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계집애에게 졸업장 필요 없다”는 말에 접었던 공부…90대에 다시 펼친 배움의 꿈
2018년 만나 2019년 자서전 출간까지…스승과 제자가 써내려간‘치유의 시간’
“백 살까지 도서관 갈거여.”
92세 김익한 씨가 자신의 작품에 담아낸 한마디가 충남 성인문해교육의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 배움의 기회를 강제로 내려놓아야 했던 한 여성이 90대의 나이에 다시 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 곁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끌어내도록 도운 문해교사가 있었다.
제자와 스승이 같은 날 태어난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 나란히 수상의 영예까지 안으며 늦깎이 배움의 감동을 만들어냈다.
충남교육청은 지난 4일 열린 ‘제11회 충남문해한마당’에서 김익한 문해학습자가 「충남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부문에서, 김기숙 문해교사가 「충남 문해교사」 부문에서 각각 수상했다고 밝혔다.
■ “계집애는 졸업장이 필요 없다”…3학년에서 멈춘 공부
김익한 씨의 배움은 어린 시절 뜻하지 않게 멈췄다.
어린 김 씨는 책을 광목에 둘둘 말아 허리에 묶고 5리, 약 2㎞의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배우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보다 컸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버지의 “계집애는 졸업장이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김 씨는 초등학교 3학년을 끝으로 책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후 농사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동안 어린 시절의 배움에 대한 꿈은 마음 한편에 묻어두어야 했다.
하지만 그 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김 씨는 ‘유구도서관 문해교육’을 통해 다시 책을 펼쳤다.
90대의 나이에 시작한 새로운 공부였다.
■ 92세의 시, “백 살까지 도서관 갈거여”
늦게 시작한 배움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시간이 됐다.
김익한 씨는 이번 충남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백 살까지 도서관 갈거여’라는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제목부터 그의 삶과 앞으로의 꿈이 고스란히 담겼다.
학교를 떠나야 했던 어린 소녀가 90대가 되어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제는 “백 살까지 도서관에 가겠다”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졸업장은 받지 못했지만 배움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시작된 공부는 김 씨에게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새로운 통로가 됐다.
■ 2018년 만난 스승과 제자…2019년에는 책까지 펴냈다
김 씨와 김기숙 문해교사의 특별한 인연은 지난 2018년 시작됐다.
성인 문해학습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세대 공감 자서전 쓰기’ 사업에서 김기숙 교사가 김익한 씨의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은 일회성 교육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2019년 김 씨의 삶을 담은 책 ‘요리는 감이여’를 함께 펴냈다.
평생 농사와 가족을 위해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이 글이 되고 책이 된 순간이었다.
김기숙 교사는 이후에도 성인 학습자들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글로 풀어내도록 돕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상처와 기억을 마주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치유의 교육’을 실천해 온 것이다.
■ 스승도, 제자도 수상…‘배움의 가치’ 증명한 특별한 하루
이번 수상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스승과 제자가 같은 행사에서 나란히 영예를 안았다는 데 있다.
김익한 학습자는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수상했고, 김기숙 교사는 문해교육 현장에서 학습자의 배움과 성장을 이끌어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두 사람은 ‘태어난 달과 날까지 같은 특별한 인연’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의미를 더했다.
단순한 교사와 학습자의 관계를 넘어 삶과 배움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가 된 셈이다.
■ 충남교육청 “나이와 환경 관계없이 누구나 배울 권리”
이날 행사에서는 충남교육청 소속 학습자 4명도 충남도의장상인 글찬마루상, 충남교육감상인 글꿈이룸상, 충남평생교육진흥원장상인 글도담상을 각각 받으며 기쁨을 더했다.
성인문해교육은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을 가르치는 교육을 넘어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이들에게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병도 충남교육감은 “아흔의 나이에도 배움을 놓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는 학습자와, 그 곁을 따뜻하게 지켜온 교사가 있어 문해교육이 더욱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와 환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당당하게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 졸업장이 없어도 인생의 배움은 계속된다
김익한 씨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학교를 졸업해야만 배움이 끝나는 것일까.
아니다.
배움에는 정해진 나이도, 유효기간도 없다.
어린 시절 단절됐던 공부를 90대에 다시 시작하고, 자신의 삶을 글로 기록하고, 책을 만들고, 시화전에서 자신의 작품으로 수상하는 것.
그 자체가 평생교육과 문해교육이 가진 가장 강력한 가치다.
김익한 씨에게 문해교육은 단순히 글자를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고,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세상과 소통하는 ‘두 번째 학교’였다.
그리고 김기숙 교사는 그 길에서 학습자의 손을 놓지 않은 스승이었다.
■ “백 살까지 도서관 갈거여”…배움에는 정년이 없다
한때 “계집애에게 졸업장은 필요 없다”는 말에 학교를 떠나야 했던 소녀.
9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시를 쓰고, 책을 펴내고, 수상 무대에 섰다.
졸업장은 없었지만 배움은 멈추지 않았다.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받은 이번 수상은 한 사람의 늦깎이 성공담을 넘어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은 다시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교육의 가치이자 사회적 메시지’다.
그리고 김익한 씨가 남긴 약속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백 살까지 도서관 갈거여.”
그 한마디가 충남 문해교육이 지켜야 할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