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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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 김명수 시인
  • 승인 2021.04.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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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사진=공주시
▲사진=공주시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와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리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고등학교 때였다. 영어 단어 외우는 게 따분해서 유행하는 팝 음악을 듣는다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느라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때마침 어느 채널인가에서 곱고 정감있는 목소리로 여자 성우가 이런 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이하생략)

성우는 이 시를 외로운 듯하면서도 애닯프게 그러면서 정감있게 낭송하고 있었다. 같은 시라도 어떻게 읽느냐 어떤 감정으로 낭송하느냐에 따라 듣는 기분이 참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계기도 되었다.

 

///-(전략)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이하생략)///

이 시의 크라이막스라고 생각되는 이 구절에서 소름이 돋는다. 이 시를 낭송하는 것을 들으며 난 시가 참 맛있고 멋잇다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나중에 이 시의 저자가 박인환이라는 것을 알았고 난 도서관에 가서 박인환 시집 목마와 숙녀를 빌려서 단숨에 읽고 또 읽어 보았다. 그 때 기억해 둔 시 중 하나가 세월이 가면이다. 이 세월이 가면은 나중에 작곡가 이진섭이 곡을 붙이고 대중가수 나애심이 불러 큰 히트를 쳐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뒤에 현인과 현미, 조용필과 박인희를 비롯한 수많은 가수들이 노랫말로 만들어 노래를 부르게 되니 시인들의 입장으로서는 너무 고맙고 시민들은 가수들 덕에 어려운 시를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 곡이 쓰인 배경은 소설가 이봉구의 회고록 <명동백작> 등에 기술돼 있다. 1956년 봄 명동의 동방살롱 맞은편 술집 은성(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주점)에서 테너 임만섭이 처음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누군가는 즉석에서 만들어진 노래라고 했지만 두 사람이 꽤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공을 들였다. 은성의 여주인에게 들었던 애절한 연애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였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명동 일대를 휩쓸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댄디보이박인환은 곧 요절하고 만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라던 그는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뒤로하고 떠났다.(인터넷자료에서)

세월이 가면이란 노래는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나애심이 취입해 세상에 나오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된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나애심이란 예명은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한복남이 작명한 것인데 내 마음을 사랑한다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나애심은 백치 아다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등 히트곡들을 내고 100여편의 영하에도 출연할 정도로 걸출한 스타였다. 그의 본명은 전봉선인데 많은 희트곡을 낸 전오승이 친 오빠이고 막내 동생 봉옥도 가수였다. 그는 걸그룹 아리랑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가수 김혜림이 그의 딸이다. 그러고 보면 어떤 것이든 끼는 유전인자가 따로 있는 가보다

박인환의 시는 극히 서구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백석이 토속어를 많이 쓰는 토종 시인이라고 한다면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란 시에서 버지니아 울프,페시미즘이란 단어를 써 가며 전개해 가는 방식이나 내용, 세월이 가면에서 공원의 벤치 등의 단어를 즐겨 쓰는 것만으로도 서구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그가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 다니다 보니 학교를 가장 많이 옮겨 다닌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보통학교를 입학하고 다니다가 열한살엔 서울 덕수 보통학교로 편입하고, 공부를 잘 해서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황해도 채령의 명신중학교로, 그 다음은 평양 의학전문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러다 해방을 맞으면서 의전을 마치지 못하고 다시 서울에 와 고서점을 운영하게 된다. 그것도 오장환 시인으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떠돌아 다니다보니 자연이 친구들은 자기 보다 윗사람들이 많아 졌고 제대로 정착을 못하게 되니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밖에, 그러다 보나 마음은 있으나 바른 소리는 제대로 할 수 없었도 대신 김수영 김경린 김병욱 등과 같이 동인지를 발간하게 된다.

 

세월이 가면이란 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많은 곳을 옮겨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가운데 옳고 그름 어렵고 힘들고 이런저런 사연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그 시간의 행간 속에 세월의 행간 속에 사랑이 오고 가고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는 가운데 그 모든 것들이 내 가슴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며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시적 모티브가 되어 세월이 가면이란 시를 쓰게 되는 동력을 얻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박인환 시인의 순수성과 선량하고 따스한 품성을 지닌 시인의 삶에 대한 치열함들이 녹아 있는 듯하다. 박인환 시인은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인이었기에 한자리에 머무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시인이었기에 늘 시작노트를 가지고 다녔고 친구 김동환이 보자 하면 얼른 꺼내보이기를 주저하지 않아다고 한다.그는 아주 31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박인환 시인이 지금까지 살았더라면 소시민적인 분위기를 벗어나 민족분열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인의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참 아쉽기 그지없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목마와 숙녀를 비롯한 세월이 가면 등 많은 작품들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음에 감사할 일이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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