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역 칠천 리 – 실크로드 기행(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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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역 칠천 리 – 실크로드 기행(11)
  • 조동길 교수
  • 승인 2020.07.12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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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기행 ... 조동길(소설가/공주대명예교수)

                                                                       에필로그

천지에서 내려와 이번 여정의 마지막 저녁밥을 먹고 나니 한편으로는 이제 일상을 떠난 낯선 자유가 종식된다는 아쉬움이, 또 한편으로는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런 양면성은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할 따름이지 여행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현상일 것이다.

생각하기 따라선 이번 여정의 무사한 마무리가 출발할 때의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는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배우고 채우는 소중한 시간의 고갈로 볼 수도 있지 않은가.

​▲ 진시황 동상이 있는 거리​
​▲ 진시황 동상이 있는 거리​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이제는 뭔가 새로운 일정이 있다 해도 귀찮을 것만 같다. 눕는 건 죽음의 연습이라는데도 지금은 그저 조용히 누워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항공기 탑승 시각은 아직 멀었다.

그렇다고 어디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에너지 넘치던 가이드도 이제 기력이 소진되었는지 별 말이 없다. 우리를 공항에 데려다 주는 마지막 일정을 빨리 마치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우리는 무언의 눈빛으로 합의하여 공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했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탑승 수속을 하고 나서도 또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한없이 느리기만 하다. 그래도 시간이란 건 멈추지는 않는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마침내 정해진 시각은 온다.

자정이 넘은 심야에 귀국하는 항공기에 올랐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시키는 대로 잠결에 묻혀 있다가 눈을 뜨니 인천 공항이다. 640분이다. 이제 다시 열흘 전의 일상으로 귀환해야 한다.

▲ 백호가 있던 자리만 남아 있는 석굴 부처님의 미소
▲ 백호가 있던 자리만 남아 있는 석굴 부처님의 미소

이번 여행을 마치며 느낀 감회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신장이란 곳에 대한 기존 내 인식의 갱신이다. 신장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서역 경영 핵심 지역이었다.

또한 현재 중국에서 세계 패권 구축의 야망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즉 신 실크로드 정책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 영토의 6분의 1에 달할 정도로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신장은 그 땅의 대부분이 눈 덮인 고원과 황량한 사막이다.

반면 거기에는 석유, 철광, 석탄, 풍력 등 자원이 넘쳐난다. 이런 소중한 자원은 역설적으로 여기에 살던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만년설이 녹아내린 호수, 오아시스, 지하수로를 이용하여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이민족에게 어렵게 일군 나라를 빼앗겼다.

그들은 지금도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당연히 죽음과 투옥이 뒤따른다. 인간의 선한 의지와 무관하게, 또 스스로 저지른 죄악의 대가로도 볼 수 없는, 이웃의 욕심과 무력에 의해 고통과 불행을 당해야 하는 이 지독한 역설. 신장은 인류의 심성에 대한 회의, 타락한 자본 추구의 욕망, 그리고 인접한 민족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금석이자 현장임을 새로이 자각하게 해 주었다.

다음으로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의 힘에 관한 재인식이다. 험준한 산맥과 고원, 죽음의 사막, 길을 가로막는 강풍 등 이곳은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산을 넘고 사막을 가로지르며 이곳을 왕래했다. 무엇 때문인가.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고, 부처님과 신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갈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고 다치고 실종된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앞 사람의 죽음과 실패를 목격한 사람은 그 길을 따르지 않는 게 상식에 맞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상식을 넘어섰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인간만이 가진 의지의 힘이 아닐까. 물론 다른 동물들 가운데도 실패의 반복을 통한 학습의 효과를 획득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인간만큼, 그 과정을 압축하여 얻어내는 지혜를 갖춘 존재는 없다. 서역은 그것을 실증하는 공간이다.

▲돌을 파고 깎아 부처님을 모신 이들의 염원과 정성 앞에 숙연해진다
▲돌을 파고 깎아 부처님을 모신 이들의 염원과 정성 앞에 숙연해진다

그 다음으로는 불교의 지역적 편차 내지 그 예술적 표현의 민족적 차이에 대한 새로운 확인이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시대 상황의 변화와 그 전파 과정에서 많은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소위 남방불교와 북방불교,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선종과 교종,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등의 성립과 대립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인도에서 직접 불교를 수용한 흔적도 남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중국에 들어와 있던 불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런데 중국의 불교는 단일한 사상이나 체계를 유지했던 게 아니다. 서역을 통해 중국으로 오면서 그 지역적 영향을 많이 받았고, 중국 역사의 변화에 따라 시대적 차이도 적잖게 발생했다.

특히 중국에 정착한 불교는 그 신행 과정에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도교 사상과 그 수행 방식에 많은 부분 습합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교는 우리 민족의 전통 사상인 샤머니즘과 결합되어 한국적 특유의 불교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흔히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교조로 하여 단일한 교리와 체계로 된 종교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불교는 조금씩 차이를 보여주는 특성이 있다. 이번 여정에서 여러 곳의 오래 된 불교 유적을 둘러보며 평소의 그런 생각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명사산 월아천의 환상적인 풍경
▲명사산 월아천의 환상적인 풍경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다. 중국 땅에 첫발을 내딛을 때부터 눈에 띄기 시작하여 여정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목격해야 했던 <消黑除惡>이라는 구호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 풀면 어둠(나쁜 세력)을 소탕하고 악(비리와 부패)을 제거하자는 뜻이다.

가이드는 우리의 범죄와의 전쟁비슷한 걸로 보면 된다고 했다. 이 구호는 대도시에서부터 시골 골목에 이르기까지, 공터나 담벼락, 공공건물 벽 등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눈길 가는 곳마다 가득했다.

그리고 여유 있는 공간엔 그 말을 풀이해서 정치계에 침투한 흑악 세력을 제거하자, 문화계에 퍼져 있는 어둠의 세력을 쓸어내자, 초심을 잊지 말자’, 그런 구호들을 한 글자씩 써서 죽 세워 놓거나 혹은 잘 보이는 곳에 문장으로 새겨 놓기도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구호의 이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그만큼 현실에 어둠의 나쁜 세력이 널리 퍼져 발호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붕괴하는 데는 외부의 공격보다도 내부의 부패와 분열이 더 결정적이라고 한다.

중국, 특히 신장에 이런 구호가 가득하다는 것은 이곳이 그만큼 부패와 갈등이 심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또한 불망초심(不忘初心)의 그 초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회주의 국가 건설, 혹은 개혁 개방 체제 초기의 마음을 뜻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저 구호들은 현재 이 시대와 사회가 처음의 그 원칙들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걸 자인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 구호들은 어쩌면 거대한 중국의 불안과 초조를 반영하는 증거이자 현재 이곳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그것들은 아무리 강고한 권력과 체제라 해도 그게 영원할 수는 없다는 진리, 또 구호와 동상으로 유지되는 중국 사회주의의 현실에 대해 다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우리네 삶 또한 저 산길을 가는 버스 같지 않을까
▲우리네 삶 또한 저 산길을 가는 버스 같지 않을까

이번 우리 여정은 개인적으로 다른 어떤 곳을 다녀올 때보다도 더욱 뜻깊고 잊지 못할 체험이 되었다. 왜 그런가. 우선 공주에서 오래 같이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과 함께 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또 쉽게 가기 어려운 선망의 서역 땅을 다녀왔다는 데서 더더욱 그러하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 얻은 아주 귀한 소득이 하나 더 있다. 여행을 같이 한 우리 열 셋은 열흘 동안 동고동락하며 격의 없이 가까워졌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뜬금없이 교회오빠란 말이 떠오른다. 같은 교인 가운데 친절하고, 멋있고, 또 가슴을 설레게 하여 혼자 몰래 속으로만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성립하려면 교회()동생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이는 적지만 깔끔하고, 멋지고, 포근한, 그래서 혼자 몰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교회동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을뿐더러 나이도 많아 이런 말들과는 생판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또 남을 가슴 설레게 할 축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할 위인이다.

그럼에도 문득 나는 이번 여행을 함께 했던 우리 멋진 동지들이 교회동생들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이건 그분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나 혼자만의 상상이다. 혹 기분이 좀 언짢으시더라도 상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너무 탓하지는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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