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의 영화이야기= 독박육아와 모성애의 불편한 진실
상태바
박명순의 영화이야기= 독박육아와 모성애의 불편한 진실
  • 박명순 작가
  • 승인 2021.03.31 0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씽 사라진 여자』
▲미씽 사라진여자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사진
▲미씽 사라진여자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사진

 

이를 일깨우고자 작심한 이 영화는 나름 진지했다. 독박육아, 양육권, 인권침해 등의 문제를 섬뜩하게 파헤쳐서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시사점은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모든 문제해결을 여성 자체에게 의존하는 듯한 모성애코드는 끝내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참혹하다 여겨질 만큼 무책임한 관찰자의 시선(의도된 연출인가?)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으니 결말에서 두 여자가 서로 죽겠다며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지려는 위태로운 장면은 극적 긴장감을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나만 그런가?) 왜곡된 모성애(한매)로 자행된 유괴 사건의 해결 방식을 진정한 모성애(한매와 지선)로 그 출구를 찾는 연출이 시대착오적이고 작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 없이 사체로 떠도는 수많은 한매의 아기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를 모성애로 해결할 수 없는 건 자명하다. 버려지거나 버려질 위기에 처해있는 아기들과 여자. 제목 사라진 여자는 그래서 충분히 의미심장하다.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공효진의 연기가 소름끼치게 돋보인다.)혹시 이 영화가 오히려 맹목적 모성애를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운을 띄워본다. 모성애가 여성억압 기제가 될 수도 있으니 제도적 해결책 모색이 시급함을 역설한다고 해석하고 싶은 것이다.

두 여성(시어머니와 아기들까지 포함해서 6명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카메라에 담는다. 중국계 이주민 여성 한매(공효진)와 워킹맘 광고회사 비정규직 홍보담당 지선(엄지원). 한매는 갑자기 아기와 함께 자취를 감춰버렸다. 영화는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다각적으로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유괴, 이혼, 워킹맘의 현실, 다문화 여성문제 등등. 진짜 엄마인 지선보다 더 정성스럽게 다은이를 돌보았던 보모 한매의 정체는 무엇인가? 비난받아야 할 유괴범인가, 왜곡된 모성에 집착하도록 이용했던 우리 사회의 희생자인가. 카메라 렌즈가 추적하는 여성들의 사연은 타자의 공감대로 온전하게 수렴될 수 있을까? 영화가 부여한 무거운 숙제가 버겁게 여겨진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헐레벌떡 워킹맘 지선은 엘리트 여성임에도 약자의 입장으로 부각된다. 부잣집 시댁에 잘 나가는 의사 남편이지만 바람피우는 걸 용납할 수 없어 당당하게 이혼했지만 양육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 광고계에서 일을 하는 이 여성의 일자리는 더욱 위태롭다. ‘죄송합니다.’ 머리를 조아리며 정작 아기 얼굴 볼 틈도 없이 동분서주하지만 급여의 반 이상이 보육비로 나가고, 그나마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비정규직.

우리 다은이 없으면 나 안 되는 거 잘 알잖아. 제발 다은이 내가 키우게 해 줘. 당신 솔직히 애 한번 안아준 적도 없잖아.”

.”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정작 애정도 없으면서 위자료와 양육비의 빌미가 될까 우려하는 시댁과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전남편은 방관자의 입장을 취할 뿐 상황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지선에게 불리하다. 그 와중에 유괴사건까지 발생하여 이제 지선의 양육권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여있다.

이러다간 접견권도 보장받기 힘들어요.”

변호사조차 승산 없는 소송이라며 답답해한다. 믿었던 한매에게까지 배신을 당한 지선은 직장의 끈도 놓아버린 채 무작정 아이를 찾아 우왕좌왕 몸으로 뛸 수밖에 없다. 경찰, 가족, 직장동료 그 누구도 지선의 편은 없다. 아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자작극이라며 오히려 지선을 수배하여 수갑을 채우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지는 상황. 경찰이나 변호사는 지선에게와 달리 시댁 인물들에게는 고분고분하다. 재력과 사회적 지위의 차별 속에서 블랙 코미디의 웃음조차 터지지 않는 답답함 · 울분 · 먹먹함이 가슴으로 울멍울멍 파고드는 우여곡절 사연들은 몽타주 기법으로 빠르게 처리된다. 지선의 처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한매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풀어나간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한매와 지선의 조응관계에 있다. 지선은 한매의 고용인이었다가 유괴의 피해자가 되는가 하면 가해자로 역전되는 상황을 거치면서 한매의 짓눌린 고통에 젖어드는 느낌으로 다가간다. 결국 모성애를 매개로 한 타자로서 자매애 공감의 농도를 행복한 결말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한매를 향한 분노가 미약하나마 연대의 감정으로 여운을 남긴다.

이주민 여성 한매의 사연을 추적해낸 지선의 표정.

자신을 향한 연민과 분노의 감정에서 서서히 그녀를 향한 연민으로 변화 성숙하는 미덕을 충실하게 살려낸다. 인천 중국인 거리, 아기가 입원했던 병원, 한매의 시댁인 충청도 시골, 병원비 마련을 위한 불법업소와 장기밀매현장. 한매를 찾기 위해 추적했던 그 공간들을 더듬으며 한매의 처절한 삶을 확인하는 지선.

그러나 그 어디에도 한매는 없다.

한매를 통하여 대를 잇겠다는 시어머니의 집착과 방관자인 남편은 지선의 현재 상황과 흡사하다. 며느리로서나 아내로서의 존중은 털끝만큼도 없는 철저한 가족이기주의에 지선도 당할 만큼 당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법은 오히려 이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인다는 점까지 철저하게 닮은꼴이다.

착한 여자예요. 괴롭히지 마세요.”

착한 여자이기에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밖에서 만난 착한 이웃들은 그녀의 편이지만 직접 도와줄 힘이 없다. 착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 그녀는 장기밀매까지 하면서 딸의 치료비를 마련했지만 결국 딸을 살려내지 못한다. 무책임한 한국인 보호자 남편의 강제퇴원 동의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아이는 다시 낳으면 된다.”며 죽어가는 딸아이를 방치했기에 그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가출을 감행하여 어눌한 말과, 왜소한 몸피로 사투를 벌였으나 역부족이었다.

▲ 사진=네이버 영화
▲ 사진=네이버 영화

합법결혼임에도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한매처럼 지선 역시 이혼녀로서 양육권을 보장받지 못해 애를 태운다. 한매는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폭력이 자행된다면 지선에게는 법의 이름으로 가해진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숨겨진 잔인함의 논리는 같다. 힘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한매는 죽은 아이의 복수를 감행하는데 희생자는 남편이다. 은폐된 가부장 사회구조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응징은 불행한 폭력을 양산할 뿐이다. 약자에 대한 폭력이 부메랑이 될 수 있음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하지만 한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지선은 이미 예전의 모습과 달라졌다. 영화는 진지하게 강요하고 있다. 먼저 여성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왜곡된 모성애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 이전에 모성인권이 어떻게 보호받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킬 뿐이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아이들 모두가 행복하게 태어나고, 양육되고, 교육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그 책임을 여성만 감당해야 하는 건 부당하다. 모성애로 해결책을 말하는 건 더더구나 힘들게 살아가는 여성들을 두 번 죽이는 잔인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가족의 절대적 가치는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작은 위안(행복까지 기대하는 건 욕심이리라.)이나마 기대할 곳이 마땅치 않은 답답함을 어찌할 것인가. 가족의 문제를 이혼과 다문화 이주여성과 연관하여 다양한 문제의식을 유발하면서 되씹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존재감이 뚜렷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마음이 불편한지 모르겠다. 정작 달라져야 할 사람, 그들이 영화 화면에서처럼 여전히 방관자로 존재하기 때문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