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다섯 번째 --아, 아름다워라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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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시인이 사랑하는 한 편의 시=다섯 번째 --아, 아름다워라 한국어
  • 김명수시인
  • 승인 2020.12.1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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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의 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을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녘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는 박목월의 나그네를 읽을 때마다 참 우리말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우선 구름에,강나루,나그네,외줄기,삼백리저녘놀 등 이 시에서만도 삼음절로 되어 있는 말들이 열 개나 된다. 이는 우리말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일이다. 삼음절의 아름다움은 여기 말고도 곳곳에 숨어 있다.

꽃이름을 보면 솔나리,히어리,솜다리,고란초,개나리,민들레 등 참 무수히 많다. 동물이름도 그렇다,고양이,강아지,송아지,멍멍이,원숭이,코끼리,돌고래 등 그 외에도 삼음절의 우리 말의 예는 셀수 없이 많은데 이는 부르기도 쉽고 읽을 때 입안에서 구르는 음들이 울림이 있기에 더욱 좋은 것이다.

박목월의 시에선 이토록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 할 수 도 있지만 시간적 공간적 이미지를 아름답게 떠올리게 한다. 특히 강나루-건너 밀밭길의 공간적 이미지는 이 시에서 아름다운 수채화 한 편을 보는 듯 하다. 거기에 저녘 놀까지 합쳐지는 공간적 시각적, 시간적 이미지의 보합성은 이 시에 있어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달린다고 할 수 있다.

일부러 그릴래도 그릴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단 몇 개의 단어를 가지고서도 박목월의 시는 이토록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든다. 시란 바로 이런 것이다.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이 한 두 줄의 싯귀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마력을 지난 것이 아닐까.

또 하나 여기서 구름,,나그네를 연상시키면 구름과 달은 하늘에 있는 것이고 나그네는 땅에 있다. 이는 하늘과 땅을 서로 마주보며 수평을 유지하면서 나그네는 달 가듯이 함께 평행을 유지하면서 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인가. 하늘에는 달이 가고 땅에서는 사람이 가고 빨리 가면 빨리 가는대로 천천이 가면 천천이 가는대로 구름과 달과 사람은 함께 가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활동사진 한 장을 보는 듯 하다. 이제 마지막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녘 놀로 가 보자. 조지훈이 목월을 위해 썼다고 하는 완화삼에 답하기 위해 박목월이 쓴 나그네에서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녘 놀이를 되풀이 썼다는 것에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저녘 놀과 나그네의 합성이 인간의 생각을 정지시켜 놓는 듯 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날씨 좋은 날이면 언제나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다. 순간 모든 것이 그 노을 속에 함몰되는 느낌을 받는다. 시 속에서의 불타는 놀은 바로 나를 신비의 세계로 끌어 드리는 황홀한 순간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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