아니라 도덕경등의 각종 동양 고전을 해석하기도 했고, 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1989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입원, 그는 단도암 수술을 받고 198924일에 여든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함석헌은 시집도 발간했는데 첫 시집인 수평선 너머의 서문에 쓴 글을 보면 나는 시인이 아니다. 의사를 하려다 그만두고, 미술을 뜻하다가 말고, 교육을 하려다가 교육자가 못되고, 농사를 하려다가 농부가 못되고, 역사를 연구했으면 하다가 역사책을 내 던지고 성경을 연구하자 하면서 성경을 들고만 있으면서, 집에선 아비노릇 못하고, ......어부라면서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시를 써서 시가 될 리가 없다. 나는 내 맘에도 칼질을 했을 뿐이다. 그것을 님 앞에 다 받칠 뿐이다.“ 라고 썼다.

시집의 서문이 아주 겸손하다. 함석헌을 잘 아는 분의 얘기로는 함석헌이 남긴 님을 향한 노

,님을 위한 노래는 그의 생애를 다룬 것이라고 한다.그는 종교가이면서 혁명가,사상가이면서 시인이었다. 그러면서 세상과 교회를 혁신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외쳤던 것이다.

함석헌이 평생 민주화 운동을 하고 비폭력 평화 이념을 제창하고 사는 동안 누구보다 외롭고 고독했고 가정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등한시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 때 그 때마다 자신의 가족을 알게 모르게 돌 봐 주던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는 길목에서 고마운 그 사람들이 한꺼번에 떠 올랐을 것이다. 그 순간 펜을 잡으며 함석헌은 바로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를 통해서 그 고마운 마음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바로 이 시는 그가 팔십 오년이란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그 순간 순간 도움을 주었던 그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글일 것이다. 참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 만세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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